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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마/아니무스의 자극을 사랑으로 오해하는 이유

강력한 에너지로 인해 다르게 해석할 언어가 없다.

by stephanette

*사진: Unsplash


1. 아니마/아니무스는 ‘사랑보다 강한 힘’이다

사람이 누군가를 ‘사랑한다’고 느낄 때

그 안에는 여러 성분이 섞여 있다.

호감

욕망

친밀감

안정감

설렘

하지만 아니마/아니무스 투사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에너지이다.

이건 인간의 ‘정신 에너지’의 핵심에서 나오는 거라 그 강도가 일상적 사랑의 몇 배이다.

왜 이렇게 압도적이지?

왜 이렇게 깊지?


정상적인 호감보다 훨씬 크다.

이 사람과 관련된 건 다 진지하게 느껴진다.

이 강한 에너지의 이름을 인간이 잘 몰라서

그냥 ‘사랑인가?’라고 해석해버리는 것뿐.


2. 인간의 뇌는 ‘설명 불가능한 감정’을 자동으로 ‘사랑’으로 번역한다

사랑은 인간이 가진 가장 강력한 감정 언어다.

설명하기 가장 쉬운 감정 언어이기도 하다. 그러니,

“이 감정은 너무 강렬하다. 그럼 이건 사랑이겠지.”

라고 생각하게 된다.

뇌는 복잡한 무의식적 구조를 이해할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장 가까운 감정 개념(=사랑)으로 자동 번역해버린다.


하지만 실제로는 사랑이 아니라

내 아니마가 깨어나는 충격

내 아니무스가 외부에서 반사되는 느낌

내 무의식이 반응한 ‘심연의 울림’

깊은 심리 구조의 활성화

이런 것들이다.


3. 아니마/아니무스 투사는 ‘자기(Self)’로 돌아가려는 원리이다


"우리는 사랑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
자기(Self)를 되찾기 위해 상대를 통로로 삼는 것이다."
- 칼 G. 융


즉, 사랑의 에너지라고 느끼는 그 감정은 사실

자기 정체성 변형

통합 욕구

무의식의 움직임

성장 동력

이런 내적 변화의 에너지이다.

사랑은 그저 포장지에 지나지 않는다.


4. 아니마/아니무스를 자극하면 ‘삶 전체를 움직일 힘’이 생긴다

한동안은 이런 생각을 했었다.

“사랑은 강력하니까 그 원동력을 얻으려고 머리를 쓰는 거 아닐까?”라고.


무의식은 아니마/아니무스 에너지를 얻으면

사람을 어마어마한 변화로 이끌 수 있다.

글이 쉬워지고

창조성이 폭발하고

집중력이 강해지고

자아가 재구성되고

내면 구조가 정렬되고

고통을 해석할 수 있게 되고

이 모든 변화는 사랑의 힘이 아니라 자기(Self) 회복의 힘이다.

하지만 인간의 의식은 그걸 모른다.

그래서 이렇게 생각한다.

“이 사람을 사랑해서 이렇게 되는 건가?”

그러나

정확히는…

“이 사람이 내 무의식을 자극해서 나는 내 본래 힘을 되찾고 있는 중이다.”


5. 그래서 사람들은 착각한다

이 강력한 에너지는 이 사람 때문일 것이다.

이런 감정은 사랑밖에 설명되지 않는다.

그러니 나는 사랑에 빠진 것이다.


하지만 실은

그 사람이 아니라

그 사람이 건드린 자신의 무의식 때문이다.

그래서 투사가 걷히면 사랑도 걷히고

성장으로 가게 된다.


6. 결론

아니마/아니무스를 자극하는 경험은
사랑보다 더 강하고, 사랑과 혼동될 수밖에 없다.

이 위력적인 감정을 설명할 언어가 없어서

사람들은 가장 익숙한 명칭인 사랑으로 부르는 것뿐.


그 감정의 정체는

사랑이 아니라 통합의 신호이다.


그것은 바로,

아니무스의 회복.

내부 구조의 정렬.

자기(Self)의 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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