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는 늘 그자리에 있었지.
엄마와 함께 밖에 나가면 누구 딸이라고 이야기하지 않아도 엄마의 딸임을 모두가 알만큼 나는 엄마의 외모를 많이 닮았다. 하지만 성격은 정말 닮은 게 하나 없는 모녀지간이다. 사실 나의 성격은 아빠와 똑 닮아있다. 주변에서는 무뚝뚝하고 늘 준비성이 철저하며 매사 꼼꼼한 것이 아빠와 많이 닮았다고들 한다. 하지만 어릴 적 늘 함께 있던 엄마와 다르게 아빠는 자리를 비우는 시간이 많았다. 해외출장을 자주 나가게 되어 한 달에 거의 대부분을 집에 계시지 않던 아빠. 그래도 나는 안다. 내가 어렵거나 힘들 때 누구보다 가장 먼저 달려올 사람은 아빠라는 걸. 성인이 되어 서울에 혼자 자취하던 시절, 체하고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을 때 비행기를 타고 단번에 달려오시기도 했다.
그보다 더 어릴 땐 아빠가 대단하고 멋있었던 기억이 많다. 8살 때 가스불을 켜놓고 깜빡하고 문을 잠그고 잠들어버렸던 나. 밖에서 소리를 질러도 못 듣고 고층이라 창문을 통해 넘어갈 수도 없는 상황. 그때 아빠는 허리에 밧줄을 매고 옥상 물탱크에 묶고 창문을 통해 잠들었던 나를 구출해냈다. 사실 내가 소리를 들었다면 큰 소리에 일어났겠지만 깊게 잠들어버려 하마터면 큰 사고가 날 뻔한 일이었다. 그렇게 어릴 적, 나를 지켜주던 슈퍼맨 아빠.
하지만 사춘기 시절의 아빠는 여느 집안의 아빠들처럼 딸에게 늘 엄격했다. 늘 나에게 통금시간을 늘 지켜야 한다고 강조하셨다. 친구들과 수다 떨며 시간 보내다가 늦을 때가 있었다. 그럴 때마다 아빠는 현관문을 안 열어주셨다. (그래도 몇 시간 지나면 열어주실 줄 알았는데..결국 안 알여주신 아빠) 매정했던 아빠가 너무 밉고 화도 나기도 했다. 그러고 보면 난 사춘기 시절 너무 많이 속을 썩이는 딸이었던 것 같다. 왜인지는 모르지만 그때는 친구가 더 좋았던 감수성 풍부한 소녀였다. 사춘기가 되며 아빠와는 서먹해졌다고 생각했지만 해외에서 돌아오실 때면 내 선물을 가득 사 오시던 아빠였다. 연년생 오빠 선물은 안 챙겨도 내 선물은 예쁘고 비싼 걸로 사 오셨던 아빠.
나는 멀어졌다고 생각했는데 아빠는 늘 그자리에 있었다.
지금도 아빠의 핸드폰 배경화면은 내 사진이다. 내가 성인 되어 처음 찍었던 프로필 사진. 오글거려서 나도 잘 안 보게 되는 풋풋하던 스무 살 초반 시절의 내 모습. 그렇게 시간이 지나 어느덧 결혼을 하게 되었을 때 축사를 하시며 손을 떨던 아빠의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 늘 일에 있어 당당하고 가정에서도 멋있기만 하던 아빠였는데 그날은 한없이 어색하게 느껴졌던 색다른 아빠의 모습이다. 지금은 아빠도 많이 늙어가고 흰머리가 부쩍 늘어났다. 하지만 늘 내게는 어릴 적 나를 구하기 위해 창문으로 뛰어들던 슈퍼맨의 그림자가 늘 보인다. 그리고 늘 같은 자리에서 딸을 지켜보던 아빠의 묵묵함과 내면 깊은 따스함이 지금은 온전히 전해진다. 나의 사랑, 나의 슈퍼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