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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산도 구들장논을 아세요?

by 도심산책자

우리는 살면서 다양한 공간이나 장소를 방문하고, 또 다른 공간으로 이동하며 어떤 때는 특정 공간과 영영 이별하는 선택을 하기도 한다.


나에게 특별한 공간을 떠올려 보라고 한다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공간이 바로 ‘지베르니’다.


화가 모네가 여생을 살면서 그림을 그리고, 자신만의 정원을 가꾸던 곳, 지베르니.

지베르니가 나에게 특별한 공간으로 기억되는 이유는 아름다운 풍경과 평화로운 정취때문만은 아니다.

일상에 지쳐 있던 시기에 어디로든 떠나보자 마음먹었을 때 가장 먼저 떠올렸던 곳이었다. 그곳에서라면 답답함과 좀처럼 해소할 수 없는 갈증을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이처럼 어떤 공간은 단순한 물리적 장소를 넘어, 우리의 경험과 기억, 그리고 감정과 결합되어 비로소 특별한 의미를 갖게 된다.


얼마 전 청산도 이야기를 들었을 때, 그곳의 특별함에 마음이 일렁였다. 나는 2024년을 잃었다고 생각했다. 여기서 ‘잃었다'라고 표현하는 이유는, 그해에 대한 특별한 기억이 남아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만큼 쳇바퀴처럼 반복된 일상은, 어느 하루를 특정할 수 없을 만큼 비슷한 모양과 형태였다. 매일 아침 비슷한 마음으로 비슷한 길을 지나 녹초가 되어 같은 집으로 들어와 비슷한 모양으로 잠들었다.


잃어버린 시간을 되찾고 싶었다.

아니, 시간을 멈출 수는 없지만, 적어도 천천히 흐르게 할 수는 있지 않을까.

그렇게 ‘느림’이라는 키워드로 여행지를 찾기 시작했고, 마침내 만나게 된 곳이 바로 청산도였다.


청산도 여행을 키워드로 검색을 하다가 눈에 띄는 독특한 공간을 마주했는데, 그건 바로 ‘구들장논’이었다. 벼농사에 적합하지 않은 척박한 땅에서, 사람들이 살아가기 위해 터득한 방식. 바닥에 돌을 깔아 물을 머금고 온도를 유지하도록 만든 논.


구들장 논을 보는 순간, 이곳에서라면 이미 지나간 시간도 다시 만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이곳의 시간은 흘러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마치 차곡차곡 쌓이며 계속되는 것처럼 느껴졌다.


나무의 나이테를 보면 성장의 흔적이 남아 있듯이,

구들장 논도 그곳을 지나온 사람들의 삶과 시간을 그대로 품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단순히 돌을 깔아 만든 논이 아니라, 땅과 타협하고, 오랜 시간을 들여 천천히 다듬어 온 삶의 흔적.


구들장 논은 단순한 농경 방식이 아니라, 쉽게 무너지지 않도록, 뿌리를 깊이 내릴 수 있도록, 조금씩 쌓아 올린 삶의 토대였다.

마치 우리가 소중한 가치를 하나씩 쌓아가듯이.


우리는 ‘시간’이라는 것을 눈으로 직접 볼 수 없지만, 구들장 논처럼 세월이 실체화된 모습을 통해 마주할 수 있다. 그것을 보고 있으면, 시간은 단순히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쌓이고, 남고, 결국 우리를 만들어가는 것임을 깨닫게 된다.


구들장 논 아래 차곡차곡 놓인 돌들 위로

무수한 계절이 지나고, 모가 자라며, 초록빛 벼가 황금빛으로 익어 갔을 것이다.


나는 그곳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리고 나에게 묻는다.

지금 내 삶을 단단히 지탱하는 돌은 무엇일까?

나는 어떤 것들을 차곡차곡 쌓아가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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