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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위스키 맛을 모르는데요?”

[쪽샘살롱 08] 아란 배럴 리저브

by Harry Yang

맥주보다 소주, 소주보다 위스키

위스키를 마시게 된 것은, 내가 술을 부어라 마셔라 스타일로 많이 마시는 것을 별로 즐기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부터다. 일반론적으로 말하자면 나는 알코올 도수가 높은 술을 적게 마시는 것이 낮은 도수의 술을 많이 마시는 것보다 낫다고 보는 입장이다. 알코올 도수가 낮아도, 양을 많이 마시면 결국 해독하는 과정에서 몸이 고생하게 마련이다. 높은 도수의 술은 적게 마시고, 쉽게 취하고, 숙취 없이 깔끔하게 깬다는 점이 장점이다.


나는 젊은 시절에 술을 전혀 마시지 않은 탓에 그 시절의 음주 문화에 별로 영향을 받지 않았다. 들은 것도 없고, 아는 것도 별로 없다. 그래서 술도 책으로 배운 편이다. 물론 요즘은 유튜브란 것이 있으니, 흥미로운 영상들을 한동안 많이 보았다. 대표적으로 술의 역사며, 전 세계적인 특징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을 받은 것이 <주락이 월드>란 프로그램이다. MBC의 조승원 기자가 진행하는 유튜브 교양물 시리즈인데, 주요한 주류 브랜드의 역사와 특징을 재미있게 소개하는 프로그램이다. 요즘도 종종 본다. 나는 그의 영상과 책을 통해 다양한 주류, 그중에 특히 위스키의 세계를 폭넓게 접할 수 있었다. 그는 하루키를 불러내어 술 이야기를 풀어냈고, 비틀스와 오아시스와 온갖 예술가들을 다 출동시켜 술의 역사와 문화를 종횡했던 이들의 호사스러운 행각을 보여주었다.


KakaoTalk_20251023_012112684_05.jpg 내가 갖고 있는 조승원 기자의 책들. 매력적인 이야기가 한가득이다.


나는 쪽샘살롱을 찾아오는 이들에게도 꾸준히 질문을 던져 보았다. 어떤 위스키를 마셔보았는지, 주로 어떤 상황에서 마셨는지, 그 기억은 어땠는지 등이다. 흥미로운 것은 위스키 경험이 매우 양극화되어 있다는 사실. 한쪽에는 소주, 맥주, 막걸리를 주종으로 마시면서 거의 위스키 마실 일이 없는 이들이 있다. 이들에게 위스키는 과도하게 비싼 술이다. 그러니 접대를 위해서나 마시는 것이고, 룸살롱의 음험한 분위기를 연상하게 되지, 자신의 취향에 따라 선택하는 주종이 되기는 힘들다. 아니면 내가 성공했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해주는 소품 정도? 밸런타인 30년 산 마셔봤다, 조니워커 블루를 깠다고 할 때의 그 약간 으쓱하는 뉘앙스랄까?


한국에서 왕년의 위스키 경험을 말할 때 종종 등장하는 캡틴큐는 흔히 '그다음 날 숙취가 없는 술'이라고 했다. 왜냐하면, 그다음 날 못 일어나기 때문이란다. 실제로 많은 이들이 위스키를 접하는 대표적인 경로에는 미국산 테네시 위스키 '잭 다니엘(Jack Daniel)'이 있다. 소위 '오늘 양주 사줄게'라며 선배가 끌고 가서 마셨던 술의 기억은 대체로 거기에 멈추어 있다. 하나 잭 다니엘은 비교적 가격이 싼 위스키였고, 미국사람들은 소주처럼 마시는 전형적인 술이다. 강한 위스키의 풍미가 낯설기도 했겠고, 주로 잭콕이라 부르는 '잭 다니엘+콜라' 조합의 칵테일로 많이 마시다 보니, 잭 다니엘은 위스키의 세계로 사람들을 인도한 것이 아니라, 그까지만 경험하고 닫아버리게 만드는 경우도 많았다. 이들은 위스키에 그렇게 큰돈을 지불하고 마시는 것이 허세가 아닌가 의구심을 갖곤 한다. 물론 고급 취향의 위스키를 맛보는 경우도 있지만, 그건 아주 가끔 생기는 일일뿐이다.


반대편에는 위스키에 제대로 맛을 들여 자신의 취향 따라 라인업을 갖추고 싶어 하는 향유층이 있다. 그간 자신의 취향을 개발해 와서 위스키 애호가가 되어 있는 경우도 있지만, 최근에는 젊은 세대의 위스키 입문이 눈에 띄게 늘어났다. 회식문화가 사그라들면서, 오히려 자신의 주량만큼만 마셔도 괜찮은 분위기가 되자, 양을 많이 마시기보다는 마시고 싶은 술을 적당한 양 음미하는 문화가 젊은 층에 확산되었다. 이들의 매니아적 탐구는 놀랄 정도다. 다양한 희귀종 위스키를 꿰고 있기도 하고, 대표적 위스키의 서로 다른 맛을 차례대로 도장 깨기 하듯 찾아다니는 경우도 있었다. 최근 몇 년간 한국의 위스키 수입량은 기록적으로 늘어났다. 지금은 약간 소강상태가 되었을 텐데, 코로나 시절이 여러모로 한국의 식문화와 술문화를 바꾸어 놓았다.


쪽샘살롱은 와인과 더불어 위스키를 갖다 놓았는데, 위스키 전용바에 비해서 종수가 많지 않고 비싼 것이 없다. 역시 가성비에 대한 고민이었다. 경주에는 매우 특별한 위스키까지 꽤 많이 갖추어놓은 대표적 위스키 바 <스틸룸(Still Room)>이나 <라지백(Large Bag)>도 있고, 뛰어난 수준의 칵테일을 내는 황리단의 <바 분(Bar Boon)>이나 봉황대 앞의 <바 프렙(Bar Prep)> 같은 곳이 있다. 나는 그런 곳과 경쟁할 생각은 애초부터 없었으므로, 위스키 초보자들이 와서 맛보면 좋을 엔트리 레벨로 운영했다. 정말 특별한 위스키나 고급 위스키는 지인들끼리 맛보면 그만이지 그걸 비싸게 팔고 있는 그림이 그려지지는 않는 것이다. 실제로 지인들 중심의 파티를 열어 호기롭게 위스키를 이것저것 맛보는 시간들도 몇 번 있었다.


아란 배럴 리저브

쪽샘살롱에는 위스키 관심자들이 마시면 '아, 좋은데'할 만한 녀석을 갖다 놓고 싶었다. 일단 구색은 대중적으로 알려져 있거나 마시고 있는 위스키 중에서 빈티지가 10년 안팎의 그리 높지 않은 것을 주로 갖다 놓았다. 우리가 회심의 물건으로 초기부터 추천했던 것은 ‘아란 배럴 리저브’였다. 스코틀랜드 위스키의 특성을 스페이사이드(Speyside) 지역과 아일라(Islay) 지역으로 거칠게 양분해서 보면, 전자는 달콤하고 화사한 향이 두드러지고, 후자는 피트(peat) 향이 강한 위스키를 만날 수 있다. 아란은 스페이사이드의 대표적 위스키 중 하나로 잘 알려진 '발베니(Balvenie)'와 같은 계열로 분류할 수 있다. '아란 배럴 리저브'는 아란 계열 중 가성비가 좋아서 입문형으로 추천하기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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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란(Arran)'은 병부터가 아름답다. 배럴 리저브와 10년산을 비교해 보았다. 10년이 조금 더 짙지만, 배럴 리저브의 황금색도 충분히 보기 좋다.


한 번은 쪽샘살롱에 경주에 놀러 온 젊은 남성 둘이 손님으로 들렀다. “저는 위스키 맛이 뭐가 다른지 모르겠는데요?”라고 했다. 주로 마시는 주종은 소주, 맥주 류이고, 위스키는 오래오래전에 마셔본 싼 위스키 정도였는데, 무슨 맛으로 돈을 많이 주고 마시는지 잘 모르겠더라고 했다. 아니나 다를까 이런 경우 위스키 경험의 최대치는 대부분 ‘잭 다니엘’에 멈추어 있다. 이름값으로 ‘밸런타인’을 맛본 경우가 간혹 있을 수 있다. 이들에게 ‘아란 배럴 리저브’를 추천해 주었는데, 첫 잔을 맛보면서 “어, 이건 맛이 좋은데요?”란 말을 했고, 자신이 예전 같으면 위스키에 손이 잘 안 갔을 텐데 오늘은 계속 마시게 된다면서, 그날 두 명이서 한 병을 다 비우고 간 일이 있다. 이런 화사하고 달콤한 위스키에 어찌 끌리지 않으랴?


'아란 배럴 리저브'의 상위로는 '아란 10년'도 있고, 위스키 숙성에 사용한 배럴의 종류에 따라 몇 종류가 더 있다. 당연히 상위로 올라갈수록 풍미도 진해지고, 맛의 깊이도 더 해진다. 그러나, 입문용으로는 '배럴 리저브'정도의 훌륭한 선택은 많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꽤 많은 손님들에게 권해보았는데, 크게 호불호가 없었다. 여러 위스키 원액을 블렌딩 해서 낸 것을 '블렌딩 위스키'라고 하는데, 대표적으로 유명한 것이 밸런타인과 조니 워커가 있다. 이들보다는 덜 유명하지만 요즘 젊은이들이 가성비 위스키로 많이 찾는 것이 '몽키숄더(Mongky Shoulder)'가 있다. 그래서 싱글 몰트로는 '아란 배럴 리저브', 블렌딩으로는 '몽키 숄더' 정도면 최근 들어 관심을 갖게 된 초보자의 위스키 탐험에 문을 열어주기에 부족함이 없다고 생각한다. 너무 깊이 들어가면 치명적이니 일단 입구에서 좀 더 서성거리며 분위기를 살펴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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