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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잠 Feb 19. 2021

일상 210219

 우리 집 거실에 난 베란다 창을 통해 밖을 바라보면 큰 산이 보인다. 오늘처럼 출근하지 않는 휴무일에는(아내가 매장을 보는 날이다) 모처럼 만의 집에서의 멍때림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최대한 의식 속 잡다한 업무들을 걷어내고 오롯이 나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는 날이다. 앙상하고 무채색의 나무들이 산 중턱을 점하는 와중에 사철나무의 짙은 녹색이 함께 점하고 있다. 겨울 하늘 특유의 청명한 깊이는 모든 곳이 원의 중심인 마냥 시선을 집중시킨다. 간간이 나타나는 자동차들이 자신의 속도를 보여주고 있지만 그 외의 대부분은 그 자리에 고정되어 있다. 속도라는 것은 의미가 없다는 듯이. 


 멈춰있는 것은 죄악이라는 시간 속에서 살던 때가 문득 떠오른다. 거의 2년이 되어가는 도시 외곽 현재의 삶이 있기 전, 대부분의 삶을 복잡함과 시끄러움이 당연시되는 곳에서 살았다. 대학을 포함한 학창 시절 전체를 살았던 대구를 비롯해 1년 반의 짧은 기간 동안 일을 했던 울산의 바닷가 도시, 그리고 다시 대구로 돌아와 아내와 함께 살던 도심의 한중간. 물론 누군가에게는 편리한 삶을 영위할 수 있는 모든 조건이 제대로 갖춘 '도시'였겠지만, 내게 있어 그곳은 기회만 된다면 하루빨리 벗어나고 싶다는 도피를 꿈꾸게 하는 곳일 뿐이었다. 결혼 전과 결혼 후 약 3년 동안 함께 살던 중심가의 오피스텔에서의 삶이 결국 나를(그리고 우리를) 하루 빨리 떠나게 했을지도 몰랐다. 


 비슷한 금액에 훨씬 넓은 집을 구할 수 있었다. 더군다나 어떠한 소음이나 스트레스가 없었다. 더운 여름날 베란다 창을 활짝 열어도 지나가는 자동차 소리나 이웃집의 소음 혹은 갑작스레 지나는 비행기의 소음을 전혀 들을 수 없다. 뿐만 아니라 저녁 7시만 지나도 조용한 대기는 한층 더 가라앉고 벌써 밤이 되어 내일을 준비했다. 휴식과 개인 작업에 있어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조용함'을 마침내 이곳에서 얻을 수 있었다. 날씨가 좋으면 언제든 시야를 가득 채우는 앞산의 존재와 확연히 차이가 나는 청명한 대기, 그리고 폐 속 저 밑바닥까지 정화해주는 신선한 공기까지. 가끔 '이렇게까지 모든 것을 누려도 되나..?' 싶을 정도다.


 물론 불편한 점도 있다. 야심한 밤. 각자의 작업의 시간을 가지다 갑작스레 출출해져 간식을 먹고 싶다거나 시원한 맥주를 마시고 싶다거나 할 때 그 욕구를 즉시 해소할 수 없다는 점. 건강을 생각하면 장점일 수도 있겠지만 그 욕구를 잠재우는 것도 당시의 밤의 시간엔 여간 아쉽지 않은 게 사실이다. 근처에 편의점이라도 있으면 바로 가서 만 원을 주고 맥주 네 캔을 사와 함께 벌컥벌컥 마실 수 있겠지만 이 도시의 삶은 그것까진 허락해주진 않는다. 하지만 대략 2년이라는 시간은 '미리' 쟁여놓는 습관을 우리에게 선사하였고, 다행인지 불행인지 요즘은 장을 한 번 볼 때 맥주 혹은 와인을 넉넉히 사놓는 버릇이 생겼다. 억지로 찾은 불편한 점이 사실은 장점에 더 가깝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다. 


 이렇게, 오늘의 휴무일을 보내려고 한다. 최근 구상을 좀 더 구체화해가고 있는 단편소설 작업을 시작으로 오늘 밀려있던 글 작업을 하나씩 풀어헤치려고 한다. 그리고 까먹지 않고 바깥을 멍하니 바라보려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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