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의식의 세계 15 (feat. Crip Camp)

'연대'가 중요한가? 개인이 중요한가?

by 김통

어제는 서로 다른 친구들이랑 여행을 갔다. 각자의 차를 몰고. 신기한 것은 그들은 서로의 존재를 모른다. 한 명은 대학교 친구, 한 명은 중학교 친구, 뭐 그런 식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같이 여행을 가기로 했는지도 모르겠다.


여태껏, 살면서 난 누구를 누구에게 소개해주면서 친하게 지내라고 한 적이 없다. 오며 가며 만나서 서로 인사하는 경우는 있었지만, 나를 중심으로 둘이 엮어져 개인적으로 친밀하게 지내게 되는 경우는 없었다. 물론, 반대로 나는 누군가의 친구를 소개받아 그 친구와 친하게 되는 경우는 빈번하게 일어났다. 하물며, 누가 소개팅 좀 시켜달라고 조른 적은 많지만, 한 번도 해준 적은 없다. 사람이 사람을 만나는 게 누군가의 소개로 이루어진다는 게 나에겐 엄청난 ‘책임’이 부과되는 일처럼 느껴졌던 탓일 테다. 내가 너무 고지식한 탓일 수도 있지만, 서로 다른 사람들의 취향을 파악하여 서로 잘 어울릴 걸 같은 사람들을 매칭 시켜준다는 건 여간 만만치 않은 일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어차피 인생은 개별적으로 이루어지는 단수 형태인데 그걸 내가 복수의 형태로 만드는 것 같은 느낌도 들어 약간 꺼려지기도 했다.


하지만, 개별적인 인생들의 단수 형태들이라 할지언정, 우리 사회는 그런 개별성이 층층이 쌓여 결국 복수 형태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요새 들어 ‘연대’의 ‘책임감’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된다. 그건 미국의 코로나 사태 이후 생긴 감정이다. 뉴욕에서는 하루에 몇 만 명씩 죽어나가며 시체를 동물 사체 다루듯 땅을 파고 쏟아붓는데, 부유한 해안 지방 사람들은 바닷가에서 여유 자적하며 수영을 즐기거나 “아 집에 있으려니 너무 답답해요” 라며 자신의 집에 설치된 수영장에서 찍은 사진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인스타그램에 올린다. 물론, 그건 개인의 자유이다. ‘스테이케이션’이라는 신조어가 나오듯이 삶의 형태는 그만큼 스펙트럼이 다양하게 펼쳐지는 것이다. 나는 그런 개인의 자유를 비난하고 싶지는 않지만, 최소한 인간이라면 다른 사람들의 ‘아픔’에 ‘공감’을 표하는 것이 당연한 지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이것도 ‘측은지심’이라는 일종의 유교적 관점에 기인한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사회의 발전은 ‘연대’의 기반 속에 탄탄해지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얼마 전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인 “Crip Camp” (제임스 레크 레흐트, 니콜 뉴먼 감독, 2020)을 보면, 장애인 인권 역시 개별적인 힘보다는 ‘연대’의 ‘힘’을 통해 한걸음 한걸음 발전했음을 볼 수 있다. 불과 닉슨 대통령 집권 시절만 해도 미국 역시 ‘장애인’들은 사회에서 ‘혐오’ 대상 취급을 받으며 소위 ‘시설’에 감금되다시피 했었다. 하지만, 몇몇 뜻있는(다큐멘터리에서는 히피 스타일의 교사 및 주최자들이라 표현하지만) 사람들이 장애인들을 위한 여름 캠프를 기획하고 장애인들을 모집하였다. 장애인들은 서로가 서로를 처음으로 인식하게 되었다. 모두들 자신의 어둠 속에서 갇혀 지냈다면, 그들은 세상 밖으로 나와 빛을 보며 ‘연대’의 중요성을 깨닫게 된 것이다. 모든 활동들은 회의를 통해 민주적으로 이루어졌고, 모두에게 발언 기회는 동등하게 주어졌다. 그들은 그런 경험이 낯설었지만,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캠프가 끝나고 사회에 다시 돌아왔다. 그래서 ‘사회’를 다시 바라보게 되었다. 그건 자기가 움츠러들고 피해야 하는 거대한 ‘거인’이 아니라, 자신들이 당당하게 권리를 요구할 수 있는 동등한 세상인 것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하나 둘 모여, 자신들의 권리를 주장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비장애인들은 ‘당연하게도’ 관심이 없었다. 대규모 휠체어 시위를 함에도 언론에 보도는 거의 되지도 않았다. 대중교통에 장애인들이 쉽게 이용할 수 있는 시설들을 설치해달라는 법률 제정도 했지만, 닉슨은 ‘소수’를 위한 ‘예산 낭비’라며 단칼에 거절했다. 그들은 분노했다. 그래서 보건교육복지부의 칼리파노 장관의 집무실을 무단 점거하기 시작했다. 시위가 시작될수록 그들의 결속력과 ‘연대’는 높아졌다. 그들의 동력이 떨어져 갈 때쯤 ‘블랙 팬서’에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동등한 권리를 외치는 그들의 힘은 인종이건, 장애인이건 같은 ‘연대’의 울타리 안에 포함되는 것이었다. 결국, 대중 언론에서 드디어 관심을 가지고 보도를 하기 시작했고, 비장애인들도 하나둘씩 ‘연대’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칼리파노 장관은 법안에 서명을 하였다. 그렇게 세상은 조금씩 바뀌어 나갔다.


무조건 적인 ‘연대’의 강요가 아닌, ‘공감의 연대 의식’은 세상을 바꾸는 작은 동력이 될 수 있다. 어제의 꿈은 이런 ‘연대’에 대한 나의 의문을 공고히 해보라는 메시지 같았다.

각자의 타인들은 어느 순간 같은 길을 가고 있는 ‘연대’ 속에서 함께 하고 있을 수 있다. 서로가 서로를 모르지만 말이다. 어느 시대보다 ‘공감의 연대 의식’이 절실하게 필요한 세상에 살고 있는 것 같다. 너무나 다층화 된 세계이니 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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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ip Camp(2020)" 장면 중 일부 - 사진 출처 : IM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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