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쪽샘살롱 09] 제임슨과 하이볼
위스키에 대해 궁금한 것은 많지만, 딱히 공부할 것이 아니라면 지나치고 말게 된다. 허나 잡지식이 풍부할수록 재미있어지는 것이 주색잡기의 세계가 아니던가? 이런저런 위스키를 다루다가 어느 날 갑자기 눈에 들어온 것이 위스키의 표기법이었다. 어떤 것은 Whisky라고 쓰고, 어떤 것은 Whiskey라고 쓰고 있었다. 찾아보니 내력이 있었다. 스카치위스키(Scotch Whisky), 즉 위스키의 종주국이라고 할 스코틀랜드는 저렇게 표기하고 있다. 반면에 또 다른 위스키 종주국을 자처하는 아일랜드는 Irish Whiskey로 표기하면서 자부심을 드러내고 있다. 미국은 아일랜드를 따르고, 일본은 스코틀랜드를 따른다. 위스키란 명칭은 스코틀랜드의 고대 게일어 'Uisge beatha'에서 왔다고 하는데, '생명의 물'(water of life)이란 뜻이란다.
위스키는 보리를 발아시킨 '맥아(malt)'가 주재료이다. 어떤 곡물이든 발효를 시키면 술이 된다. 쌀로 막걸리를 만들고, 포도로 와인을 만든다. 맥주는 보리에 홉을 넣어서 만든다. 대체로 술의 계보를 훑어보면, 주재료에 무언가를 첨가하는 것을 극도로 꺼리는 흐름이 있고, 반대로 무엇이든 이것저것 넣어보는 흐름이 있다. 예를 들면, 맥주 순수령을 엄격하게 지켜야 하는 독일은 보리와 홉 외에 일체의 첨가물을 금하는 전통인데, 바로 옆 벨기에는 온갖 재료들을 넣어서 맥주를 만든다. 그런데, 곡물이나 과일을 발효해서 만든 술은 알코올 도수가 높지 않다. 그리고 여러 찌꺼기가 들어 있기도 하다. 이걸 끓여서 증류를 하면 훨씬 도수가 높은 술을 얻게 되는데 이것을 증류주라고 한다. 막걸리 등의 곡물주를 증류한 것을 전통적으로 '(증류식) 소주(燒酒)'라고 불렀다. (안동소주 등이 이에 해당한다. 녹색병의 소주는 알코올 주정에 물을 탄 '(희석식) 소주'이다.) 와인을 증류해서 숙성하면 브랜디, 이 중에 가장 유명한 것이 코냑 지방에서 나오는 브랜드들이다. 발효된 맥아를 증류해서 수 년간 숙성한 것이 위스키다.
자, 그러면 우리가 잘 아는 몇몇 위스키들이 어떻게 분류가 되는지 한번 살펴보자. 한 종류의 몰트 원액으로 만든 위스키를 '싱글 몰트 위스키(Single Malt Whisky)'라고 한다. 여러 종류의 몰트 원액을 섞어서 만든 것을 '블렌디드 몰트 위스키(Blended Malt Whisky)'라고 부른다. 반면에, 몰트만 아닌 다른 곡물의 발효 원액을 사용하는 경우들이 있다. 이를 통칭 '그레인위스키(Grain Whisky)'라고 하는데, 이 기준으로 하면 옥수수를 주원료로 쓰는 미국 위스키는 다 그레인위스키이다. 그레인위스키 원액과 몰트 위스키를 섞으면 그냥 '블렌디드 위스키(Blended Whisky)'로 부른다.
명칭과 상황으로 짐작하겠지만, '싱글 몰트'는 개성이 뚜렷하고, 비싸고, 귀하다. 위스키 세계의 최상급을 차지하게 된다. 글렌피딕, 맥캘란, 발베니, 글렌리벳 등이 이 카테고리에 속한다. 대부분 널리 알려진 대중적 위스키들은 소량의 몰트 원액 몇 종류와 그레인 원액을 섞은 '블렌디드 위스키'가 많다. 대량 생산에 유리하고, 싱글 몰트의 장점은 취하되 단점은 보완하는 방식으로 고르고 안정적인 맛을 유지하는데, 이때 마스터 블렌더의 실력이 매우 큰 역할을 할 것이다. 밸런타인, 조니 워커, 로열 살루트, 시바스 리갈 등등 거의 대부분이 이 범주에 들어간다. 예외적으로 그레인 원액을 섞지 않고, 싱글 몰트 원액만으로 블렌딩을 한 '블렌디드 몰트 위스키'가 있는데, 발베니와 글렌피딕 원액을 쓰는 '몽키숄더(Monkey Shoulder)'와 스페이사이드 원액을 사용하는 '코퍼독(Copper Dog)'이 대표적이다. 둘 다 유명 증류소의 원액들을 쓰고 있지만 가격 대비 훌륭한 특성을 자랑한다. 일반 블렌디드 위스키 브랜드 중에서도 조니 워커, 밸런타인, 로열 살루트 등은 일부 라인업으로 그레인위스키를 섞지 않은 '블렌디드 몰트 위스키' 제품을 출시하기도 한다.
아, 그리고 숙성 연도가 있다. 같은 위스키 브랜드 안에서도 숙성연도에 따라 가격대가 쭉쭉 벌어진다. 위스키는 보통 3년 이상은 숙성을 해야 하며, 많이 팔리는 것들은 보급형이라도 5년 이상, 8-12년 전후가 많고, 그 위로 올라가면 가격대가 높아진다. 블렌디드 위스키는 숙성연도를 표기하는 것이 좀 까다롭다. 섞은 원액 중에 가장 연도가 낮은 것을 기준으로 표기하게 되어 있다. 그래서 아주 고급 위스키인 조니 워커 블루 같은 경우도 섞은 여러 원액 중 하나가 연도가 낮은 것이라 아예 숙성연도 표기를 하지 않고 NAS(No Age Statement)로 나오고 있다.
위스키에서 중요한 것이 캐스크다. 위스키를 숙성하기 위해 담아두는 오크통말이다. 증류를 거친 원액을 수년간 숙성시키기 위해 오크통에 담아두는데, 이 통의 성격이 위스키에 크게 영향을 끼친다. 원래는 셰리주를 담아두었던 오크통을 재활용했었는데, 통 자체에 배어있던 오크향 외에 셰리의 풍미와 색깔도 위스키에 영향을 미친 것이다. 셰리 캐스크가 유명 위스키의 맛과 향의 원천이란 생각이 확산되면서 오크통 수급이 난리가 나기도 했다. 그러면서 등장한 기술이 발베니를 통해 유명해진 캐스크 피니쉬(cask finish)이다. 숙성기간 대부분의 시간에는 아메리칸 캐스크(버번 오크통)를 사용하고, 마지막 몇 개월간 셰리 캐스크를 써서 맛과 향을 입히는 식인 것이다. 발베니를 보면 '더블 캐스크'란 라인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캐스크 피니쉬를 활용한 것들이다. 피니쉬 방식에 따라 아메리칸 캐스크, 셰리 캐스크 등으로 구분을 해놓았다.
이것과는 조금 다른 방식의 캐스크 활용법도 있다. 캐스크 스트렝스(Cask Strength: CS)라고 해서 싱글 몰트 위스키에서 아예 오크통 별로 따로 배치(batch) 넘버를 달아서 출시를 하는 것이다. 매우 매니아틱 한 맛이 나게 되고, 보통 상당히 도수가 높게 나온다. 위스키는 알코올 함량 40% 이상이 기준인데, CS는 오크통마다의 독특한 매력이 살아있고, 50%를 넘나드는 고도수로 출시되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위스키를 즐기는 인구들 중에서 CS를 수집하고, 맛보는 취미를 가진 젊은 세대가 증가하고 있다.
위스키를 마실 때, 도수가 너무 높아서 부담스럽다고 해서 물을 타서 마시거나 하는 경우가 있다. 일본어로 이를 '미즈와리'라고 한다는데, 물의 양에 따라 도수가 조절된다. 여기서 물대신 탄산수를 타면 '하이볼(High Ball)'이 된다. 하이볼은 보통 1:3의 비율로 섞기 때문에 알코올 도수는 10% 정도가 되고, 여기에 탄산수와 레몬의 맛이 더해져서 시원하게 마실 수 있다. 콜라를 탄산수 대용으로 섞어 마시기도 하는데, 흔히 잭 다니엘스를 이렇게 마신다고 해서 '잭콕(Jack Coke)'이라고 부른다. 고급 위스키에는 추천하지 않는 방식인데, 콜라의 맛이 위스키의 맛과 향을 다 덮어버리기 때문이다. 사실 하이볼에 쓰는 탄산수도 단맛이 들어가는 것을 쓰면 비슷한 상황이 된다. 해서 그런 경우는 굳이 고급 위스키를 쓸 필요가 없게 된다. 좋은 위스키를 하이볼로 마시려면, 단맛이 없는 싱하 탄산수 등을 쓰면 된다.
보통은 상온에서 그대로 마시는 것이 좋은데, '스트레이트(Straight)' 혹은 '니트(Neat)'라고 부른다. 나는 이렇게 마시는 것이 딱 좋다고 생각한다. 종종 얼음을 넣어서 시원하게 마시는 '온 더 락(On the Rock)'을 선호하는 경우도 많은데, 이것은 시원하게 마시기 위함이지 얼음을 녹여서 물로 희석해서 마시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이때 얼음은 가능하면 딴딴하게 잘 얼은 큰 것으로 써서 녹아서 물이 되는 것을 최대한 막는 것이 좋다. 요즘은 금속으로 된 얼음대용도 나와 있어서 위스키가 희석되는 것을 막아주기도 한다. 미즈와리와 온 더락은 개념이 다른 것이라 구별하는 것이 좋겠다. 이와는 조금 다르지만, 스포이트 한두 방울 정도의 아주 소량의 물을 넣어 마시는 경우도 있다. 위스키의 알코올 풍미를 확 살려주면서 부드러운 맛을 보여준다고 한다.
서로 다른 방식으로 위스키를 마시려면 잔이 달라진다. 니트로 마시기 좋은 잔의 대표선수는 글렌케런 글라스다. 위스키 마시는 표준형 잔이라고 보면 된다. 향과 맛을 잘 음미하도록 설계된 작품이다. 온 더락은 입구가 넓은 두터운 잔을 흔히 사용한다. 하이볼을 마실 때는 큰 얼음을 넣고, 정량과 비율을 잘 맞추어 마실 수 있는 잔이 좋은데, 나는 개인적으로 맥주잔 같이 큰 잔에 잔 얼음을 잔뜩 넣어서 내는 하이볼은 비추다. 이자카야 등에서 대중화된 일본식 하이볼의 전형인데, 그보다는 작은 스트레이트잔에 마시는 것이 적당하다고 생각한다. 이자카야식 하이볼은 양은 많아 보이지만, 잔 얼음이 녹으면 결국 희석이 되어서 밍밍해지기 일쑤다. 일본 위스키 가쿠빈이 바로 이런 하이볼 붐을 타고 엄청 팔린 수혜자이다.
매일 위스키를 마시는 것이 좋은지는 모르겠으나, 고도수의 술은 천천히 적게 마시는 분위기를 만들어 놓으면 좋다. 소주 마시듯 훌훌 마시면 안 된다. 위스키라고 다 고품질의 술은 아니다. 개중에는 도수만 높고, 맛과 풍미가 떨어지는 것들도 많다. 어느 정도 완성도가 있어서 소위 데일리 위스키로 마실만한 것으로 나는 아일랜드 위스키의 대표주자인 제임슨(Jameson) 혹은 제머슨을 추천한다. 위스키의 생산지는 전 세계적으로 매우 다양해졌지만, 스코틀랜드가 그 다양성과 품질의 차원에서 가장 대표적인 곳이고, 버번위스키로 대변되는 미국이 큰 규모를 이루고 있지만, 위스키의 원조를 자처하며 양질의 위스키를 생산하는 곳이 아일랜드다. 특히 아이리쉬 위스키는 증류를 세 번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풍미가 감소할 위험이 있다지만 매우 목 넘김이 좋은 부드러움을 제공한다.
제임슨은 아이리쉬 위스키를 대표하는 가장 널리 알려진 제품인데, 니트로 마시기에도 좋았고, 쪽샘살롱에서는 하이볼의 베이스로 사용했는데 매우 평이 좋았다. 하이볼 베이스로는 일본 산토리 위스키가 생산하는 '각진 병'이란 뜻의 가쿠빈(Gakubin)이나 짐빔(Jim Beam)을 흔히 쓰는데, 나는 제임슨이 훨씬 낫다고 본다. 한 레벨 위라고 생각한다. 나는 쪽샘살롱을 열기 전에 하이볼을 메뉴에 넣고 싶었지만, 내가 그간 맛있다고 느낀 하이볼이 없었기 때문에 기준으로 삼을 맛이 없었다. 이자카야 등에서 마시는 하이볼은 거의 얼음물에 가까운 묽은 것이었기에 사람들이 하이볼이 좋다고 마시는 트렌드가 납득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가게를 열기 전에 서울에서 하이볼로 유명한 집 몇 군데를 가서 시음을 해보았다. 과연 명불허전. 베이스 위스키는 충분히 들어가야 하고, 탄산수는 풍성한 거품이 톡 쏘며 올라와야 하고, 곁들여지는 레몬 등의 가니쉬는 깔끔한 킥을 쳐주어야 한다. 그런데 사실 이런 것은 특별한 비법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공개된 레시피의 기본 비율을 지켜주면 되는 것이다. 하이볼이 맛이 없으려면 위스키가 적게 들어가거나 비율을 맞추지 않은 때문이다. 적정 비율에 괜찮은 위스키이면, 하이볼은 시원하게 한 잔 하기 딱 좋은 데일리 위스키 역할을 감당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