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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이네 Apr 23. 2022

다행히 오늘도 퇴사하지 않았다.

불안에 휘둘리지 않기 위한 생각들

축제 같은 하루다. 노란색 자전거를 타고 망원 한강 공원을 가로질렀다. 꽃잎이 축포처럼 흩날리고 바람은 흥을 맞추듯 살랑였다. 한참을 달리다가 운동장이 보일 때쯤 자전거를 세웠다. 골대 뒤편에 앉아 잠시 숨을 돌리는데, 멀리서 웬 아저씨 한 분이 털레털레 걸어오셨다. 그리고 발 앞에 공을 놓고서 퉁퉁 차올리기 시작했다. 골대 앞에 서서 발재간을 부리는데 열심인 모습에 소년 같은 천진함이 흘러넘쳤다. 혼자 노는 것도 연습이 필요한 법. 그럴싸한 목적이 없는데도 잘하고 싶은 것이 있는 것은 행운이다. 나는 바지에 흙먼지를 툭툭 털고 일어났다. 회색 머리에 짤막두껍한 아저씨들을 보면 어쩔 수 없이 아빠 생각이 난다. 자주 하지도 않는 전화통화 끝에는 혼자 지낼수록 뭐라도 하고 놀라며 늘 잔소리를 했었다.


지난겨울, 갑작스럽게 아빠가 떠났다. 장례식이 끝나고서 유품을 정리하며 익숙한 아빠를 마주칠 때면 속절없이 무너졌다. 침대 위에 하나뿐인 베개에서는 외로운 아빠의 냄새가 났고 나는 거기에 코를 박고 울었다. 주인 없는 집. 남길 것과 버릴 것은 어떻게 정해야 하는 건지 알 수가 없는 몇 날 며칠이 지나가고 있었다. 그러다 가끔은 도무지 아빠 속에는 없었을 것 같은 어떤 사람의 흔적이 나오곤 했다. 기타와 롤러블레이드, 스케치북, 축구화, 온갖 커피용품으로 모자라 콜드브루를 내리는 거대한 유리관까지. 낭만 없는 경상도 아저씨인 줄 알았는데 이것들이 다 뭔가, 어리둥절한 마음도 잠시. 내 방구석에 놓여있는 도자기 흙이며 모카포트, 피아노 같은 것들이 스쳐 지나갔다. ‘나는 아빠 딸이군’하는 생각에 슬픈 안도감이 올라왔다. 이 많은 취미생활을 할 때는 아빠도 즐거웠을까.


요즘 아빠를 잃어버린 후유증으로, 언제든 삶이 끝나버릴 수도 있다는 상상을 한다. 두려움에 떨고 있다는 뜻은 아니다. 인생에는 끝이 있다는 날 선 자각과 그래서 더 충만한 삶을 살고 싶다는 욕심이 가득했다. 욕심이 자꾸 커지더니 ‘지금의 나는 부족하다’라는 생각이 마음에 혹 주머니처럼 자라 있었다. 차라리 모든 것을 처음부터 갈아엎고 새로 시작해야만 할 것 같기도 했다. ‘일단 돈을 많이 벌어야 해.’ 한동안은 부족한 게 돈인가 싶었다. 그때 마침 한 지인이 보험일을 5년 바짝 일하고 나면 많은 돈을 번다는 이야기를 해주었고, 그 말이 아주 솔깃했다. 흔들리는 나를 보면서 지인은 자기가 다니고 있는 회사로 오면 끝까지 책임져 주겠다며 설득을 했고, 판단력이 흐려질 대로 흐려진 나는 잘 다니고 있는 회사를 그만두겠다고 선언했다. '인생 뭐 있나 끌어주고 당겨준다는데 보험왕이 돼서 돈이나 실컷 벌자.' 당연히 이 근본 없는 결정에 응원해줄 사람은 없었고 몇몇 친구들은 집으로 찾아와 나를 진정시키려 애를 썼다.


나는 퇴사를 하지 않았다. '보험왕이 되어서 돈을 실컷 번다고?' 이제와서 생각하니 아찔한 선택이 될뻔했다 싶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놈의 혹 주머니가 떨어진 것도 아니었다. 혹 주머니가 이번에는 ‘충만한 삶을 살려면 어느 하나 놓치지 말고 만끽해야 하는 것 아냐?’ 하고 이야기했다. 그런 생각이 들자 마자 또 조바심이 났다. 봄날에 떨어지는 꽃잎도, 흘러가는 구름도, 스치는 바람도 너무 아까웠던 나는 '밖에서 하는 일을 해야 하는가 보다.' 하는 결론을 내렸다. 이 이야기를 들은 친구의 소개로 촬영 장소 섭외를 하러 다니는 로케이션 매니저가 되어보기로 했다. 한 회사와 면접을 보고 '다음주부터 시작해봅시다'하며 악수도 했다. 이번에는 정말 퇴사 직전까지 갔지만 결국 하지 않았다. 일하는 장소가 실내에서 실외가 된다는 것 하나로 해결될 문제가 아닌 줄 알고 있었고, 불안에 휘둘려 섣부른 선택을 했다가 스스로를 책망하는 일만큼은 정말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면 도대체 충만이 뭐길래, 아무도 가둬 놓은 적 없는 현실에서 탈출한다며 안절부절못하는 걸까. 이유를 찾다 보니 결국 다시 아빠의 삶을 생각하게 된다. 더 이상 함께하지 못한다는 사실과 별개로 아빠의 삶이 슬펐다. 행복할 줄 모르는 사람이었다. 어떤 일에서도 불안과 불만을 찾아내, 밝게 빛나야 하는 행복의 순간도 그늘지게 만들곤 했다. 그런데 이제 보니 아빠도 항상 부족하다고 생각한 게 분명하다. 행복을 지키기에 자신이 부족한 사람이라고 느꼈던 것 같다. 행복한 일이 일어나도 당신의 것이라고 받아들이지 못하던 아빠는 두더지 잡기를 하듯 그 순간이 머물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그런 모습을 보고자란 나는 아빠에 대한 반작용으로 두더지가 더 많이 더 높이 튀어 오르기를 바라고 있는 건 아닐까. 반대의 모양으로 살고 있다고 믿었지만, 거울에 비쳐 좌우가 반전된 아빠가 보였다. 이것만큼은 나에게 남기고 싶지 않은 아빠의 흔적이다.


하루를 충만히 살고 싶다는 욕심은 그대로 두고  시끄럽운  주머니는 떼어내 보려 한다.   목표도 좋고,  많은 경험도 좋다. 하지만 차근히 하나씩. 지금이 휘발되어 사라지지 않도록 곱씹어 보자고 다짐한다. 짠하고 마법 같은 날들이 펼쳐지기를 기다렸지만, 그런 날은 마법처럼 오지 않는다. 단지 오늘이 있을 뿐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을 축제로 보냈다. 내일은 축구공을  차고 있을 수도, 미루고 미룬 업무를 마치고서 맥주캔을 따고 있을 수도 있겠다. 오늘은 자전거 페달을  힘차게 굴려볼 생각이다.


아직은, 조금만 더 지금을 잘 사는 일에 대한 고민에 집중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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