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스레터 #30
무한도전에서 멤버들이 라디오 디제이가 되는 프로젝트를 진행한 적이 있었다. 그때 평소 라디오를 듣지 않던 사람들도 ‘크~ 라디오 감성이 있고 좋지’하며 듣기 시작했고, 나도 그중 한 사람이었다. 시간 맞춰 배철수의 음악캠프를 틀어 놓고 저녁 시간을 보내고 있었는데 정말 많은 사람이 ‘무한도전을 보고 배캠 듣기 시작했어요’하며 댓글을 달았다. 그때 새내기 청취자들에게 배철수가 했던 말이 아직도 기억난다.
‘무한도전 덕분에 많은 분들이 새롭게 라디오에 관심을 두게 된 것은 환영하는 일이지만 저는 그 관심을 믿지 않습니다. 저한테는 오랜 시간 함께 해오신 분들이 진짜 배캠 패밀리라고 생각하거든요.’
더 멋진 말로 기존 청취자들에 대한 애정을 표현했던 것 같은데 아무튼 내 기억에는 이 정도의 느낌으로 남아있다. 고등학생 때부터 듣다가 애 엄마가 된 청취자도 있는데 새삼 새로운 사람들이 좀 몰려왔다고 덩달아 신이 날 이유는 없었을 것이다. 나는 배철수가 말하는 진짜 배캠 패밀리가 되지 못하고 한 달 만에 라디오를 잊고 지냈다.
라디오는 끝까지 못들었지만 나에게도 진심이라고 자신 있게 말하는 취미생활이 있다. 신발장 속 하얗게 초크가 묻은 채로 놓여있는 구멍 난 클라이밍 신발들, 거뭇한 멍투성이의 다리와 피딱지 앉은 손등, 이제는 없으면 죄책감마저 드는 손바닥의 굳은살… 시작한 지 햇수로 4년이 된 클라이밍은 주변에서 ‘그렇게까지 해야 해?’라는 말을 들으면서도 멈출 수 없었다. 가끔은 내가 너무 과한가 싶어서 조금 쑥스러운데, 그래도 진심으로 즐기고 있는 일이 있다는 생각에 만족감이 무척 컸다.
운동도 유행이 있다. 그 유행이 등산, 골프, 테니스를 거쳐 클라이밍으로 넘어오고 있음을 느끼는 요즘이다. 우후죽순 생겨나는 암장들과 ‘너 클라이밍 한다고 했지?’라고 먼저 물어보는 친구들도 많이 늘었다. 덕분에 더 많은 암장에서 다양한 스타일의 볼더링을 해볼 수 있다는 장점도 있지만, 선무당이 사람 잡는 장면을 목격할 때의 경악스러움도 말로 다 하기 힘들다. 게다가 사람들이 클라이밍 재밌는 거 몰라줄 때는 그렇게 섭섭하더니 너도 나도 다 하는 운동이 되는 건 싫은 이상한 심보도 있었다. 클라이밍이 잠깐의 유행으로 끝날지 좀 더 대중적인 스포츠로 자리를 잡을지는 모르겠다.
‘저 이제 배캠 들어요!!!’하며 환영받으려는 청취자들을 보는 배철수의 마음이 이 비슷한 것이었을까. 어디 얼마나 가나 두고보자는 고약한 뜻은 아니다. 클라이밍이 모두를 위한 스포츠는 아님을 알기 때문에 드는 자연스러운 생각이랄까. 오히려 나는 더 많은 사람들이 구멍 난 암벽화를 간직하는 순간을 만나보기를 바란다. 클라이밍 하는 사람들끼리의 언어로 공감하고, 이번엔 어떤 새로운 문제를 만나게 될까 설레는 마음으로 원정을 떠나는 경험을 해보길 바란다.
차곡히 쌓이는 애정이 일상을 얼만큼 풍요롭게 만드는지는 겪어본 사람만 알 수 있는 일이다. 흔적으로 남은 진심은 울림이 크다. 우리는 그런 진심 하나쯤 갖고 살 필요가 있다. 그게 클라이밍이 아니면 어떠랴! 모두를 위해서 외쳐, 나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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