토요일과여자

손 은 정직하다

by 여니

가빈은 할 일이 많았다. 가족들이 불편을 느끼지 않도록 집안의 티 나지 않는 살림살이에 최선을 들여 보았고, 커 나가는 아이들의 성장과 교육 에도 정성과 관심을 쏟아냈다.

전공을 살려 보라며 지인의 권유로 시작하게 된 부업은 유치원 강사였다. 여러 가지 이야기를 소재로 흥미를 불러일으킬 도구를 만들어 내면서, 아이들을 만나는 시간이 즐겁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날 반기는 어리고 귀여운 손가락 이 커다란 나의 손등을 감쌀 때 느낌은 나의 아이를 양육에서 얻게 되는 기쁨만 큼이나 신 이 나는 일이었다. 오롯이 나만을 기다리는 아이들의 투명하고 맑은 눈 빛을 받다 보면 이리도 넓은 세상에 던져진 나에게도 누군가에게는 보람이 될지도 모른다는 그릿을 쌓아갈 수 있으며, 더욱 잘 살아낼 수 있는 원동력으로 느껴 지곤 했었다.

부모 가 처음이기에

모든 것은 당연히 낯설고 익숙할 순 없었다. 아이와의 작은 다툼. 양육자가 가져야 할 태도, 모나지 않도록 둥글게 말아가는 아내의 역할을 해 내 야 하는 가빈에게는 특별할 것이 없으므로 기억될 만한 일도 존재하지 않는 평범한 일상들이 이어가던 어느 날이었다.


'나 회사에서 나와야 할 거 같아. 이 바닥이 조금 컸다 싶으면 독자생존 방식 이거든.'

남편의 어두운 얼굴은 긴 말이 필요치 않을 만큼이나 무거워져 있었다.

'그럼 이젠 어떻게 해야 하지? 애들도 곧 중학생이 될 건데. '가빈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부모님께 한 번 말씀드려 볼까?'

아. 그랬다. 남편 이란 이 남자

그들과 닮은 아이들이 아빠라고 부르는 그 남자는

시간이 갈수록 해결감보다는 책임감 이 더 강한 사람이었다.


귀인 이론 (Attribution Theory) 관련 가설

귀인 이론의 창시자 중 한 명인 **버나드 와이너(Bernard Weiner)**의 모델을 중심으로 한 가설.

가설: 통제 가능성 귀인(Controllability Attribution)의 차이

책임감 (Responsibility): 개념은 주로 실패의 원인을 소재(Locus:무언가가 발생하거나 위치한 특정 위치나 장소 또는 좌표가 주어진 방정식이나 조건을 만족하는 모든 점의 집합) 차원에서 내부 (나의 노력 부족, 능력 등)로 돌리는 행위에 해당은 **죄책감(Guilt)**이나 **수치심(Shame)**과 같은 감정을 유발하기 쉬움

해결감 (Solution-Focus): 개념은 실패의 원인을 내부로 돌리더라도, 그 원인이 통제 가능성(Controllability) 차원에서 통제 가능하다고 해석함


가빈이 가 자라온 환경 속에서의 처음 접하게 된 남자는 당연 가빈의 아버지였다. 어린 가빈에게도 아버지는 해결감과 책임감이 동시에 있었던 분으로 기억되었다. 많은 자식을 낳아 두고서 그들에게 먹일 양식과 먹을 공간을 제공하기 위해 현재의 N잡러 와는 좀 다를지 모르지만, 어스름 새벽의 공기로 출근을 하고 달빛의 토닥임을 받으며 퇴근을 했었다. 계획적이고 무식하게 일 벌 이를 하셨다. 아버지가 늘 부재중이셨던 이유였었다. 잘 생기고 콧날이 뚜렷하고 보통의 피부색을 가진 아버지의 피부가 까맣게 햇빛에 그을러 져 있었다는 것을 가빈은 결혼즘에서야 눈치챌 수 있었다.

남편은 달랐다. 내가 알 고 있는 가빈의 아버지와는.

남편은 늘 같았다. 해결해 야 할 문제가 일어날 때 에는.

'나도 더 잘 되려고 , 가족을 위해서 말이야. 애쓴단 말이야 '남편의 클리세(cliche)

첫 번째 에는 준비 할 수 없었던 아빠가 되어 버린 남자가 안쓰러웠고

두 번째 에는 비숫한 말을 내뱉는 남편의 말에 차분해진 가빈을 발견했다

'아빠는 회사 안 나가는 거야?' 어느 날 아이가 와서 물었을 때 정확히 말해 주지 못했다.

아니, 바보 같은 가빈은 왜 확실히 말하지 못했을까? 참 바보 같았다. 그것은 가빈 안에 살고 있는 가빈의 엄마를 빙자한 가식 덩어리와 같았다. 상처 주지 않고 보호막이 되어 주어야 한다는 어설픈 가빈의 연기.


퇴근길 무렵

앞서 걷는 남녀의 어깨가 문득 가빈의 눈앞에 들어왔다

힘겹고 더 좋은 일을 만들고 싶어서 둘 이란 같은 공간을 쓰게 되었던 것이었지만, 며칠 아니 몇 달의 가빈의 공간

생각만큼 포근하거나 향기 로버지 못하고 있었다

남녀의 어깨 높이는 같지 않았지만, 부딪히는 손 등에서 따스함이 빛을 내고 있었다. 가빈은 그리웠다.

’ 나도 언젠가 느껴 봤던 거 같은데..‘

쓸쓸했다.

관리비, 김치, 쌀, 학원비들의 생필품의 가격표 들이 생각의 파도를 타고 넘실 춤을 추고 있었다. 정리되지 않은 실타래를 머릿속에 한가득 넣어 두고 아파트의 비번을 눌렀다.

’그러니까 너희들이 말이야. 엉? 손 들고 서 있어. 아빠가 몇 번이나 말했어? 좀 따라 주면 안 되니?‘

현관문을 열자 터져 나오는 남편의 고함 소리에 다시 문을 닫고 나올지 말지 1초를 망설이다가, 이내 거실로 들어선 가빈이었다.

’ 아이, 왜 그래.. 애들이 그럴 수 있지. 내가 잘 달래 볼게.‘가빈은 집안의 소란이 망가진 자물쇠가 될까 두려워 급하게 마무리를 해보고 싶었다.

’ 얘들아. 빨리 아빠께 죄송하다고 해. 얼른!!!‘

현명했던 엄마는 어떠했었는지 스치는 생각. 그저 곁을 내주고 강요를 내세우지 않던 엄마를 따라 해 보고 싶었다. 밤의 문을 열면 지저분하고 엉성한 일 들을 잠재 워 주는 닉스(Nyx)의 능력을 가지고 싶었다.

‘오늘 저녁 이 뭐야? 엄마? 여보! 오늘 다른 거 먹으면 안 돼? 아니, 오늘 학교에서 말이야. 짜증 나..’

허기를 참지 못해 어미새 가 물고 들어온 지렁이만을 기다렸 다는 듯 신발을 벗고 들어서는 가빈에게 쏟아지는 말. 말. 말 들

‘있잖아. 내가 식당 아줌마 야? 왜 나만 보면 다들 밥. 밥 하는 거야? 엉?’

순식간에 터져 나온 가빈의 말에 가족 들 모두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아니, 당신이 밥을 하고

당신이 들어주고 ,

당신이 물건을 찾아 주었으니까.’

틀린 말이 아니었다. 지금을 살아내는 모든 가정의 엄마들의 일상이었단 것을. 그들과 절대 다르게 살지 않았고, 가빈의 엄마처럼 누군가를 위해서 자신을 낮추는 게 정답으로 알아 왔음에도 불구하고 남편의 상황이 아니, 가정의 숙제가 온전히 가빈에게로 토스되어 어디로 가야 할지 방향을 잡지 못한 채 헤매는 있던 가빈이었기에, 밖으로 소리쳐 보았다. 외면하고 싶었다. 말 이 들리지 않는 공간으로 날 아 가 고 싶었다. 우리가 모두 알 듯. 평온하게 일렁이는 수면 아래에는 유지를 위한 끝도 없는 백조의 몸부림이 있다는 것을.

수면 위로 떠 오르고 싶었다.



'주말에 시간 되면 영화 볼래? 네가 좋아했던 장르인 거 같아서. 불편하면 보지 않아도 되고.' 계절을 지나고 나선 이후의 만남이 없었던 롱디남의 문자

'아냐. 몇 시에 볼까?'

생각하지 않았다.

고민하지 않았다.

몇 개월 사이에 여러 일로 복잡했던 심정을 토로할 수 있다면 아니, 잠시 라도 벗어나고 픈 심정이었던 즈음에 때 맞는 제안이었기 때문이다.

비 가 내리고 있었다

토요일의 빗줄기는 다음 계절의 따사로운 햇살을 기다리고 있는 작은 싹을 위한 연주곡처럼 생각되었다,

비의 촉촉함은 아래에 조용히 자리하고 있는 사랑의 울렁임을 듣게 해 주고

빗방울의 선율은 언제나 차분히 가빈을 토닥토닥 잘하고 있다고 해 주는 듯했다

시간을 내어 좋아하는 옷을 입고 거울 앞에 서 봤던 게 얼마만 일까?

시간을 쫓아. 쫓겨 가며 가족 이란 시간의 굴렁 쇠 안에서 갇혀 바깥세상과 단절된 듯 한 기분을 가진 요즘인데, ,, 별 거 아닌 약속이지만,, 비 오는 토요일의 약속은 기억될 만한 별 일이 된 듯했다.


' 어. 지난번 하고 달라 보이네. 오늘 엄청 예뻐 보이네.' 롱디남은 한 껏 가빈에게 둥둥 감성의 날개를 달아주고 있다.

'아이. 왜 그래.? 근데, 엄청 기분은 좋다. 아줌마가 되어서 남자에게 이런 소리를 듣게 되나니. ㅎㅎㅎ.'

맞다.

난 지금 여자이다. 남 자 와 여 자. 아이의 엄마와 누군가의 아내가 아닌.

두근두근 옆 롱디남이 들을 세라. 조심조심. 둘 은 영화관의 좌석에 앉았다.

영화. 맞다. 영화를 좋아했었지. 지금 누구와 있는 것이 중요치 않았다. 가빈이 어느 공간에 자리하고 있는지가 신선한 충격이었다. 혼자였다가 둘이었다가 이제는 가족이라는 구성원으로 살아가는 이 여자에게 상상할 수 없었던, 오롯이 나만을 위한 시간과 공간을 제공해 준 롱디남에게 참으로 고마웠다.

'진짜 고마워. 나 한동안 집안에 일이 있어서 많이 다운되어 있었거든...'가빈은 살짝 쿵 맘을 비춰내어 본다

'저런. 힘들었겠네. 오늘 나 잘한 거네? 내가 가끔 우울할 때 얘기 들어주고, 급하게 내가 필요하면 기사도 해 줄 테니. 맘껏 부려먹어. ㅎㅎㅎ. '

즐거움의 맘으로 서로에게 주어진 시간은 왜 이리도 빨리 도망가는지. 하지만, 가빈도 롱디남도 그 둘의 만남을 마무리 지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오늘 정말 나 가뿐해져서 돌아갈 수 있게 해 줘서 고마워.'가빈은 차분히 인사를 건넨다.

'그럼. 담에 밥 사는 거네?? ' 롱디남이 웃으며 농담을 건넨다.

'아.... 그럼. 그럼. '살포시 웃어 보이던 가빈에게 롱디남은 약수를 건넨다. 살짝 망설여 봤지만, 가빈은 롱디남의 을 잡아 답을 해본다.

'가빈이. 이 원래 이렇게 예뻤나? 몰랐었네..' 롱디남은 한 참을 살펴본다.

'아이고. 왜 그래. 아이 낳고 손 관리도 잘 못해. 그나마 핸드크림은 바르니까.. 잘 가. '

가빈을 세워 두고 롱디남의 차는 한 껏 아쉬운 뒤 모습으로 떠나 버렸다.

자리를 떠 나지 않고 가빈은 자신의 손을 들여다보았다. 어린아이의 손, 롱디남의 손에서 느꼈었던 감정들.

은 정직했다.

딱히 특별 한 건 없었다.

그날 이후부터 잊을 만할 즈음에 툭 툭. 머리를 치고 나오는 영화 속의 장면처럼.

설거지를 하다가 혼자 슬며시 웃어 보았고, 편리함을 강조한 바지의 선호가 슬며시 스커트에도 전달되었다.


토요일

양육자의 토요일은 주중 근무의 연장 선 그 이상이었다. 부모와의 기억을 만들기 위한 주말을 기다리는 아이들에게 실망을 안겨 주고 싶지 않았기에, 더 에너지를 내어야 했으므로.

이제 , 가빈이의 토요일은 달랐다. 아니 달라지고 있었다.

알 수 없는 알맹이로 채워진 감정의 크기는 충만 해졌다. 아이들과 지내는 주말이 썩 나쁘지 않았고, 자신만의 비밀 공간을 조용히, 빼곡히 채워 갈 수 있음을 예견해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