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와이 슌지의 세기말 디스토피아적 판타지
새 천년이 도래 한지도 언 25년째. 이와이 슌지의 1996년작 <스왈로우테일 버터플라이>는 세기말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작품이다.
이와이 슌지 하면 떠오르는 영화는 단연 <러브레터(1995)>이다. (이 영화로 하여금 난 아마도 여지껏 짧은 단발머리 여성을 선호하는지도 모르겠다.) 바로 다음 해에 <스왈로우테일 버터플라이(1996)>를 내놨다. 청순멜로에서 디스토피아적 세계관으로 필모그래피를 확장한 것 같은 모습이다.
영화는 당시 일본의 가상의 미래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엔화가 기축통화가 되고 엔고 현상으로 세계에서 일본으로 엔화를 벌기 위한 골드러시가 일어난다는 배경설정으로, 엔화벌이로 모인 사람들에 의해 엔타운이라는 도시가 생기고 그곳으로 모여든 이민자들을 엔타운즈로 칭하며 멸시의 대상으로 여겨진다는 내레이션이 영화 도입부에 깔린다.
2025년 현재 일본의 엔화 가치는 원화와 거의 동등하다. 그리고 일본의 GDP 대비 부채율은 250%가 넘었고(선진국 중 최고) 지속되는 엔저와 저성장으로 영화의 설정과는 정반대의 현실. 당시 이와이 슌지의 미래에 대한 상상은 많이 빗나갔다.
그런데 영화 제작 당시 90년대를 생각해 보면 저런 상상이 가능했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소니, 파나소닉, 토요다, 닛산, 혼다, 에반게리온 등 일본을 대표하는 브랜드 기호가 각광받던 시대였다. 이 영화 이후지만, 코미디언 출신 감독 기타노 다케시가 <하나비 (1998)>로 베를린 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타고, 이마무라 쇼헤이가 <우나기 (1999)>로 깐느 영화제에서 황금종료상을 타지 않았는가, 그것이 왜 그리 부럽게 느껴졌었는지. 사실 문화적 열등감이란 정말 다 진 것 같은 기분이었다. 모든 것이 선진국 일본의 황금기로 보였다. 그랬던 시대에 미래를 상상했다면, 그래 이와이 슌지의 상상은 당시에는 설득력이 있지 않았을까 싶다. 그리고 우리는 세기말 암울한 IMF에 허덕이지 않았는가? 일본 대비 한국의 세기말은 빛과 어둠으로 대비되는 차이가 존재했다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그러나 21세기 우리의 시대가 찾아왔다. 2002년 <취화선> 깐느 감독상, 2003년 <올드보이> 황금종려상, 2007년 <밀양>, 2010년 <시> 각본상 등, 21세기엔 한국영화가 세계에서 인정받기 시작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결국엔 봉준호 감독으로 하여금 아시아 영화로 아카데미상을 받은 최초 아시아인 감독이 탄생하는 쾌거가 있었다. <기생충 2019> 봉준호, 그뿐인가 한강 작가의 노벨상 수상은 아시아를 넘어 세계의 별이 된 것 같은 기분을 누리게 해줬다. 이런 기분이었을까? 일본의 세기말은 현재의 우리가 느끼고 있는 문화적 우월감 같은 것에 취해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토양에서 나온 영화가 이 영화가 아닐까? 약간은 들떠 있으면서 과장된 듯한, 완성도가 떨어지면서 겉멋이 잔뜩 오른 감성적 이미지들이 산발한 쇼트들. 왠지 B급 감성이 풍기는 병맛마저도 느껴진다. 전작 <러브레터>와의 간극이 너무 크다. <스왈로우테일 버터플라이> 이후에 ‘이와이 슌지’는 <4월 이야기(2000)>, <하나와 앨리스(2004)>, <릴리슈슈의 모든 것 (2005)> 등 자신만의 색을 담은 영화들을 근래에도 계속해서 만들어 내고 있다. 그의 영화를 많이 보진 못했지만..
“오겡끼 데스까~!” “와타시와 겡끼데스~!” 감동의 <러브레터>의 여주인공이었던 ‘나카야마 미호’는 2024년 54세의 나이로 작고 하였다. ‘히트쇼크’가 원인이라는 떠도는 말로 일본이 한동안 시끄러웠다. 일본 주택이 난방이 취약 하다는 사실을 이때 알게 되었다.
이번엔 영화 얘기 보다 쓸데없는 소히 ‘국뽕’에 잠시 취한 듯 했다. <스왈로우테일 버터플라이> 이 영화를 보고 약간의 실망을 감출 수가 없었다. 앞으로 좋은 일본영화를 만나길 기대하는 마음으로 이 두서없는 글을 마무리 하고자 한다.
마지막으로 뜬금 없지만 일본의 거장 ‘오즈 야스지로’의 말을 옮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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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볼 일 없는 건 유행을 따르고, 중대한 일은 도덕을 따르며, 예술에 있어서는 오직 내 결정을 따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