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어렸을 때는 육체적으로 힘들었었다.
내 인생 최대 잠 못자고....먹고 싶을 때 못먹고....싸고 싶을 때 못 싸고...쉬고 싶을 때 못쉬니...나는 그게 가장 힘들었다.
그런데 아이가 커갈수록 나는 육체적인 것은 뒷전이고 정신적으로 힘들어졌다.
뭔가 아이러니한 이 힘듦...
분명히 전보다 잠도 더 잘자고. 먹고 싶을 때 먹을 수도 있고 이제 내가 아이한테 손이 가는 일이 덜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힘들다는 사실.
요즘 내가 아이한테 가장 하는 말에 답이 있었다.
니가 할 수 있으면서 왜 자꾸 엄마한테 해달라고 해.
니가 해봐
충분히 혼자 할 수 있는 일들을 자꾸 해달라고 한다.
그럴 때마다 내 안에서는 뭔가 용암이 들끓듯이 욱하는 감정이 올라온다.
누군가에는 아이의 이런 요구가 대수롭지 않게 느껴질 것이다.
아직 아이니까....충분히 그럴할 수 있는 일이라 할 것이다.
나도 머리로는 안다. 아직 아이니까 요구한다는 사실. 그러니까 그냥 해주면 된다는 사실.
내가 그냥 해주는 가벼운 마음이 드는 것이 아니라 욱하는 감정이 올라온다는 것은 이 지점이 내 상처받은 내면아이의 지점이라는 것이다.
기억을 나의 초1시기로 가봤다.
나는 초등입학과 동시 모든 것을 나 스스로 했던 것 같다. 아마도 나는 취학 전부터 그러했을 것이다.
나의 자발적인 의지가 아닌 학습된 무력감으로 말이다.
나는 첫째였고, 누나였기에 나는 일찍감치 큰 아이가 되어야했다.
그 시절, 특히 우리집 분위기에서 첫째인 누나인 나에게 어리광이나 투정이나 징징댐이 허용되지 않았다.
늘 나에게 따라오는 꼬리표는 니가 우리집 장녀이니까..니가 누나이니까...였다.
그 꼬리표는 나를 굉장히 짓눌렸다. 그래서 그 어린 나는 스스로 나의 한계를 설정해놓고 그런 이미지에 부합되는 나를 만들기 위해 나의 본성은 억누른채 살아왔다.
엄마가 머리를 묶어줬으면 해도 내가 묶었고..엄마가 공부를 봐줬으면 했어도 늘 그냥 말한마디도 해보지 못하고 나 혼자 공부했다.
어쩌다 용기내어 한 요구는 늘 묵살되었고 차가운 눈빛으로 돌아왔다.
그래서 나는 학습된 무력감으로 늘 요구하지 못하고 나 스스로 하는 습관이 너무 어릴적부터 생긴 듯 하다.
누가 보면 굉장히 착한 딸, 누가보면 굉장히 독립적인 아이, 누가보면 굉장히 똑부러지는 아이..딱 전형적인 착한 아이였다.
그래서 나는 어릴 때부터 조숙하다. 어른스럽다. 독립적이다. 의젖하다. 철이 일찍 들었다 라는 말을 듣고 살았다.
어릴 때는 이 말들이 굉장히 좋은 말인지 알았다.
그런데 왠걸...그 말들이 내 육아에 많은 족쇄가 되어가고 있다.
남들 눈에는 보기 좋아보였을 그 모습을 하고 산 어린 나의 마음에는 알게 모르게 곰팡이가 피어갔다.
그렇다보니 나에게 이것저것 해달라는 딸의 요구가 나의 내면아이의 상처를 엄청 건드린다.
그렇다보니 나에게 이것저것 해달라는 딸의 요구에 이성적인 생각으로 반응하기 보다 몇만분의 1초의 속도로 나를 방어하기 급급하다.
어린시절 너무 말 잘듣는 아이였던 엄마..
어린시절 너무 독립적인 아이였던 엄마..
어런시절 너무 애늙은이같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던 엄마..
애가 애다워야할 시기에 애답지 않았던 시기를 보낸 엄마는 아이의 사소한 요구들이 그냥 흘려들리지 않고 툭툭 뭔가 건드린다.
나도 좀 어릴 때 지랄맞아볼 걸...
나도 좀 어릴 때 말 안듣는다는 말 좀 들어볼 걸...
나도 좀 어릴 때 넌 언제 철드냐는 말 좀 들어볼 걸..
그런 말들을 듣지 못한 나란 엄마는 뒤늦게 그런 어린 내가 애잔하게 느껴진다.
한편으로는 나와 달리 지랄맞은 내 딸이..요구가 많은 내 딸이...아직도 철부지같이 애같은 내 딸이 다행이기도 싶다.
딸 너는 나와 달리 실컷 요구해라. 엄마가 혹여나 니가 하라고 해도 끝까지 너는 해달라고 요구해라.
너의 그런 사소한 요구가 결국 엄마의 상처지점을 비춰주기 위해 했던 행동들이었구나..
그걸 알아차렸으니 아이의 요구에 조금은 기꺼이 응해줘야겠다.
아이의 요구의 응함이 결국 뒤늦게라도 어린 나의 내면아이의 요구의 응함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