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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예반장 Oct 21. 2023

텃밭의 주인은 '나'가 아니었다

   눈(雪)이 말랐다. 달갑잖은 겨울비가 아쉬운 판에 계절이 바뀌자 봄 가뭄까지 이어졌다. 지난 몇 년 마음껏 게을렀더니 잡초더미와 잔가지가 텃밭에 켜켜이 쌓였다. 아무 잘못 없는 갈색 우중충함을 원인 제공자인 내가 외면한다. 이 작은 뜰의 주인이 그들은 아니라는 사실이 다행이다. 날이 따듯해졌다. 칠팔 년 넘도록 꾸준히 개체 수를 불린 민들레가 뒤뜰을 도배하기 시작했다. 덤불 위를, 어느 날 갑자기, 새하얗게.

   촌동네는 대개 말이 많다. 집 주변을 깨끗이 하라고, 이웃과 친하게 지내라고, 괜한 땅을 놀린다고 툭하면 수군댄다. 호미질을 시작했다. 눈칫밥을 먹기 싫어서만은 아니었다. 땅 아래를 깊이 기어 우리 집까지 찾아온 두릅의 알싸한 맛, 농약과 제초제 한 방울 뿌리지 않았는데도 번듯이 자라준 토마토의 새콤함이 그립다. 한두 해 뜸했던 지렁이, 개구리와 반딧불이도 내친김에 불러오고 싶었다. 민들레가 눌러앉은 장소를 피해 네댓 평 좁은 공간에 쌈 채소 몇 가지를 꾹꾹 눌러 심었다.


   그날부터였다. 며칠간 장마 끝 뙤약볕처럼 뜨거운 날이 이어졌다. 말라 비틀어버린 흙에서 먼지가 폴폴 날린다. 물만 있으면 쑥쑥 자라는 채소가 축 늘어졌다. 당분간 비 소식은 없다는 기상청 예보가 야속하다. 내 고민이 농사짓는 사람들보다 더할까만 초짜에다 껍데기만 농부인 나로서는 어디부터 손을 써야 할지 막막했다. 뒷집 아저씨한테 도움을 청했다. 물부터 흠뻑 주라고 한다. 물 분사기와 호스를 준비했다.

   당장 토마토가 문제였다. 한 뼘 크기 모종이 뭘 어쩌자고 그 며칠 새 손톱 크기 방울 몇 개를 덜컥 내어놨다. 밤엔 초가을 날씨, 대낮은 한여름 기온이 반복되었다. 그때까지 뿌리를 내리지 못해 비실비실한 줄기가 아기 토마토 무게를 이기지 못한다. 플라스틱 막대를 바닥에 꽂고 토마토 가지를 묶어주던 내내 서툴고 거친 내 손이 애 많이 먹었다.     

   쌈 채소는 부쩍부쩍 커갔다. 쌩쌩했다. 하루 한 번 물을 주기 시작하면서 생긴 변화였다. 며칠 만에 손바닥만큼 자란 채소를 바라보며 잠깐 즐겁던 시간은 이파리를 갉아먹기 시작한 벌레와 마주치는 순간 짜증으로 바뀌었다. 멀쩡한 상추도 따고 보면 멀쩡한 이파리가 없다. 쌈을 바구니에 담는 동안 시퍼런 애벌레를 한 다스 이상 떨구어냈다. 맵디매운 적겨자에 뻥 뚫린 구멍이 가장 많다. 맛과 영양 모두 훌륭하다는 뜻 같다.    

   몇 년 전 그때도 텃밭 채소는 벌레의 주식이었다. 가끔 들르던 이장 아저씨가 생각난다. 우리야 뭐, 저분들이 남긴 부스러기나 먹어야지. 그게 싫으면 약을 써야 하는데 물론 싫어할 거고. 맛은 좋을 겁니다. 벌레가 기미 상궁 역할을 해줘 안전하죠. 그들이 잘 먹는 음식이면 사람한테도 건강하지 않겠습니까. 즐기며 키워요. 너 알아서 크라니까 그분들이 이리 기승을 부리잖습니까. 사나흘에 한 번쯤은 젓가락으로 솎아주시고.

   어릴 적 기억을 떠올린다. 희석한 농약을 음료수인 줄 알고 마셔 위에 구멍이 뚫렸다는, 농약을 먹여 사람을 죽였다는 등 섬찟한 말들. 어쩌다 살게 된 시골집 뙈기밭에 알량한 모종 몇 포기 기르면서까지 약을 치고 싶지는 않다. 풀 매주기가 고단했던 뒷집 주인이 자기 밭에 제초제를 뿌리기 시작했던 예닐곱 해 전, 이틀 만에 엉뚱하게 아무 죄 없는 우리 집 뜰 안의 반딧불이가 자취를 감추었다. 돌아올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분사기로 물을 뿌렸다. 개구리 한 마리가 꽃상추 속에서 놀라 튀어나온다. 덩치가 보통은 넘는다. 도망갈 생각조차 없는지 커다란 눈만 껌뻑거린다. 한 발로 맨땅을 굴러도 꿈적하지 않는다. 슬쩍 한 걸음 내디뎌도 내가 움직인 만큼 물러설 뿐, 절대 이곳을 떠나지 않으리라 시위하는 듯하다. 흙 속엔 꿈틀거리는 지렁이, 못난이 채소 이파리에는 퍼런 벌레가 꼬물댄다. 그들만의 질서에 의해 땅의 평화는 유지된다. 개구리가 돌아왔다.    

   곰곰이 돌아본다. 등기부에 기재된 자만이 땅의 진정한 소유자인지. 유실수나 잡초, 채소 모종과 봄날 뒤뜰을 완벽하게 접수한 민들레나 개구리가? 이도 저도 완벽한 주인은 아니다. 서로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맞물려가는 세상, 그 결과물 중 극히 일부만 내 소유물 아닌가. 거기다 내 몫을 결정하는 주체가 늘 나였던가도 의문이다. 밭에서는 벌레들, 밖으로 나가면 주변과의 관계, 그로부터 형성되는 세상의 순리와 조화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였다.

   그게 뭐든 민들레는 해마다 영토를 넓혀 자신의 존재감을 키워갈 것이다. 개구리도 개체 숫자를 불려가며 영역을 지키리라고 믿는다. 뱀과의 문제는 개구리 스스로가 정리할 문제다. 옆집에서 농약과 제초제를 지금처럼 꼭 필요한 양만 친다면 벌레도 살아남을 것이고 사라진 반딧불이의 귀환까지 바랄만하다. 두릅나무는 내버려 둬도 잘 자란다. 법적으로 땅 주인인 나는? 지금의 ‘게으르고 어설픈’ 짝퉁 농사법을 따를 수밖에. 그들이 드시고 남은 만큼만 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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