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에서 공정함이란?
한 배구 선수가 있었다. 그녀는 감독과 주변 사람들의 권유를 뿌리치고 약물 복용을 거부했다. 그러나 그녀는 그런 것에 굴하지 않고, 열심히 그녀의 기량을 갈고닦았다. 아주 열심히. 열심히 해서 그녀는 우승까지 거머쥐게 되었다. 하지만, 그녀는 mvp를 타지 못했다. 그녀는 약물의 카르텔에 들어가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인지과학의 발달에 따라 인간의 신체적, 정신적 기능을 향상해주는 약물들은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발전하고 있다. 물론, 운동선수들은 기량 향상뿐 아니라, 단순히 우리의 정신을 몽롱하게 해서 도파민을 많이 배출하게 만드는 그런 형태의 마약류 역시 나날이 발전하고 있을 것이다(본 적은 없지만, 확신할 수 있는!) 무엇이든지 사회에 통치권을 가질 수 있을 만큼 범람하는 것은 언제든 주류 사회로 편입이 용이하다는 것을 의미할 수도 있다. 물론, 그 통치권의 의미가 어디까지 인지는 또 다른 문제일 수도 있다.
하여튼, 운동선수들의 약물 스캔들 문제는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님은 분명하다.
어렸을 때는 “투르 드 프랑스(le Tour de France)” 경기에 대한 이미지들을 보며, 인간 정신의 강인함, 한계 등에 대해 겸손함을 쓸데없이 느꼈다면, 이젠 저 사기극으로 어떤 기록이 나올 수 있는지, 저 선수는 어떤 약물을 투입했을지가 궁금할 지경이다.
그만큼, 인간의 한계란 어떤 물리적, 정신적 도움 없이 저절로 이루어지긴 불가능한 신기루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신기하게 사람들은 이런 ‘불굴의 의지’에 열광하며 잘 판매한다. 따라서, 무슨 약물의 도움이라는지, 물리적인 도움(예를 들어, 전신수영복 금지 조항) 등과 같이 과학기술이 결합되어 최고의 성적을 내는 것보다는 미천한 형태의 원시적 도전이 일군 값진 승리에 더 높은 찬양을 보여준다.
생각해보면 이 역시도 계급적 정서와 관련이 있지 않나 싶다. 사람들은 스포츠를 일종의 계급투쟁 대리전으로 여기고 하위 계급이 상위 계급을 꺾을 때처럼 마냥 통쾌함을 느끼는 게 아닐까.
그리고, 일종의 ‘공정’의 룰이 적용하는 사회로 남아야 한다는 판타지가 있다. 하지만 ‘공정’의 의미를 어디까지 인정해야 할까? 모두가 다 똑같은 식단 조절과 운동 강도로 해야 하는 게 공정일까? 사실 그런 의미의 ‘공정’이란 존재할 수도 없고 존재하지도 않는다.
지금 약물을 하는 선수들을 비판하는 것은 그들이 ‘정정당당’의 범위에서 벗어나 자신의 ‘건강’에 ‘유해함’을 끼치며 청소년들에게 올바른 가치관을 제시하지 않은 ‘실망감’의 표현이라고들 한다.
하지만, 언젠가 약물들이 진화하여, 건강에 아무런 ‘유해함’이 없이 상용화된다면, 그때도 선수들을 그렇게 비난할 여지가 있을까? 물론, ‘공정함’의 시비에서는 자유로울 수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정말 대부분의 선수들이 다 암암리에 ‘약물’에 의지하여 경기에 임한다면 오히려 우리는 ‘도대체 약까지 처먹었는데 저 정도 성적밖에 못 내냐, 의사를 바꿔라’ 하고 욕을 해야 할 지경이 될지도 모른다. 기억해보자. 애당초 ‘공정’한 환경 속에서 경기를 하는 게 현실상 가능한 것인지.
구단마다 사정도 다르고, 선수들의 타고난 신체적 능력도 다르고, 각기 정신력도 다르고 성격도 다르다. 이런 환경에서 ‘공정’을 부르짖는 ‘스포츠 정신’이야말로 가장 비 공정한 분야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물론, 현재는 금지약물이 존재한다. 따라서 당연히 금지약물을 복용하는 건 ‘스포츠 정신’에 위배되는 것임에 분명하다. 그러나 몇몇의 선수들은 그것이 ‘스포츠 정신’에 위배된다는 생각보다 선수 경력에 있어 ‘빛나게 할 순간'이라 잘못 여기거나, 자신의 행동들을 합리화하고자 한다.
차라리 이건 개인의 도덕적 일탈이라고, 유혹에 넘어간 순간이라며 치부한다면 문제는 단순해질 수 있다.
그렇지만, 이러한 행위가 국가 전체의 전략적 차원으로 이루어진다면 이건 단순히 도덕성 문제가 아닌, 개인의 건강과 선택권을 ’ 국가대표‘라는 이름하에 자행하는 폭력행위나 다름없다. 이 두 가지 사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다큐멘터리를 넷플릭스에서 보고 나니, 저런 꿈을 꾸게 된 것 같다.
문제는 이 다큐멘터리들을 1년 전에 봤음에도 불구하고, 가끔씩 생각나고 나의 무의식까지 지배한 걸 보면 최근 ’ 인지과학‘의 발달 분야가 언어·기억·사고·지각·학습·발달·감정·의식·신념·행위·사회적 상호작용·동기부여 등으로 확장될 수 있다는 글을 봐서인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된다면(인간의 정신이 약물이나 과학에 의해 의존하는 세상이 도래한다면) 우리나라에서 특히 강조되는 ’ 스포츠 정신‘, ’ 불굴의 의지‘ 등이 어떤 식의 패러다임으로 바뀔 수 있을지 궁금하기도 하다.
앞서 이야기한 다큐멘터리를 소개해보자면 빌리 코벤 감독이 2018년에 만든 ‘스크루볼(Screwball)’ 과 브라이언 포겔 감독의 2017년 작 이카루스(Icarus)가 있다.
전자는 ‘약물 스캔들’ 자체가 얼마나 치밀하고 촘촘하게 이루어졌는지를 보여주긴 하지만, 폭로 과정 또한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일로 인한 우연의 우연으로 이루어졌는지, 약물 스캔들이 선수들과 가짜 의사의 도덕적 일탈인지, 명예욕인지, 아니면 억울함인지 헷갈리게 보여준다.
즉 에이로드는 제정신이 아니거나, 아니면 억울하게 느낀다거나 둘 중 하나라는 것이지만, 그 약물의 종류와 사용 범위는 상상을 초월한다. 그만큼 많은 선수들이 범람하게 사용했다는 것이다.
우리가 알 수 없는 곳에 널리 통용되는 약물, 약물 스캔들이 그동안 얼마나 많이 MLB 선수들 사이에서 나왔는지 생각해보면 이제 놀랍지도 않다. 그렇다고 다른 스포츠들은 과연 깨끗할까? 하는 의문을 늘 가지게 된다.
두 번째 작품인 ‘이카루스’는 러시아 소치 동계올림픽에서 조직적으로 이루어진 도핑 스캔들을 다루고 있다.
충격적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지만, 이는 국가에서 가장 높은 사람의 지시로 러시아 반도핑 위원장이 선수들의 도핑을 의도적으로 돕고 조직적으로 지원했다는 널리 알려진 내용을 반도핑 위원장인 그리고리 로드첸코프의 관점에서 보여주고 있다. 결국, 그는 도핑이 어떤 식으로 이루어졌는지 하나씩 보여줬으며, 실제로 이런 방법이 통할지 브라이언 포겔을 통해 실험을 실시해보았다. 물론, 여러 가지 변수로 인해 실험에 성공하진 못했다. 하지만, 그리고리는 내면적 갈등, 반도핑 위원장이면서 선수들의 도핑을 도와야 한다는 윤리적 딜레마로 인해 상당히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러시아의 국가대표들은 국가의 조직적인 도핑 시스템에 즐거운 마음으로 참여했을까? 아마 대부분의 선수들은 자신이 먹은 약물들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의사의 처방만을 믿은 채 영양제 정도로 치부하며 먹었을 수도 있다. 혹은 알면서도 모두가 다 하니 당연히 해야 하는 일종의 '카르텔'처럼 여기며 넘어갔을 수도 있다.
이번 사건은 스포츠가 국가주의와 강하게 결합될 때 그 어떤 무시무시한 결과가 이루어질 수 있음을 보여주는 또 다른 사례로 남게 될 것이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스포츠는 공정한 분야인가? 경기 자체만을 놓고 본다면 룰에 따라 승패가 결정되니 이보다 더 공정할 수는 없을 테다. 하지만, 그 과정을 생각해본다면 그 역시도 공정한가? 에 대해 많은 물음표 등을 던질 수 있을 것이다.
내 꿈속에서 소외된 배구 선수는 자신의 소신을 지켰지만, 스포츠계에서 배신을 당했다. 이런 일들이 과연 내 꿈속에서만 존재하는 상상력의 발현은 아닐 것이다. 꼭 스포츠가 아니어도 말이다. 단체의 힘은 개인의 힘보다 대부분 강하기 때문이다.
<Screwball>의 한 장면 : 다큐멘터리이긴 하지만 모든 스토리 재연은 어린이들이 했다. 사진출처 : IMDB
<Icarus>의 포스터, 사진 출처 : IMD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