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정엄마는 왼쪽 어깨, 날개뼈, 골반이 오른쪽보다 많이 올라가 있던 상태로 좌우 불균형이 심했다.
측면에서 봤을 때에도 목-허리-엉덩이가 S자를 커브를 그려야 하는데, 엄마는 일직선인 상태였다.
목은 심하게 앞으로 굽었고, 등은 일자척추였고, 골반 곡선이 아예 없는 납작 엉덩이였다.
허벅지 사이를 붙이는 힘이 없어 무릎이 바깥으로 벌어진 O다리까지 처참했다.
나는 다행히 오른쪽 골반이 살짝 비뚤어진 것 외엔 목이나 어깨, 허리의 곡선이 나쁘지 않았다.
작년 6월 회사에 복직하고 일 년 동안은 운동을 아예 안 했는데, 최근 들어 심각성을 느껴 집에서 발레핏 온라인 수업을 조금씩 들어온 게 자세교정에 꽤 도움이 된 것 같았다.
내가 운동을 하지 않고 30년이 지나면 엄마의 체형과 똑 닮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이 스쳤다.
나는 엄마의 체형분석을 보며 30년 후의 내 미래를 내다보고 온 기분이었다.
체형에 대한 분석을 마치고 나니, 운동할 때 친정엄마의 어설픈 자세가 더 눈에 잘 들어왔다.
그래도 긍정적인 시그널도 있었다.
본인 체형분석을 눈으로 본 엄마는
강사님의 설명을 더 잘 이해하고 따라 하게 됐다.
첫 수업에서 숨만 쉬어도 올라가던 어깨, 등을 '동그랗게 마는' 느낌을 전혀 내지 못했던 엄마의 척추, 허벅지 안쪽 근육에 힘을 주지 못하고 덜렁거리던 엄마의 가느다란 다리는 물론 한순간에 좋아지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눈으로 본 자신의 체형을 기억하며 의식적으로 날개뼈를 끌어내려
어깨를 낮추려고 했고,
힘을 주지 못한 채 휘청이던 다리를 허벅지 안쪽 근육 힘으로 곧게 만들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보였다.
물론, 그래도 나는 '엄마 어깨 좀 더 내려야 해'라고 말하고 싶은 충동을 눌러야 했다.
그래도 첫수업에서
'갈비뼈 닫아주세요' '명치를 끌어올려주세요' '척추 중립자세 만들 거예요'라는
필라테스 강사님의 말을 거의 이해하지 못하고 질문에 횡설수설 답했던 것에 비하면,
엄마는 두 번째 수업에서 훨씬 발전했다. 오늘은 그래도 강사님의 질문에 핀트 맞는 대답을 했기 때문에.
"우리 엄마가 꽤 명석하고 빠릿빠릿한 줄 알았는데, 첫 수업을 가보니까 우리 엄마도 늙은 것 같더라"라고 첫 수업 소감을 동료들에게 전했던 내 말을 주워 담고 싶었다.
4남매 중 첫째로 태어나 대학 졸업 직후부터 간호사로 일하고 있는 친정엄마와,
연년생 남동생을 둔 K-장녀인 나는 둘 다 사근사근하고 애교 많은 성격이 아니다.
"너 T야?"에서 정확한 T를 담당하는 둘이라 평소 서로에게 팩트와 관계없는 다정한 감정의 교류는 굳이 하지 않아 왔다.
교대근무를 해오던 엄마는 밤에 집에 없을 때가 종종 있었고, 나는 그때마다 친구들과 놀다가 새벽에 귀가해도 서로 언제 오냐는 연락 한번 하지 않았을 정도로 서로에 대한 걱정이나 연민은 물론이며 애정 섞인 표현도 하지 않는다. "엄마랑 나랑 이런 게 닮았네 까르르" 이런 식의 모녀 대화는 적어도 내 기억엔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러던 우리 모녀의 닮은꼴은 과하게 구부러지는 팔꿈치 관절이라는 것을, 두 번째 필라테스 수업에서 발견했다.
나는 팔을 끝까지 힘주어 쭉 펴면 오히려 더 과하게 팔이 꺾여 보이는, 좋게 말하면 지나치게 유연한 관절을 가졌고 나쁘게 말하면 관절이 제 역할을 못하는 팔을 가졌다.
무릎도 마찬가지여서, 내가 무릎에 힘을 주고 다리를 곧게 펴면 오히려 다리가 반대로 꺾여서 관절을 더 상하게 한다며, 늘 무릎과 팔을 '끝까지 펴지 않아야' 관절이 상하지 않는 바른 자세가 된다고 했다.
그런데 오늘 수업을 해보니 내 팔꿈치 관절은 엄마의 것과 똑같았다.
차이가 있다면 나는 팔꿈치에 힘을 덜 주고 곧게 펴는 방법을 알고 있었고, 엄마는 60년 만에 처음 본인의 팔꿈치관절을 직면하게 된 것이랄까.
수업을 마치고 집에 오는 동안, 엄마는 자신의 팔꿈치 관절 유연성, 골반의 기울기, 날개뼈의 위치를 얘기하기 시작했다.
60대 친정엄마와
'오십견'같은 얘기는 언젠가 할 것 같았지만,
'날개뼈를 가운데로 모아서 끌어내리기', '배꼽을 등 쪽으로 붙여서 명치까지 올리는 기분'을 얘기하는 날이 왔다는 게 어쩐지 어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