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의 끝자락에서
나의 2018년을 뒤돌아 보기.
회고를 해보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지만 작년은 여행하느라 바빠서 별다른 회고를 해보지 못한 것 같다. 브런치에도, 네이버 블로그에도 남기지 않았고, 인스타와 페이스북에 자그마하게 남긴 게 끝이다. 2년 전인 2016년에는 뒤늦은 2016년 회고록으로 남겼었다. 2년 만에 남겨보는 2018년의 회고.
#1. 1월, 새해 첫날
2018년 1월 1일. 새해를 영국 맨체스터에서 맞이했다. 느지막이 일어나서 새해를 맞이하며 가장 먼저 한일은 사람들에게 새해인사를 보내는 일이다. 이번에는 특히 여행 중에 만난 인연들에게 메시지를 많이 보냈다. 각자를 만난 지역의 인사를 담거나, 혹은 내가 기억하는 각자의 희망, 소원들에게 응원하는 메시지를 보냈다. 새해 아침부터 인사를 생각하느라 정신적으로 조금 피곤해지기는 했지만, 괜스레 기분이 좋았다.
기분이 좋게 메시지를 날리고 나니, 라다크에서 만났던 여행사를 하시는 분이 딸의 새해 인사를 보내왔다. 너무 기뻐 눈물이 다 났다. 괜스레 그리웠다. "너는 날 기억하고 있구나, 다음에 삼촌이 꼭 다시 가서 맛있는 거 사줄게"라는 다짐을 했고, 나는 결국 4월에 라다크로 향했다. 아마 이 아이의 영향이 컸을 것 같다.
#2. 2월, 한국에 들리다.
2월에 잠깐 한국에 들렀다. 덕분에 비행기 안에서 보내버린 2018년 2월 12일은 내 인생에서 없는 날이 되었다.
한국에 들러서, 다시 출국까지 한 달 남짓 되는 시간 동안 서울에 잠시 살았다. 이직을 결심하고 있던 도중 하이브 아레나에서 잠시 살았는데 여기서 만난 외국인 친구들과 스타트업계의 사람들이 나의 이직 결심을 더욱 부추겼다. 물론 여행을 당장 끝낼 생각은 없었고, 6~7월쯤에 이직을 하기 위해 이력서를 준비했다.
#3. 3월. 이직 실패 & 유튜브 시작
이직 회고글에 나와있듯, 3월에 낸 서류들은 죄다 탈락했다. 단 한 군데도 합격 연락이 오지 않았다. 역량도 부족한데 이력서나 포트폴리오가 잘 정리되어 있지 않았으니 그럴 수밖에, 조금 야속하다고 느끼기도 했다. 면접이라도 봤으면 좋았을 텐데, 면접까지 다가가는 단계가 쉽지만은 않았다. 더군다나 7~8월부터 일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처음부터 꺼내서 그런지 3월에 시도한 이직은 실패를 했다.
유튜브도 시작했다. 처음엔 JM님 따라 시작을 했다가 여행 관련 영상을 올렸다. 한몇 개월간 유튜브를 하며 깨달은 건, 나는 유튜브를 할만한 성격이 아직 못된다는 점이다. 생각보다 카메라를 보고 말하는 게 쉬운 것은 아니었다. 유튜버는 아무나 되는 것이 아니었다. 유튜버 들은 정말로 대단하고 노력을 많이 한 사람이고, 노력이 부족했던 나에게는 역부족이었다. 그래도 하나의 목표가 생겼다. 언젠간 나도 유튜브를 제대로 다시 해보아야겠다는 그 목표.
#4. 4월 인도 여행 시작
이직 실패의 쓴맛을 뒤로하고, 다시 마음의 고향 같은 곳, 인도로 떠났다.
지난번에 인도를 여행할 때는 정말 마음이 행복하고 개운한 느낌이 많이 들었는데 이번 여행은 중반부 이후부터는 마음이 그다지 편하지 않았다. 취업에 대한 부담감도 있었고, 앞으로의 인생에 대한 고민, 그리고 줄어드는 통장잔고 걱정 등 걱정도 많았으며 라다크에서 만난 인연과의 일 때문에, 쉽사리 생각이 정리가 되지 않고 머리가 복잡했다. 여러모로 정신적으로 힘들었던 인도였어서, 5월이 되자마자 네팔로 넘어가버렸다. 그토록 다시 가고 싶어 했던 인도였는데..
#5. 5월 네팔 포카라 재방문 & 길거리 사진판매, 안나푸르나 트레킹,
포카라에 오니 마음이 다시 편안해졌다. 작년에 세계여행을 시작하고 포카라에 처음 왔을 때 느낌은 '편안함'이었다. 항상 여행을 하며 타지인인 느낌, 외지인인 느낌을 절대 버릴 수 없었는데 포카라에서 만큼은 달랐다. 윈드폴 사모님은 나를 아들처럼 대해주셨고 나는 그곳의 사람들과 너무 많은 정이 들었다. 그렇게 난 2개월을 넘게 머물렀다.
지나왔던 모든 순간과 인연들이 전부는 아니지만 꽤 많이 남아있는 모습을 보며 “아직” 혹은 “다행”이라는 마음으로 안심을 한다.
포카라에 다시 방문하고 적었던 글이다. 작년에 만났던 그 인연들이 남아 있어 너무 행복했다. 연락도 없이 갔었는데 작년에 만난 인연이 또 포카라에 있었기도 했다. 삶이란 추억을 향유하며 살아가는 것이라더니, 그 추억에 얽힌 인연들이 남아있다는 것이 참 다행이었고, 또 거기서 만난 새로운 인연들 덕에 행복했던 포카라 생활이었다.
사진을 팔아보았다.
원래는 이곳에서 만난 인연들에게 감사의 표현을 하고자 인화를 했었는데 누군가가 "한번 팔아보면 어때요?"라는 이야기를 꺼내 윈드폴 1층에서 팔기 시작했다. 사실 사진을 진짜 사는 건지 아니면 청년 한 명이 여행하느라 고생한다며 사주는 건지 모르겠지만, 과분한 사랑을 받았고 4만 원 정도를 투자해 30만 원 정도를 벌었다. 살면서 알바를 해본 적도 없고, 내가 직접 만든 제품을 사는 고객을 만나본적이 없었던 나에게 꽤나 좋은 경험이 됐다.
네팔에 다시 온 이유는 산 때문이다. 운동이라곤 좋아하지 않던 애가 안나푸르나 트레킹을 해보고선 트레킹에 푹 빠졌고 트레킹을 하며 굉장히 건강한 기운을 얻었다. 네팔 여행 이후로 카즈베기 산에도 오르고, 순례길도 걸었다. 이 모든 것은 안나푸르나 덕이다.
작년에 왔을 땐 고산병이라고 느끼지 못했는데 이번엔 고산병을 직격타로 맞아버렸다. 틸리초 호수를 보고 다시 베이스캠프로 돌아내려 오는 길에 코피 연속 세 번 과 두통이 찾아왔다. 휴지를 안 들고 가서 코피가 멎을 때까지 벌러덩 누워서 코피를 멈췄다.
아무래도 빨리 틸리초 베이스캠프를 탈출해야겠다 싶어 열심히 걸었는데 폭풍 같은 천둥번개를 동반한 눈+눈보라 때문에, 랜드 슬라이드 구간에서 진짜 지옥을 맛볼 뻔했다. 천둥이 울릴 때마다 옆의 돌들이 움직였다. 눈앞에서 돌들이 굴러내려 가는 걸 보면서 걸으려니 정신이 혼미했다. 고산병을 처음으로 제대로 겪어봤다.
눈을 흠뻑 맞으며 다음 마을에 도착한 나, 결국 하산을 결정했다. 쏘롱라를 못 넘은 게 너무 아쉬웠지만, 그 와중에도 안나푸르나는 아름다웠고, 멋진 산이었다.
#6. 6월 귀국
2018년 6월 19일
2-3월에 잠깐 한국에 있던 시간을 포함해 도합 479일간의 세계여행을 끝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2월에 한국에 잠깐 들어올 때는 “여행 더 하고 싶다”가 주된 생각이었는데, 이제는 “정착을 좀 하고 싶다”라는 욕구가 생겨서 돌아오게 됐다. 돈도 없기도 하고, 이제는 정착을 하기 위해, 오랜만에 집에 들러 집밥을 먹었다. 엄마의 품이란 무엇인가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7 7월 엽서 판매 & 이직 성공
포카라에서 얻었던 용기를 바탕으로, 한국에서는 직접 엽서를 팔아보았다. 인터넷으로, SNS로, 그리고 플리마켓에서 총 15만 원가량을 투자해 80만 원가량을 벌었다. 많은 사람을 만족하는 사진을 고른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고, 덕분에 수요 예측이나 재고에 대해 관리를 잘 못해서 특정 사진만 너무 많이 남게 되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했지만 좋은 경험이라고 생각한다. 덕분에 남은 엽서들은 주변 사람에게 선물로 다 돌아갔다.
엽서 판매와 동시에 이직을 준비했고 생각보다 짧은 공백 기간을 두고 이직에 나름 성공했다. 나이 때가 많이들 젊은 회사라서 당황스러웠다. 전 회사에서는 기본이 30대 중후반이었는데 여기는 20대 중후 반인 사람들이 대다수인 직장이라서 매우 당황했다. 심지어 20살도 있어서 더 당황스러웠지만 회고글을 쓰는 지금 아직까지 다니고 있는 걸 보면 잘 다니고 있노라 스스로 평해 본다.
#8 8월 대 실패
실패했다. 무엇을?
사랑을 실패했다. 4월에 복잡했던 심신은 그 한 사람에게 마음이 간 이후부터 시작됐다. 인도에서 만나고 헤어진 뒤로 네팔을 여행하며 마음이 진정되나 싶었는데 한국에서 가끔씩 만나며 다시금 마음에 불이 지펴졌다. 사람 마음은 쉽게 컨트롤할 수 없다는 것도 알고 있었지만 마음만 앞섰고 오랜만에 느낀 감정은 대 실패로 돌아갔다. 뜨거운 마음으로 여름의 나날들을 보냈다.
#9 9월 송파구로 이사 & 1주 1 글 프로젝트 시작
송파구로 이사했다.
회사에서 남자 기숙사를 해준다는 소식에 냉큼 기숙사에 들어갔다. 생각지도 못했던 기숙사 생활을 시작했고, 신림에만 살던 나에게 송파구라는 동네는 컬처쇼크였다. 동네가 이렇게 깨끗할 수도 있다니?
삶의 질이 많이 개선됐다. 출퇴근이 걸어서 10분으로 줄며 퇴근 후 많은 것을 할 수 있었고 아침을 먹고 출근하는 여유도 생겼다. 9 to 6 회사를 처음 다녀서 출퇴근이 힘들었는데 기숙사 덕분에 한시름 놓았다. 영화관이 근처에 있는 것도, 공원이 근처에 있는 것이 이렇게 좋을 줄 몰랐다. 이래서 사람들이 강남, 강남 하는 거구나 싶다.
1주에 1 글쓰기 프로젝트도 시작했다. 글을 쓰는 습관이 잘 안되어 있어 고민이던 나에게 제안을 해줬던 동료의 말을 덥석 물고 글을 썼다. 이후 1주를 제외한 매주 글을 쓰고 발행했다. 네이버에만 올린 글도 있고, 브런치에만 올린 글도 있지만 중요한 건 글 쓰는 습관이 확실하게 잡혔다는 것이다. 새벽 네시까지 잠도 못 자고 글을 쓰는 경우도 많았지만 그런 끈기 덕에 이런 습관이 생기지 않았나 싶다. 나는 약속을 지키려 지금도 새벽 다섯 시까지 이 글을 써내려 가고 있다.
#10 10월 일본 교토 여행
갑자기 얻은 연휴에 무엇을 할까 고민을 하다가 비행기 표를 예매했다. 행선지는 교토, 약 3년 전에 처음 혼자 여행했던 곳이다. 다시 방문해서 그런지 더 정감이 가는 분위기였다. 날씨도 한몫했다. 추억을 다시 한번 곱씹는 여행이었다. 특별한것도 없었지만, 특별하지 않았기에 항상 곁에 있을것 같은 추억이 된다.
#11 11월 태국 치앙마이 & 빠이 여행
미루고 미루고 미뤘던 여름휴가를 드디어 11월에 가게됐다. 이미 여름은 지났고, 예전부터 가고 싶었던 러이끄라통 축제에 가려고 치앙마이로 향했다. 치앙마이에 온 김에, 축제가 시작하기 전날까지는 배낭여행자들의 무덤이라던 빠이를 여행하고, 축제날부터 치앙마이를 여행했다.
치앙마이는 두번째 갔는데 고즈넉한 느낌이 여전히 좋았다. 언젠가 디지털 노마드로 이곳에서 살아볼수 있을까? 아니, 살아보아야 겠다.
빠이는 아름답고 평화로웠고 러이끄라통은 정말 아름답고 영화와도 같은 순간이었지만, 생각보다 좋은 여행이 아니었던것 같다. 나에겐 사람이 부족했던 여행이었다. 바쁘게 다닌 여행은 사람을 얻기가 참 힘들었다. 언제쯤 다시 느긋하게 여행을 다닐수 있을까?
#12 12월 ...
다이어트도 시도해보고, 사이드 프로젝트도 시도해보고 다방면으로 노력을 하긴 했지만 12월에는 생각보다 이룬것도, 한게 없다. 무언가 많이 심신이 지쳐있다. 태국 여행으로 풀릴거란 스트레스도 많이 풀리지 않았기에 더 힘든 한달이 되지 않았나 싶다. 연말이라 모임도 잦아서 무언갈 시도할 시간도 부족해서 좀 아쉽다. 차라리 이번달은 잘 쉬고 내년에 더욱 재미난것을 할 체력을 비축해야겠다. 내년엔 또 재미난 것을 해보아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