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안 궁금해할 글 - 3
강사로서 면접을 보다 보면 종종 듣게 되는 질문이 있다.
"아이들 좋아하세요?"
내 대답은 항상 동일하다.
"네, 너무 좋아하죠."
학생들을 가르치다 보면 언제나 좋은 경험만을 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 내 역량을 시시때때로 시험하는 학생들과 주는 것 없이 나를 고깝게 보는 학생들도 있다. 아무리 노력을 한다 하더라도 수십 명의 아이들을 다 만족시킬 수는 없다. 그래서 상처도 많이 받고 많이 슬퍼하기도 한다. 그래도 한 가지 확실한 사실은 나는 여전히 학생들을 좋아한다는 것이다.
나는 대학 때부터 아이들을 가르치기 시작해 강사 경력으로 따지자면 어느덧 7년 차를 지나오고 있다. 처음 이 일을 시작했을 때에는 그냥 다른 알바보다 시급이 높아서 생활비를 마련하기에 더 적합한 일이었기에 강사를 시작했다. 내가 가진 것으로 가장 고수입을 내는 방법이 누군가를 가르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중등부 고등부를 가리지 않고 아이들과 함께 했다. 중학교 1학년 파릇파릇 애기들부터 이제는 대입을 목전에 둔 고3들까지 광범위한 나이대의 학생들과 함께 호흡하면서 쌓이는 월급보다 좋았던 건 아마 학생들이 나를 원하고 있다는 기분이었던 것 같다. 나로 인해 성적이 올랐다고 기뻐하고, 국어 선생님들 중에 가장 잘하는 사람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내 능력을 인정받은 것만큼이나 앞으로도 이 학생들과 함께할 수 있다는 사실이 즐거웠다.
과중한 학업과 떨어지는 체력으로 일을 잠시 쉬어갔을 때가 있었다. 나에게는 잠시의 휴식이었지만 당시 가르치던 학생들과는 기약 없는 이별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렇게 한 명, 한 명 인사를 건네며 보내주고 있을 때 학생 하나가 나에게 이런 말을 해 주었다.
"선생님 덕분에 국어 공부가 재밌다는 걸 처음으로 알게 되었어요. 국어의 재미를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학생들 중에서도 눈에 띄게 성실하고 수줍음이 많던 학생이었다. 대화도 많이 해보지 못했고 다른 학생들에 치여 많은 신경을 써주지 못해서 늘 마음이 쓰이던 그런 학생이었다. 그 학생이 용기 내어 건네준 말이 내 지난 몇 년의 세월을 한 번에 보상해 주는 것만 같았다. 벌써 4년 전 이야기가 되어버린 이 한순간은 여전히 내가 강사로서 살아가는 데 있어서 간절히 가문 봄에 내리는 보슬비 같은 기억이 되어준다.
학생들을 좋아하는 이유는 별게 없다. 내 이야기 하나에 까르르 웃는 그 웃음이 좋다. 모르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아'하며 눈을 빛내는 그 순간이 좋다. 조금만 놀려도 귀 끝까지 새빨개지는 그 수줍음이 좋고, 서서히 나이를 먹으며 늘어나는 너스레도 좋다. 오랜 시간을 함께하는 학생들이 커가는 모습을 보는 것도 좋다. 갓 초등학교, 중학교를 졸업한 아이들이 시간이 지나 어느새 성인에 가까운 신사, 숙녀로 변해있는 모습은 몇 년을 보아도 적응이 되지 않고 신비롭고 재밌다.
나는 앞으로도 학생들이 좋을 것 같다. 나는 비록 점점 그들과 공감할 수 있는 것이 적어지는 사람이 되어 늙어가겠지만, 그럼에도 그때에도 눈빛을 반짝이며 어떤 새로운 세상이 나에게 다가올지 기대하는 모습을 보일 그 아이들이 기대된다. 오늘도 눈앞의 아이들을 안쓰러운 마음 반, 애틋한 마음 반을 담아 바라본다. 학생들에게는 앞으로 더 많은 시련과 고통이 찾아오겠지만 그때 문득 떠오르는 어른들을 모습 중 내 모습도 함께였으면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