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의 그라운드 제로
- 재난은 문학의 근원이다.

신형철 문학 평론가의 강연

by stephanette

현대 문학의 경향과 앞으로의 방향성을 다루며, 평론가로서 문학을 읽고 해석하는 시각을 소개한다.

신형철 문학평론가이자 서울대 영어영문학과 교수의 강연 “문학의 그라운드 제로에서”는 ‘재난이 문학의 근원(Ground Zero)이 될 수밖에 없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그는 먼저 911 테러 현장의 ‘그라운드 제로’ 개념을 빌려, 문학도 ‘재난이라는 충격 속에서 탄생’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글은 아래 강연의 요약이다.


1. 재난 문학의 정의와 역사적 사례

평소 ‘가상의 재난’을 배경으로 한 작품은 제외하고, 실제로 발생한 재난에 대응해 작가가 써낸 문학을 ‘재난 문학’으로 한정한다.

1923년 관동 대지진 때 기쿠치 간의 고뇌(“문학은 사치품이 아닌가?”)와,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당시 다카시 가스코 등이 “우유와 가솔린이 더 시급할 뿐, 예술은 사치가 아닌가”라며 문학의 쓸모를 의심했던 사례를 소개하며, “가장 절망적인 순간에도 그럼에도 쓰는 것만이 문학의 가치”라고 강조한다.


2. 인간 행동 패턴: 연대와 갈등

1807년 하인리히 폰 클라스트가 쓴 『칠레의 지진』을 통해, 대규모 재난 직후 나타나는 ‘사회적 연대’와 ‘갈등’의 이중적 양상을 묘사한 바 있음을 보여 준다.

재난 시대에 인간이 어떻게 서로를 돕고, 때로는 분열하는지를 살피는 것이 재난 문학의 기본 과제임을 역설한다.


3. 두 가지 키워드: 치유 서사와 대항 서사

치유 서사(Healing Narrative): 공동체가 재난 피해로부터 회복하기 위해 필요한 문학적 역할. 예컨대, 9·11 테러를 다룬 조너선 새프란 포어의 『Extremely Loud & Incredibly Close』에서는 진실을 알고, 슬픔을 충분히 드러내며, 현실을 받아들이는 과정을 통해 개인과 공동체가 치유에 이르는 과정을 보여 준다.

대항 서사(Counter-Narrative): 재난 인식이 만들어낸 편향된 서사를 비판하고 교정하는 역할. 이를테면 모신 하미드의 『주저하는 근본주의자』는 “아랍인과 무슬림을 테러리스트로 일괄 인식하는 미국 내 분위기”를 고발함으로써, 정당성 없는 편견에 저항하는 문학의 기능을 잘 드러낸다.


4. 2011 동일본 대지진 이후의 작품들

“스즈메의 문단속”(新海誠 감독 애니메이션): 앞선 두 작품이 개인의 사랑 이야기로 귀결되었다면, 이 작품은 “재난 그 자체와 정면으로 맞서야만 존폐할 수 있는 공동체”를 그린다. 특별히 “뒤문(避難로) 열림을 막기 위해 희생자들의 목소리를 듣고 다시 닫아야 한다”는 상징적 장치를 통해, 기억을 유지해야만 재난을 통제할 수 있다고 역설한다.

야마다 요코의 『헌사하는 소설』: 3·11 이후 6년의 ‘가능성 시기(renewal period)’를 건너뛰고, “더는 기회가 없는 암울한 미래”(방사능 오염으로 돌연변이를 겪는 아이와 장수하는 노인의 이중 시점을 통해)로 진입한 일본 사회를 묘사한다. 작가는 “필연적으로 재난을 수용하는 과정에서만, 진정한 탈원전·탈재앙의 가능성을 가늠할 수 있다”고 읽힌다.


5. 21세기는 ‘재난의 시대’

“이제 재난 문학과 여타 문학을 구분할 이유가 없다. 모든 문학이 재난이라는 운명을 함께 안고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한다. 즉, 일상이 곧 재난으로 수렴되고, 재난이 일상이 되어 버린 시대에, 문학은 “단순한 오락이나 모험담을 넘어, ‘공적 성찰’과 ‘사회적 인식’을 심화하는 도구”가 되어야 한다고 결론지었다.


요약하자면, 신형철은 실제 재난이 발생한 현장성을 바탕으로 “문학은 쓰여야만 가치가 있다”며, 재난 직후 나타나는 인간의 연대와 갈등을 포착하는 치유 서사와, 재난을 둘러싼 편향적 인식에 저항하는 대항 서사 두 축으로 재난 문학을 설명한다. 끝으로 “21세기는 이미 재난의 시대이므로, 모든 문학은 재난과 함께 사유되고 행동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하며 강연을 마무리한다.


https://youtu.be/IdExr-jXlZM?si=g_HxYg3BQ8pUElR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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