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네 타기

살아내어보려고

by 여니


내려간다

올라간다

눈을 감는다

보인다

그네는 신기했다

혼자가 되었던 가빈이 늘 찾았던 곳은 집 근처에 놀이터였다

그네를 다시 타 본다

조금만 힘을 올리면 지구 반대편까지 닿을 수 있을 것 같은 능력자 가 되어 주니까 말이다.

아이의 하교를 기다리는 이 시간은 가빈에게 또 다른 공간을 제공하고 있었다

“엄마!!!! ”

“ 아이, 우리 강아지. 오늘 학교 재미있었어?”

“응. 나도 같이 탈래”

아이와 함께 바라보는 하늘은 한 번도 느껴 본 적 없었던 마음의 색을 띄웠고, 가슴으로 전해지는 아이의 심장 박동은 행복이란 단어를 떠 올리게 했다.

“ 엄마. 그네는 참 신기 한 거 같아. 슈퍼 파워를 쓰지 않아도 땅에서부터 엄청 높이 올라갈 수 있어. 이것 봐. 내가 해 볼게.”

하늘의 구름은 아이의 미소만큼 가볍고

아이의 웃음은 그네 발처럼 둥실둥실 바람을 타고 다녔다.




한 두 번의 잠시 귀국길에도 짧고 당당하지 못한 그 둘의 시간들은 첫 번째의 귀국길 이후 복잡한 색을 띠어 가고 있었다.

‘자기도 날 믿지 못한 다는 거잖아. 부모님도 그렇고...’ 롱디남은 술 한잔을 마시며 속 얘기를 털어놓는다

‘부모님이 잘 못 된 건 아니잖아. 유학 마치고 직장 잡고 결혼하면 되는 거잖아. 나도 기다리고 자기도 안정적으로 시작 하 자는 건데. 이해를 못 한 다는 거야? “ 가빈의 설득은 계속 이어진다.

’ 내 말은, 부모님 보다. 자기가 더 날 믿지 못한다는 게 속상하고 힘들어. 주변에 유학부부들 도 얼마나 많은 줄 알아? 자기가 같이 있으면 나도 힘이 된다는 데,.‘ 롱디남은 술 한잔에 더욱 자신을 얹어 둔다.

’ 자기 부모님이 얼마나 지식 있고, 인자 한 지 나도 잘 알아. 근데, 내가 넉넉한 집안 아들이 아니라서, 직장도 없고. 반대하시는 거잖아. 사실, 결혼할 때 당장 한 푼이라고 보태 주 실 수 있으셔? 생활이 장난일 줄 알아? 자기 나처럼 점심도 굶어 가며 친구들에게 아쉬운 소리 하고 리포트 대신 밤새 써 줘 가며 점심. 저녁 얻어먹어 봤어? x고생하고 있는 나에게. 자기도 자기 부모님도 도움이 되는 거 하나도 없어.‘

한 참이나 격한 말을 쏟아내고 난 롱디남은 이내 풀썩 테이블에 고개를 떨군다. 어깨가 떨리기 시작했고, 소리 없이 울음을 참고 있었다.

순간 가빈에게 떠 오르는 한 가지

’ 내가 잘할 수 있는 게 바로 이 남자로 시작했다고 했지만, 결국에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줄 수 없구나. 사랑. 즐거움 정도 만으로도 나 자신의 능력이 가능하다고 여겼는데..‘

또다시 파도처럼 가빈을 흔들어 놓은 말 들. 가빈에게 말. 말은 한 번도 지나쳐 갈 수 없는 비수처럼 가슴 켜켜이 쌓아지고 있었다.

어지 러웠고,

어려웠다.

공부를 마치고 귀국한 롱디남과의 만남은 자신들의 변명과 핑계를 일삼아 어그러지기 시작했다.



가빈에게 가장 큰 울타리는 엄마였다.

가빈의 부모는 덕망과 학식, 겸손함을 가진 누구에게든 자랑이 될 만한 반듯한 그들이었다. 밤낮으로 자신에게 소홀할 틈을 주지 않으려 애쓰면서 자식들에게 피해되지 않으려 삶을 살아가려 애쓰고 있었다. 그에 걸맞은 자식들을 양육하는데 여념이 없었다. 형제가 많았던 가빈의 집안에서는 부모의 사랑을 차지하기 위한 매일매일의 쟁탈전이 벌어지곤 하였다. 생명체가 있는 것들은 무엇이든 간에 태어남과 동시에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싸워야 했고, 밟고 서야만 했다. 결과가 만족스럽지 않다 한들, 자리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 눈을 뜨는 순간부터 움직여야 만 했다. 많은 형제 들 중 누군가 가빈을 북돋고 칭찬을 해 주긴 했던 거 같지만, 타고난 재능을 이끌어 줄 수 있도록 가이드가 되어준 사람은 딱 히 기억이 나지 않았다. 모두들 제 자리를 지키기 위해 여념이 없었을 테니까.

가빈을 둘러싸고 있는 가족의 따스한 그늘은 그저 안식과 평안 함의 장소 임에는 틀림 없었다. 박식하고 명성을 가진 아버지, 기품 있고 늘 고루 평등한 사랑을 베풀어 주신 어머니. 별 탈 없이 자신의 선을 잘 그어 나가는 것 같은 그의 형제들. 가족임 에도 부러 웠었다. 부러운 건 부러운 거였다. 가빈은 많은 말 을 할 수 없었다. 딱히 말이 많지 않았던 가빈에게

엄마는 늘 든든하게 묵묵히. 조용하게. 길을 알려 주곤 했다.

엄마 당신의 생각을 강요하지 않았고, 넛지를 알려 주었다.

넛지(nudge)

넛지는 선택의 자유를 제한하지 않으면서, 사람들의 행동을 바람직한 방향으로 자연스럽게 유도하는 부드러운 개입

가빈은 엄마만큼 큰 사람이 될 수는 없다고 여겼다. 모태신앙 마저도 엄마, 당신 남편과 자식을 위해 헌신할 시간이 망가 질 염려로 인해 인생 후반으로 미뤄 둔 대단한 분 이 셨다. 그런 엄마의 뜻을 거역할 수 없었던 가빈이었고, 절대적 이지 않겠지만, 분명 후회할 판단을 자식에게 주진 않을 거란 믿음으로 가빈은 그 이듬해에 평범한 결혼의 길을 가고 있었던 것이다.



“ 아이, 참 좀 찾아봐. 맨날 내가 찾아야 해?”

“ 당신이. 제일이지. 로봇 보다 더 빨리 찾을 걸?”

“이런” 미간을 찌푸려 보지만, 가빈의 소소한 일상이지만, 이대로 그럭저럭 잘 살아가고 있다고 다독여 보았다.

출산 후에 남은 상처는 가족 이란 이름이 주는 작은 기쁨으로 나아가던 때였고,

가빈의 해야 할 주어진 삶은 어쩌면 가빈의 조금 잘할 수 있는 능력이 보이고 있던 즘이었다.


시간을 내어 다시 마주 앉은 둘에게는 많은 변화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잊지 못했지만,

잊고 지내왔던 둘에게

젊음 이란 단어는 아이와 맞바꾸어 오늘을 살아내고 있고

꿈 이란 말은 또 다른 가족 이란 언어로 만들어 내고 있었다

떨리는 마음 때문에 자세히 보지 못했던 두 번째 만남에서 달라져 보이는 롱디남

미래의 불안과 초조를 부속 품처럼 달고 다녔던 그 시절의 그 는 없었다.

살짝 펴져있는 어깨 사이로 느슨함과 여유로움은 롱디남의 현재를 알려주는 듯했다

시간은 십여 년을 훌쩍 과거로 움직여

밥을 먹고

차를 마시고

그 시절의 시간을 마주하면서 기억을 불러일으켰다

가족의 저녁시간은 분주하고 바쁘다

아이가 달려온다

잠이 날 불러온다

삶에 들어와 버린 생각으로 잠들 수 없는 날이 이어진다.

결심은 인생의 나이테를 만들고 결정이란 선택의 길에 의무를 다 해 야 한다고 가빈은 알고 있었다.

옳고 그름은 판단의 몫 일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