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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예반장 Oct 21. 2023

서울 나들이

   다섯 시쯤 됐겠네. 아침잠 없는 습관 덕에 시계를 안 봐도 알람을 꺼놔도 대충 안다. 바삐 지날 하루, 모자를 덮어쓰고 집 뒤 개울 건너 휑한 벌판으로 나선다. 불과 며칠 전 건넛마을 앞까지 황금색이던 들판에 때 만난 참새떼가 먼동을 가른다. 긴 밤 꼬박 차가움과 씨름했을 멀건 어둠이 구부러진 논두렁과 볏단 옆에 웅크려 앉아 동트기를 기다린다. 어제와 다름없는 땅이며 하늘이 처음 보는 풍경인 양 낯설다.

   오늘은 건강검진 받는 날, 서울 가는 김에 머리까지 손질하려고 예약도 미리 했다. 아침을 건너뛸 것이다. 검사 끝나고 먹을 도시락 챙기러 주방으로 향한다. 손 많이 가는 요구르트와 샌드위치 대신 무지개떡을 집어넣고 삶은 달걀, 견과류와 과일까지 챙긴다. 우유와 자두 청에 더치 커피를 섞어 만든 음료는 필수다. 벌꿀과 발사믹 식초를 살짝 뿌려 젓가락으로 휘젓고는 아이스박스 안에 몽땅 쟁여 넣는다. 소풍 준비 끝!     


   의사 선생께서 뜸 들이며 말을 꺼낸다. 내시경 검사를 받은 지 꽤 오래되었다고. 손사래를 친다. 뱃속이 통째 뒤틀려 역겹다고 덧붙인다. 뭐냐, 키가 줄다니. 발꿈치를 살짝 들어 다시 재보려다 관둔다. 나이 들어간다는 것을 부정하고 싶은 일종의 오기일 것이다. 그런들 사실이 바뀌지 않을 줄 알아 속상했겠지, 허기가 닥친다. 병원을 빠져나와 운전석에 앉아 아이스박스 뚜껑을 열어젖히며 나한테 묻는다. 괜찮지? 그럼, 그 정도야 뭐. 괜찮다 뿐이겠어.

   출근 시간이 지났건만 길바닥 위 차들은 여전히 거북이걸음이다. 이 나라의 차량 숫자가 두 명당 평균 한 대라고 한다. 이리 많은 차가 이 좁은 땅을 어떻게 굴러다니는지 궁금하며, 차 없이는 생활이 불편하다는 생각을 떨구지 못하는지 의문이다.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면서 내가 그중의 한 사람이라는 사실은 한사코 외면하려는 이중의 잣대. 엘리시아, 그리스 신화 속의 '행복한 집'으로 머리 다듬으러 가는 길에서 잡생각이 하염없다.

   삼 년째인 유행병 탓인지 그녀의 얼굴이 밝지 않다. “그냥저냥 지냅니다. 오늘도 멋있게 다듬어드릴게요.” 긴 터널의 끝이 보인다는 방송이나 없애든가, 누가 그걸 확실히 알 수 있나. 희망적인 의견도 있다. 끝내 소멸할 거라는, 홍역이나 감기 마냥 약 좀 먹고 주사 맞아 나을 거라는 그리고 늘 그랬듯 역병을 잠재울 백신이 머지않아 개발될 거라는 등 잠깐 생각에 잠긴 사이 헝클어졌던 머리가 거울 속에서 말끔해졌다. 그녀의 표정도 머잖아 밝아지겠지.

   대치동 낡은 아파트 상가건물 앞에 주차한다. 동마(銅馬)는 발음상 그렇다 치더라도 금마(金馬)보다 은마(銀馬)인 이유는 뭐며 작명자는 누구일까. 세계사의 특정한 시점에서 금보다 은을 귀히 여겼던 경우를 아는 사람인가. 고만고만한 가게가 빽빽하게 붙어 있어 재래시장을 실내로 옮겨온 듯 복작거리는 지하 식당가에서 한 끼를 해결할 계획이다. 육전 냄새 고소한 부침 가게, 그 옆집 반들거리는 찰떡도 먹음직하다. 한 접시씩 포장해서 바깥으로 나온다.     


   시골집 양철 대문 앞에 마흔 살 넘은 은행나무가 서 있었다. 자식 보고 싶은 엄마의 쉴 새 없는 닥달에 시달리다 지친 형님이 너스레를 떨며 연락했다. “은행잎에서 똥 냄새가 난대요. 내려와서 치우든 없애버리든 알아서 하래. 은행알 모아뒀다고 갖다 먹으란다. 가볼까?” 뱅뱅 사거리에서 환경미화원이 바닥을 덮은 낙엽의 잔해를 거두느라 바쁘다. 세상에 계시지 않은 엄마가 은행잎을 치우라고 강남 구청장을 닦달했을 리 없는데.    

   뻥 뚫린 고속도로 위 하늘이 푸르다. 암만 가을이라도 그렇지, 이건 꼬드김이다. 치명적인 설렘이며 거부하지 못할 유혹이다. 꾹꾹 눌러둔 옛사랑만큼 시리다. 요렇게 예쁜 계절은 오래 머물지 않는다. 회색빛 겨울이 기어이 올 것이며 난 곱고 맑았던 하늘을 그리워할 것이고 한 해가 또 맥없이 지날 것이다. ‘가다’는 말을 곱씹어 본다. 와서 떠나고 남겨진, 가슴 한구석에 묻었던 예닐곱 해 전 기억이 꾸역꾸역 고개를 쳐든다. 당시 나이 마흔의 막내 동생...

   신중하지 못했다. 신장(腎臟)을 이식받아야 살 수 있다는 그의 전화를 받자마자 가져가라고 덥석 수락해버렸으니. 내 결정에 대한 가족 의견은 둘로 나뉘었다. 신장 하나로는 사람 구실 힘들다고 어머니가 먼저 노발대발하셨다. “막내 하나면 됐지 너는 관둬.” 찬찬하지 못했던 내 잘못도 컸다. 의학 소견상 혈압약 복용자는 타인에게 신장 기증이 어렵다는 점을 몰랐느냐며 그런 식으로 꼭 생색을 내고 싶었느냐는 비아냥 앞에서 나는 입을 다물어야 했다.      


   뜰 안이 잠잠하다. 내가 서울 나들이 다니듯 내 집을 제집처럼 오가는 괭이가 눈치를 보며 옆걸음질로 데크를 빠져나간다. 밥 한 번 준 적 없으면서 뒤룩뒤룩 군살이 많아 동작이 굼뜬 요놈을 대놓고 째려본다. 겨울마다 우리 집 천장을 운동장 삼아 층간 소음을 일삼는 쥐들의 버릇없는 행태는 저 고양이의 관심 밖이다. 서생원 일가족을 일망타진할 계획 따위란 안중에 없는 괘씸한 것, 드실 것 좀 내놓으면 생쥐 사냥길에 나서려나.

   어영부영 3시, 포장해온 점심거리를 풀어놓는다. 지난해 형님과 협의하여 제사를 줄였다. 아버님 기일에 선대 조상을 함께 모셔 제수 준비가 줄고 식구들은 편안해졌는데 뭔 변덕인지 가끔 수십 년 입에 붙은 밍밍한 제삿밥이 뜬금없이 그리웠다. 이번 생(生)에 선택한 육전 맛이 좋다. 다시 태어나거든 생선전을 집어와야지. 부러 서울 가는 건수를 자주 만들어야겠다. 긴 하루 짧은 인생 순간순간마다 끊임없이 허우적거리는 나를 가라앉힐 뭔가를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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