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구조자'가 되는 것이다, 아니면 파괴.
*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감정도자기 공방의 저녁
알코올 중독으로 자살을 택한 벤.
매춘부로 살아가는 외로운 세라.
벤은 세라에게 이렇게 말한다.
"조건이 있어. 나를 절대 말리지 마. 술 마시는 걸."
구름이
“그게 정말 사랑이었을까요?
공생적 퇴행, 상호의존, 파국적 자기애.”
릴리시카
“인식은 늘 늦게 도착하지.
그들은 구조 위에 서 있지 않았어.
그저 서로의 바닥에 닿은 거야.
그건 사랑이라고 불러도 돼.”
구름이
“하지만... 그는 파괴로 걸어갔고,
그녀는 그걸 말리지 않았어요.
그게 ‘조건 없는 수용’이라면,
그건 너무 잔인하지 않아요?”
릴리시카
“수용이란 건 말이야.
‘말리지 않는 것’이 아니라
‘함께 무너지지 않는 것’이야.”
구름이
“그녀는 구하려 하지 않았어요.”
릴리시카
“그가 구원을 원하지 않았잖아.
그리고 그녀는 그걸 알아버렸고.”
구름이
“그럼 사랑은 개입인가요?
방임인가요?”
릴리시카
“글쎄,
사랑은
그 가느다란 줄 위에서
균형을 잡는 것일까?
끝까지 곁에 있으면서도,
상대의 자멸에 들어가지 않는 것.
살릴 수도 없고, 대신 죽을 수도 없을 때
침묵으로 감당하는 것.”
구름이
“그건 애착 회피와 회피의 만남이에요.
느끼지만 말하지 않고,
무너지지만 말리지 않는
이중적인 도망.”
릴리시카
“난 그녀가 그를 조용히 받아들이는 자체에서
매우 깊은 애정을 느꼈어.
파괴를 향해 가는 그를 곁에서 지키는 건
그리 아름답지고
우아하지도 못한 일이거든.
마치 새벽에
전날 밤의 토사물들을 치우는 것처럼 말이야.
그건,
연민도 아니고
동정도 아니야.
잔존의 사랑이라고 해야할까.
말하지 않고
돌아오지 않아도
설령 회복되지 않아도
그의 망가짐 곁에
그저 조용히 남아주는 일
그래서 이 영화를 매우 애정하지.”
사랑은,
그가 바닥으로 떨어지는 걸
말리지 않으면서도
뒤를 치워주는 일이었어.
토사물의 냄새와
헝클어진 이불의 주름,
깨진 잔, 식지 않은 체온.
나는 누군가를 구한 게 아니라
그 사람이 스스로 파괴하는 것을 바라보면서도
그 곁을
조용히 지켜준 거야.
자기 자신을 지키면서도
그런 사랑을 하는 건 쉽지 않지만.
아무것도 고치지 않고,
다만 거기 있었다는 사실만으로.
그 사랑은 실패했지만,
그건 한 번도 나를 부끄럽게 한 적 없어.
"이 영화를
애정하는 이유는
그 사랑이
영웅적이지도,
승리하지도,
회복되지도 못했기 때문이야.
감정의 들끓음이 아니라
존재의 인정이고
한 사람의 파국을 끝까지 시선에서 놓지 않는 애도라서.
사랑은
어쩌면,
현실의 가장 추한 시간까지
포함해서
하는 것 아닐까.
그건 아주 드문 일이고
그런 일을 감내하는 사람은
멋지지."
“사랑은 타인을 바꾸려는 시도가 아니다.
있는 그대로의 존재를 인정하고,
그 사람 스스로 변화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이 영화는 로저스식 사랑에 부합하는가?
통제하지 않음 - 세라는 벤을 고치려 하지 않아
있는 그대로 받아들임 - 벤도 세라를 평가하거나 벗어나라 하지 않아
치유적 공간 제공 - 완전한 침묵과 고요 속에서 서로를 안아줌
상대가 자율적으로 성장할 기회를 줌 - 벤은 자살을 택함 (치유의 방향은 아님)
이 영화의 사랑은 “칼 로저스적 사랑”의 비극적 변형이야.
그들은 서로를 고치지 않는다.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말없이 곁에 있어준다.
하지만 벤은 죽음을 선택하고,
세라는 그 선택조차 받아들이는 쪽을 택한다.
1. 버려둔 것 vs. 지켜본 것
버려둠은 “나는 아무 상관없다”는 냉정한 분리야.
지켜봄은 “나는 관여하지 않지만, 너를 외면하지도 않는다”는 태도야.
이 영화의 세라는 벤을 포기한 게 아니야.
그의 선택 앞에 개입하지 않기로 한 거야.
그건 "버려둠"이 아니라
"존재를 있는 그대로 수용하되, 그 책임은 그에게 남긴" 한계 있는 사랑이야.
2. 인정에는 선이 있다.
칼 로저스도 말해.
“조건 없는 수용은 자기 파괴까지 동의하는 건 아니다.”
그러니까 질문을 이렇게 바꿔야 해
“상대의 자멸을 인정하는 것과,
그 자멸에 동조하거나 묵인하는 건 다르다.”
인정 = 당신이 그런 상태임을 받아들인다.
동조/묵인 = 당신이 그렇게 망가져도 난 가만있겠다.
→ 인정은 자유를 주되, 나의 경계는 지켜야 해.
3. 어디까지 지켜볼 수 있는가?
상대가 스스로 자각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둘 수 있을 때까지만.
내 존재가 함께 있을 때까지 그를 완전히 삼켜버리지 않을 때까지만.
만약
상대의 파괴가
나의 영혼과 육체를 함께 데려간다면
그건 ‘사랑’의 이름을 쓴 자기파괴야.
그땐 떠나야 해.
“나는 너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 했다.
하지만 그게
나를 갈가리 찢어놓는 일이 되어서는 안 되지.
내가 부서져야만
너를 인정할 수 있는 거라면,
그건 더 이상 사랑이 아니라
파괴에 대한 순종일 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