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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이네 Mar 18. 2022

안 해 집순이. 무릎이 부러져도

무기력, 잡아먹히기 전에 손절하기

 전방 십자인대 파열! 반월상 연골 두 쪽 모두 파열! 약간의 골절과 무릎뼈에 멍! '멍멍멍 이게 무슨 개소리이냐' 하고 생각했다. 무릎 수술을 하고 꼼짝없이 2주를 병원과 집에 갇혀 지냈다. 주말마다 해뜨기 무섭게 산을 오르고, 하산 후 막걸리를 짠! 짠! 짠! 그것도 모자라 벌게진 얼굴이 식기도 전에 클라이밍을 가야 하루를 잘 산 것 같은 슈퍼 집밖순이에게 침대생활 2주는 영원 같았다. 그날의 사고를 요약하자면 '클라이밍을 수업을 듣던 중 동작을 시도하다 손을 놓쳤다' 정도가 되겠다. 시원하게 날아오른 뒤 추락한 나는, 떨어지는 온 무게를 오롯이 무릎으로 받았다. 돌덩이에 무릎이 부딪히는 순간, 내 몸 안에서 '오도독' 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나의 소중한 오른 무릎은 그날 말 그대로 박살 났다. 몸이 불편하니 즐거운 일이라곤 먹는 것뿐이다. 요즘 치킨에는 젤리며, 민트며 굉장히 실험적이다. 무릎이 말짱했으면 친구들 만나서 재미로라도 도전했을 메뉴들인데, '뭐 저런 걸 만들었냐'하고 괜히 아니꼬웠다.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점점 괴팍해지는 것 같다. 무난하게 비비큐 황금올리브를 시키고서 또 그 자리에 누웠다.


‘오도독’


야무지게 닭다리 연골까지 발라먹는 나인데, 오도독하는 소리에 왠지 내 무릎이 아파져서 먹던 치킨을 내려놨다. 치킨을 받으러 나간 것 말고 움직인 기억이 없었다. 아픈와중에도 먹기는 잘 먹어서 차곡차곡 살만 차오른다. ‘나 치킨 왜 시켰지’를 시작으로 다소 극단적인 자책 타임이 시작됐다.


'치킨을 시킨 나는 의지가 없는 사람이고, 의지가 없는 나는 올해도 한 게 없고, 나는 왜 사냐.....?'


 갑갑함이 한계치에 도달한 나는 목발을 짚고 집을 나섰다. 겨우 10미터 걷고 1분 쉬어야 했지만, 차오르는 숨이 이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10분 거리의 코인 노래방을 30분이 넘게 걸려 도착했다. 현금을 안 챙겼구나. 엉차엉차 ATM기를 찾아 만 원을 뽑았다. <비와 당신>으로 잔잔히 시작한 두서없는 플레이리스트는 보아의 <No.1>, 자우림의 <오렌지 마멀레이드>로 피크를 찍었다. 사자후를 뿜어내듯 응축된 에너지를 쏟아냈으니 마무리 선곡은 역시 옥상달빛의 <수고했어, 오늘도>.


‘세상 사람들 모두 정답을 알긴 할까
힘든 일은 왜 한 번에 일어날까...(생략)

수고했어 오늘도
아무도 너의 슬픔에 관심 없대도
난 늘 응원해, 수고했어 오늘도’


 수고한 거 하나 없는 하루에 과분한 노래 같아 입 밖으로 부르려다 말았다. 가사를 눈으로 곱씹고 나니 왠지 기운이 나서 괜히 더 씩씩하게 집으로 향했다.


다치기 전에는 더 많은것들을 혼자 했었다. 혼밥 정도는 일상이었고 종종 혼술을 하곤 했는데, 이런 저런 생각이 많은날 따뜻한 잔술 한모금은 ‘그럴수도 있지, 괜찮아’ 하는 위로처럼 느껴졌다. 어떤 전시나 영화는 혼자 보는  나을 때가 있는 것도 알았다. 잠깐의 머쓱함만 지나가면 생각보다 괜찮은 시간들로 바뀌곤했다. 혼자 놀기는 나랑 친해지는 시간이었다. 그래서 혼밥, 혼술, 혼코노. '' 들어간  중에 못할 것이 없는 나였는데, 이번 사고는 그런 의미에서 너무 충격적이었다. 집에 혼자 기가 견디기 너무 이 든다. 집에 (대체로 누워) 있게 되자 가뭄이   씩씩함이 말라버린걸까. 무엇보다 언제 다시 회복할  있을지 모른다는 막연함이 이놈의 무기력증을  불러왔다. 곁에서 돌봐줄 사람이 없는  외롭기도 했고, 아빠가 살아있었으면 하는 생각도 자꾸만 하게 돼서 마음이  슬펐다. 몸을 제대로   없어져서 마음에 힘이 없는 건지,  반대인 건지. 시간이 지날수록 무릎은 분명 회복하는데 가만 앉아있는 것도 곤한건 왜일까.


그랬는데, 닭다리 뼈를 오도독 씹어 먹고 나니 정신이 번쩍 들었다. 슬금슬금 쌓인 익숙한 기운.  부정적인 기운은 단칼에 끊어내지 않으면  같은 곳으로 나를 끌어내릴 것이다. 마른 마음에 물을 주듯, 조금 힘을 내서 밖으로 나왔다. 이마에 송글 맺힌 땀만큼 마음이 촉촉해진다. 움직이기 힘들어서 목이 말라도  삼키며 참았던 날도 있는데, 오늘은 무려 코인 노래방을 다녀왔다. 가만 누워서 안될것들을 생각하고 있으면 정말 되는게 하나도 없다는 걸 나는 충분히 겪어서 알고있다. 집은 변함없이 고요할 테지만 나는 요란하게 수고로운 하루를 살아야지. 돌아오는 , 떨어진 낙엽들 사이로 햇살이 반짝거린다.  밖으로 나오지 못한 2 사이에 기온이  떨어졌다. 절뚝절뚝. 목발질이 서툴러  걸음  가고 깁스 사이로 삐져나온 발가락을 꼼질거렸다. 아파트 현관에 계단이 이렇게 많은  이제 알았다. 컴컴한 복도 건너편 통로에는 고맙게도 여전히 생그러운 노란색 은행잎이 떨어지고 있다. 언제나 가을이 그러하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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