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변하지 않을 것은 무엇인가요?

by 도심산책자

모리오카 서점을 아세요?

‘일주일에 단 한 권의 책만을 전시하는 서점’이라는 독특한 콘셉트로 유명한 서점입니다.

매주 한 권의 책을 선정하고, 그 책과 관련된 전시, 이벤트 등을 기획해서 책을 깊이 있게 경험할 수 있도록 했는데요. 이곳에서 책은 단순한 판매 상품이 아니라, 하나의 예술 작품처럼 조명되는 공간입니다.


단 하나의 작품.

문득 얼마 전에 읽은 ‘부암동 랑데부 미술관’이라는 책이 떠올랐어요.

이 소설 속 가상의 미술관 ‘부암동 랑데부 미술관’에도 단 하나의 작품만 전시됩니다.

그 하나의 작품은 바로 관람객이 의뢰한 작품인데요.

관람객이 주인공이 되고, 그 한 사람의 서사가 작품으로 재탄생하는 겁니다.

이 비밀스러운 작업은 비밀에 부쳐진 작가의 그림과 글로 전시됩니다.


다양한 인물들의 서사 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은 것은 김춘호 할아버지의 서사였어요.

어느덧 상실에 익숙해져 가는 70대의 김춘호 씨.

그가 잃어버린 ‘젊음’을 그려 달라고 하는 장면이요.


할아버지 마음속에서는 불가능했던 것을 작품에 어떻게 담아냈을까요?


그렇게 작품이 전시되고 작품을 확인하러 미술관으로 향한 할아버지가 발견한 것은

젊은 시절부터 70대인 현재의 모습까지 세대별로 그린 그림이었어요.

그리고 작가의 말속에서 '젊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제가 찾아낸 건 젊음의 흔적이 아니라 김춘호 님의 진짜 젊음이었어요. 세대를 거치면서 외적인 모습은 어쩔 수 없이 늙어갔지만 변하지 않은 게 있더군요. 그건 바로 눈빛이었습니다. 형형하게 살아 있는 그 눈빛만은 전혀 늙지 않고 있었으니까요. 저는 이번 작품에서 그분의 변하지 않는 그 눈빛을 그려내는 데 힘을 기울였습니다.”


“김춘호 님 당신은 이미 젊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 그러니 젊음을 부러워도 두려워도 마세요. 전 당신의 변하지 않는 눈빛이 넉넉하고 좋아 보입니다. 아주 오래전부터 변하지 않는 보석처럼 간직해 온 청년의 눈빛을 잊지 않고 살아가시면 좋겠습니다.”


순간 전율이 일었어요.

우리는 나이가 들면서 다양한 상실을 경험합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 잃어버린 것에 대하여 아쉬워하고, 앞으로 잃어버릴 것에 대해 걱정합니다.

그런데 그런 것에 천착되면 이미 본인이 갖고 있는 것을 보는 감각을 많이 잃어버리게 되지요.


춘호 할아버지의 눈은 젊음의 생기를 잃지 않았었지요.

이 대목에서 내가 오래도록 잃지 않을 나의 본연의 모습은 무엇일까를 떠올려봤습니다.

이미 갖고 있는 것에 대한 감각을 되살리고 있었거든요.


두 가지 단어가 동시에 떠올랐어요.

“머뭇거림과 단단함”

머뭇거림은 우유부단함의 상징이요. 단단함은 확실한 주관의 상징인데,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단어가 연결되는 순간이었어요.


무언가 하나를 결정할 때 굉장히 신중하게 생각하는데, 어느 순간 행동하기 전에 머뭇거리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이 많았더라고요.

그런데 그런 머뭇거림이 쌓이고 쌓여서 결국 단단함이 된 것이 아닐까.

그러니 상반되어 보이는 이 두 단어가 대립이 아니라 결국 같은 길 위에 있는 과정은 아닐까.

이렇게 보니 머뭇거림조차도 의미 있는 여정이 되는 거였어요.


머뭇거림은 불확실함 속에서도 신중하게 나아가는 과정이고,

단단함은 그 과정을 거친 사람이 얻는 내적인 강인 함이고요.

결국 머뭇거림도 단단함도 나를 이루는 본질적인 모습이었어요.


여러분이 간직하고 있는 것, 변하지 않을 것은 무엇인가요?

keyword
화요일 연재
이전 14화청산도 구들장논을 아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