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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풍 Feb 12. 2020

#08 D라인의 아름다움

아빠육아

임신 초기의 걱정과는 달리 밝음이는 엄마의 뱃속에서 하루가 다르게 건강히 커갔다. 결혼 전 45~47kg 선이던 아내의 몸무게도 점점 늘어나기 시작했고 더불어 연애 때의 S라인을 자랑하던 몸매도 임심 5개월이 넘어서자 완연한 D라인을 뽐내기 시작했다. 임신기간을 알차게 보내기 위한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매일 밤 자기 전 아내의 배에 튼살 크림을 발라주고 동화책을 읽어주면서도 매일 봐서인지 아내도 나도 큰 자각을 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1주일에 한 번씩 배가 나오는 사진을 기념한다고 찍은 사진이 화근이 될 줄은 꿈에도 상상을 못 했었다.


어느 날 평소처럼 하루 업무를 마치고 집에서 혼자 고생하고 있을 아내를 위해 서둘러 귀가를 하는데 울고 있는 아내를 발견했다. 무슨 일인가 싶어 철컹 내려앉는 마음. “무슨 일 있어?” 몇 번의 물음에도 아내는 대답 없이 울기만 한다. 대충 눈치를 살피니 다행히 밝음이에게 무슨 문제가 생긴 건 아닌 거 같았기에 일단 한시름 놓고 시간을 갖고 달래 보기로 했다. 알고 보니 모 기업체에서 진행하는 산모교실에 참여하려고 외출 준비를 하던 중 얼마까지 맞던 옷이 맞지 않아 충격을 받고, 자연스레 자신의 D라인의 몸매를 이제야 비로소 직시하게 된 아내! 추억이 되고자 그동안 일주일 간격으로 찍어 놓은 배 사진들을 보며 감정의 둑이 무너져 내렸던 것이다.


생각해보니 지난 5개월이라는 시간 동안 내 나름의 챙김 들이 아내를 위한 것들이 아니라 오롯이 밝음이를 위한 것들이었음을 비로소 자각되었다. 동갑내기 커플로 처음 만남부터 유난히 닮은 구석이 많아 서로의 끌림으로 사귀게 되었고 누구에게도 느껴보지 못한 안락함과 동질감에 1년의 연애 끝에 서로에게 안식처가 되어주고자 결심한 결혼이었는데 누구보다 자존감이 강한 아내를 좀 더 세심히 챙기지 못해 미안할 따름이었다.


자칫 가만히 놔두면 ‘산전 우울증’까지 갈 수도 있는 상황이었기에 조기 진화에 나서고자 옆에서 실컷 울도록 지켜준 뒤 ‘D라인의 아름다움’에 대해서 우울한 생각을 떨쳐 버릴 수 있도록 며칠간 애를 썼다. 다행히 진심이 통해 얼마 되지 않아 아내도 원래의 밝은 모습으로 돌아왔고 비 온 뒤에 땅이 굳듯이 우리 가족의 사랑도 더 깊어져 갔다.


돌이켜보면 참 아찔한 상황이었다. 일명 ‘영혼의 감기’라고 일컫는 우울증이 어떤 사소한 것들이 시발점이 되어 발화가 될지 아무도 모를 일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한번 다친 마음의 치유가 많은 시간이 걸릴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부디 이 글을 읽을 많은 남편들은 임신기간 전후로 해서 아내가 생각보다 심한 우울증으로 고생할 수 있음을 알고 가장 가까이에 있는 만큼 뱃속에 있는 태아를 챙기는 것 이상으로 아내를 챙겼으면 싶다. 결국 그게 아내의 스트레스도 줄여주어 태아가 더욱 건강한 지름길이기 때문이다.


한차례 태풍이 지나고 난 뒤 우리 부부에겐 소소한 변화가 생겼다.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오롯이 서로에게 집중하는 시간 갖는 것. 왠지 말이 거창해 보이지만 사실 별거 없다. 하루 종일 뱃속에 아이를 담고 고생한 아내의 일상의 이야기들을 좀 더 ‘공감하며 들어주고 안아주기!’ 그게 다였으니 말이다. 남편들이여 ‘D라인의 아름다움’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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