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평론가 신형철의 영화 감상 강연
아래 신형철 문학평론가의 강연에 대한 요약이다.
재난 이후 삶을 긍정하게 하는 두 번의 사랑
—자연이 이끄는 첫사랑과 의지로 내려진 두 번째 선택
신형철 문학평론가, 서울대 영어영문학과 및 비교문학 협동과정 강사
그는 최근 인상 깊게 본 히로카즈 고레에다 감독의 《드라이브 마이 카》
류스케 하마구치 감독의 신작 《아사코》(원제: Asako I & II)에 대해 분석
1. 영화의 기본 플롯과 구조
- 원작 소설과 제목의 의미
《아사코》의 원작 소설 제목은 “꿈속에서도 깨어나서”로, 영화 속 두 남자(바쿠와 료헤이)가 각각 꿈과 현실을 상징한다는 점을 암시한다.
- 등장인물과 시간의 흐름
바쿠(아사코의 첫사랑): 오사카에서 아사코가 처음 만난 남자. 갑작스레 돌연 사라졌다가 2년 뒤 다시 나타나는 인물.
료헤이(바쿠와 꼭 닮은 이복남동생): 도쿄에서 아사코가 우연히 만나 사랑을 키우는 상대. 바쿠와 닮았기에 혼란을 겪다가, 3·11 동일본대지진 당일 도쿄 거리 한복판에서 재회한 뒤 관계를 재확인한다.
아사코: 두 남자를 잇는 주인공. 한 남자와의 관계에서 상처를 입고 움츠려들었다가, 닮은 다른 남자를 만나 다시 사랑을 시작한다. 이 과정에서 그녀가 내린 두 번의 선택이 영화의 중심축을 이룬다.
- 공간적 배경
오사카: 첫 번째 사랑을 경험하고 버림받는 장소.
도쿄: 료헤이를 만나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며, 3·11 동일본대지진을 직접 겪는 무대.
센다이(도호쿠 지역): 봉사활동을 통해 지진 피해 현장을 함께 경험하며, 바쿠와 료헤이 사이에 놓인 존재로서의 아사코가 진정으로 손을 잡아야 할 인물을 깨닫는 결정적 계기가 만든다.
2. “사랑과 재난의 구조적 은유”
1) 첫 번째 선택: 자연이 이끄는 충격
바쿠와의 만남은 전형적인 ‘운명적 사랑’처럼 보이나, 사실 아사코는 바쿠에게 “붙들 수밖에 없는 존재”였다. 이는 3·11 지진 같은 돌발적 충격을 상징하며, “땅이 무너질 때 가장 먼저 붙잡아야 할 대상”이라는 은유로 묘사된다.
아사코가 바쿠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그가 자연스러운 충격(사랑의 열병)이었기에 스스로 인지하거나 통제할 여지가 없었다. 이때의 선택은 ‘자연(무의식)에 따라 이끌린 선택’으로, 프루이트적 관점에서 “의식적 선택이 아닌, 자연이 이끄는 대로 한 선택”으로 본다.
2) 두 번째 선택: 인간적 자유의 발현
도쿄에서 료헤이를 만난 뒤, 3·11 지진이 발생하며 아사코는 다시 한 번 충격을 겪는다. 그러나 이번에는 “진짜 붙들 인물이 필요하다”고 직감하며, 바쿠가 아닌 료헤이와 관계를 맺기로 결심한다.
이 두 번째 선택은 “자연에 이끌린 선택이 아니라, 자신의 입법(의지)을 통해 내린 선택”으로, 칸트의 ‘자연에서 자유로 나아가는 선택’ 개념에 부합한다. 즉, 아사코가 ‘자기 의지로 결정하는 선택’을 통해 바쿠에게서 벗어나 진정한 의미의 사랑과 삶을 모색한다는 점이 강조된다.
3) 재난과 사랑의 병렬적 서사
재난(3·11 동일본대지진): 도쿄 한복판에서 지진이 발생하자 사람들은 공황 상태에 빠지고, 영화는 평범했던 거리를 난민이 도로를 걷는 장면으로 전환하며 ‘재난의 불가피한 파괴력’을 실감나게 보여 준다.
사랑의 전환(바쿠→료헤이): 지진 현장에서 료헤이와 재회한 아사코는, “붕괴된 일상 속에서 발 딛을 수 있는 유일한 삶의 근거가 바로 그 사람”임을 깨닫는다. 이 순간이야말로 “사랑과 재난이 구조적으로 상동(相同)하다”는 평론가의 핵심 주장이 드러난다.
3. “재난 이후의 삶은 새로운 진정한 것을 만들어내는 일”
영화가 던지는 질문
“첫 번째 사랑(바쿠)으로부터 버림받았던 아사코는 왜 다시 그 붕괴된 세계(오사카)로 돌아갔을까?”
“버려진 첫사랑(자연적 선택)은 평생 잊히지 않는 상처”라며, 스스로 버림받은 존재였기에 어쩔 수 없이 바쿠에게 이끌릴 수밖에 없었음을 지적한다.
“두 번째 사랑(료헤이)은 어떻게 그녀에게 ‘붙들 인물’이 되었는가?”
재난 현장에서 고통을 모르는 바쿠와 달리, 료헤이는 아사코가 봉사활동을 하던 센다이 지역에서 직접 재난을 경험했기에 “고통을 아는 자”이자, “함께 돌봄을 실천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로 자리매김한다.
“더러운 강물이야말로 진정 아름다운 것임을 재난 이후에야 깨닫는다”는 평론가의 해설처럼, 영화는 파괴된 대지(오사카→도쿄→센다이) 위에서 “진짜 사랑과 삶의 근거”를 찾아가는 과정을 ‘더러운 강물’이라는 은유로 제시한다.
두 가지 층위의 선택
첫 번째 선택: “바쿠에게 붙잡히는 것”은 자연이 끌어당기는 선택으로, 아사코가 스스로 의식하지 못한 상태에서 벌어진 사건.
두 번째 선택: “료헤이를 붙잡는 것”은 칸트가 말한 바와 같이 “자유의 입법으로 내린 선택”이며, “자연을 넘어선 인간적 자유”의 발현이다.
그 선택이 의미하는 바
아사코가 결국 “두 번째 선택을 통해 재난 이후의 삶을 긍정하는 태도”를 보여 주며, 관객에게 “어떤 충격(재난)을 겪었든, 그 경험으로 알게 된 진실과 고통이 새로운 삶의 근거가 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예술가의 윤리와 희망
평론가는 “311 같은 대참사 이후 예술가라면, 남은 이들에게 가능한 한 희망을 만들어내고 전해야 할 사명이 있다”고 덧붙이며 강연을 마무리한다.
요약
신형철은 이 영화를 “사랑과 재난이 서로를 비추는 구조적 은유”로 읽으며, 아사코가 내린 두 번의 선택(자연이 이끈 첫사랑 vs. 의지로 택한 두 번째 사랑)을 통해 “재난 이후의 삶은 새로운 진정한 것을 발명해야만 긍정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특히 “가장 절망적인 순간에도 사랑과 돌봄을 매개로 한 인간적 선택을 통해 회복의 실마리를 찾는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며,
대재앙 앞에서도 “예술가는 ‘없는 희망’이라도 만들어내야 할 윤리적 의무가 있다”는 자신의 신념을 피력하였다.
https://youtu.be/Q0IBR8g2G6s?si=U41CqZIjaaFfzHk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