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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와인이 끝내주지요”

[쪽샘살롱 07] 슈퍼 투스칸과 키안티 클라시코

by Harry Yang

이탈리아 와인의 흥망성쇠

와인은 지금 워낙에 전 세계 다양한 곳에서 생산되고 있다. 혹시 알고 계시는가? 중국이 엄청난 와인 생산국이 되어 있다는 사실. 나는 아직 마셔보지는 못했으니 할 말은 없지만, 조만간 중국 와인도 시장에서 만나게 되지 않을까? 다크호스가 나타날 가능성은 언제나 있다. 와인의 세계는 흔히 구대륙과 신대륙으로 나누곤 한다. 유럽이 와인에서 구대륙이라면, 미국이나, 남미, 호주와 뉴질랜드, 남아공 등은 신대륙에 해당할 것이다. 구대륙의 대표선수는 아무래도 프랑스이겠다. 거의 와인의 종주국이나 다름없다. 보르도, 부르고뉴는 흔들림 없는 양대 산맥으로 명성이 높다. 하나 너무 세분화되어 있어서 프랑스 와인의 세계에 들어갔다가는 하염없이 헤매기 딱 좋다. 나는 그냥 눈동냥만 하고 있다. 최고급 프랑스 와인을 언젠가는 제대로 맛볼 날이 있을 것으로 기대하며 진입을 미뤄두고 있다.


대신 눈길을 준 것이 이탈리아다. 이쪽도 프랑스 못지않게 음식과 와인이 엄청나게 발달한 곳이지만, 왠지 좀 더 서민적 접근이 가능해 보이는 착시 현상이 있다. 프랑스 요리로 금방 떠올릴 수 있는 것이 마땅치 않은데 반해, 이탈리아는 파스타, 라자냐, 피자 등을 바로 꼽을 수 있다. 배달음식이나 냉동으로 간단히 먹을 수도 있지만, 제대로 만들어내면 대단한 요리가 되기도 하는 것이 이탈리아 음식의 묘미다. 마치 한국사람들에게 찌개나 백반, 소고기, 돼지고기 등이 식당에 가서 간단히 사 먹는 음식이면서도 집에서 제대로 좋은 재료 준비해서 정성 들여 대접하면 대단한 감동을 연출할 수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이탈리아는 의외로 여러 면에서 한국과 정서적으로나 문화적으로 통하는 대목이 많다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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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와인들. 좌측부터 아마로네, 키안티 클라시코, 투아 리타. 모두 멋진 와인들이었다.


슈퍼 투스칸(Super Tuscan)

이탈리아 와인의 대단한 역사를 다 꺼내놓을 필요는 없겠고, 책을 읽다 보면 ‘와인의 왕(King of Wine)’이라는 바롤로(Barolo), ‘와인의 여왕(Queen of Wine)’이라는 아마로네(Amarone)가 다 이탈리아 산이니 자부심이 대단한 것이다. 여기에 BDM이라 불리는 브루넬로 디 몬탈치노(Brunello Di Montalcino) 등도 최상급으로 꼽힌다. 나는 여기서 이탈리아 와인을 새롭게 주목하게 만든 두 개의 사건을 이야기하려고 한다.


첫째는 ‘슈퍼 투스칸’ 와인이다. 유럽 각국의 와인 부심은 대단한 것이라, 저마다 엄격한 자국의 인증 시스템을 갖고 있다. 포도의 품종, 생산 방식 등에서 전통적으로 형성된 방식을 따르지 않으면 인증제도 바깥으로 퇴출되고 만다. 20세기 중반 들어 몇몇 와인 생산자들이 과거의 인증 시스템이 구태의연하다고 느끼며 일탈을 감행한다. 이탈리아는 ‘산지오베제’란 품종을 자국의 대표 포도 품종으로 자부심을 느낀다. 앞서 언급한 바롤로가 산지오베제로 만드는 대표적인 고급 와인이다. 그런데, 어떤 유명 와인생산자가 프랑스의 카베르네 소비뇽과 메를로 품종을 갖고 토스카나 지역에서 재배해서 그것으로 와인을 만든 것이다. 외래 품종으로 만든 이런 와인을 이탈리아 와인으로 간주할 수는 없는 법이다. 그래서 이들 와인은 생산해 봤자 최하 혹은 등급 외 판정을 받아서 시장에서 좋은 값을 받을 수가 없게 된다. 그러거나 말거나, 이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와인을 생산했다.


헌데, 대 파란이 일어났다. 이들 와인이 국제적으로 대단한 호평을 받은 것이다. <와인 스펙테이터> 같은 잡지에서 1위를 차지하는 와인들이 연달아 몇 년간 등장한 것이다. 이렇게 처음 이름을 알린 것이 사시까이아(Sassicaia), 티나넬로(Tignanello, 산지오베제에 다른 품종 블렌딩), 마세토(Masseto, 메를로 100%), 오르넬리아(Ornellaia, 까베르네 소비뇽, 메를로, 까베르네 프랑 블렌딩), 솔라이아(Solaia) 등이다. 그 뒤를 이어 외래품종의 포도 혹은 자신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블렌딩 한 고급 와인들이 줄줄이 생산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이 와인들이 토스카나 지역에 기반을 둔 와이너리에서 나왔다고 해서 ‘슈퍼 투스칸’이라 불렀다. 꽤 긴 시간의 밀고 당김이 있었지만, 슈퍼 투스칸 와인들은 바깥에서 먼저 최고급 와인으로 인정을 받으면서 이탈리아 와인을 화제의 중심으로 이끌었고, 이를 바탕으로 이탈리아 국내의 인증 시스템에도 변화를 주게 되었다. 와인 생산이 전통과 혁신 사이에서 어떤 방식으로 발전해 나갈 것인지에 큰 시사점을 준 사건이었다. 슈퍼 투스칸의 등장 이후 전 세계의 와이너리에서는 이런 도전적인 시도가 여기저기서 벌어졌다. 새로운 품종을 도입하거나,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와인을 생산해 내는 일이 신대륙 전반에서도 일어났고, 세계의 와인 애호가들은 새로운 혁신의 등장을 기꺼이 반겨맞았다.


키안티 클라시코(Chianti Classico)

슈퍼 투스칸 와인이 등장한 토스카나 지역에는 또 다른 유명한 와인 브랜드가 있다. 바로 ‘키안티 클라시코’이다. 슈퍼 투스칸이 매우 현대적 혁신이라면, 키안티 클라시코는 전통 와인 브랜드의 혁신 이야기이다. 이탈리아의 키안티 지역은 15세기 이후 교황들이 즐겨 마신 와인의 산지였을 뿐 아니라, 18세기에는 이런 품질을 지역적으로 규정해서 지키게 하면서 특별히 그 중심부를 ‘키안티 클라시코’ 지역으로 설정했다. 이렇게 ‘키안티 클라시코’ 지역의 와인이 명성이 높자, 인근 지역에서 생산한 와인들도 ‘키안티 와인’이란 이름을 붙여서 팔기 시작했다. 이를 타개하고자 나온 대책이 인증을 엄격하게 하는 것이었다. 지리적으로는 키안티 지역의 중심부인 ‘키안티 클라시코’ 지역에서 생산된 포도만을 쓰고, 산지오베제를 80% 이상 포함해야 하고, 화이트와인을 섞지 않도록 했다. 이런 기준을 엄격히 지킨 와인이라야 그 유명한 검은 수탉 모양의 로고를 쓸 수 있다. 2013년부터 ‘키안티 클라시코’는 아니타(Anita, 12개월 이상 숙성), 리제르바(Riserva, 24개월 이상 숙성), 그랑 셀레지오네(Gran Selezione, 포도밭에 특별한 조건 충족 및 30개월 이상 숙성) 등 3개 등급으로 나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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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 투스칸 'Ruit Hora', 키안티 클라시코 'Villa Antinori'

나는 쪽샘살롱에 괜찮은 이탈리아 와인을 갖다 놓고 싶었다. 이탈리아 와인은 직관적으로 마시기 좋은 편에 속하고, 음식과의 페어링도 까다롭지 않고 잘 어울리는 편이다. 최고급 와인을 맛보려면 감수해야 할 복잡한 고민을 좀 뒤로 하고, 맛보는 순간 ‘어, 이거 좋은데’하는 와인을 찾고 싶었다. 다행히 나는 처음 거래를 시작했던 메르뱅을 통해 보급형 슈퍼 투스칸 ‘루이 오라(Ruit Hora)’를 소개받아서 매우 잘 활용했다. 더 이상 이 와인을 수입하지 않는다고 해서 너무 아쉬웠던 기억이 난다. 10만 원 아래로 이런 맛을 느낄 만한 슈퍼 투스칸 와인은 잘 없을 것이다.


키안티 클라시코는 선택하기가 좀 어려웠다. 의외로 직관적으로 입에 착 감기는 것을 만나기 힘들었다. 꽤 여러 종의 키안티 클라시코를 맛보았지만, 정착을 하지 못하던 차에 국내의 대형 수입사 중 하나에서 골라서 시음을 청했는데, 제대로 만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상은 이탈리아의 와인명가 중 하나인 안티노리 가문에서 생산한 것인데, '빌라 안티노리(Villa Antinori)' 역시 10만 원대 아래에서 대단한 호사를 한다는 생각을 했다. 충분히 복합적인 맛과 향을 보여주었다.


싼 이탈리아 와인을 마시면 그냥 좀 시고 달다는 인상만 남는다. 복합미가 살아나지 않으면 너무 단순하게 평평한 신맛 나는 와인에 머물고 만다. 이탈리아 와인은 그보다 더 나은 평가를 받을 자격이 있다. 음식과 콜라보가 이루어지면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활발하고, 사람 기분을 좋게 만들어준다. 나는 이탈리아 와인을 깊이 경험할 날을 기다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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