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첫째가 물었다.
아빠는 편지를 쓰고 있냐고. 아이들을 씻긴 뒤 정신없이 정리하느라 흘려들었는데, 부엌에 서서야 블라인드에 걸어둔 메모지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지난봄, 남편이 생일 때 준 꽃다발 속에 들어있던 것이다. 긴 편지나 선물과는 별개로 그 작은 메모지도 버리기 아까워 오며 가며 가장 자주 볼 수 있는 곳에 두었었다. 아. 설마 생일 편지를 말하는 건가? 순식간에 생각이 거기까지 미쳐서 아이를 다시 불렀다.
"수야. 혹시 편지, 생일 편지 말하는 거야? 수 생일 때 아빠가 편지를 써줬으면 좋겠어?"
"응. 아빠가 편지랑 꽃다발을 준비해 줬으면 좋겠어."
아이의 구체적인 대답에 놀람 반 당황 반. 보는 것이 이토록 무섭구나. 아빠가 엄마 생일을 어떻게 챙겼나 눈 여겨본 아이는 무려 생일 두 달 전부터(!!!!!!!) 자신의 생일을 챙기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도대체 생일은 언제 오는 거냐고' 묻는 수.
지칠 법도 한데 매일 똑같은 질문을 했다. 생일은 8월 말인데 때는 6월이었고, 아이의 질문을 해결할(?) 방도가 필요했다. 남편은 달력에서 날짜를 하나씩 지우는 법을 알려줬고, 나는 생일로부터 지금 날짜를 빼서 며칠이 남나 세어보는 법을 알려줬다. 수는 두 가지를 다 했다.
하원하는 길이면 오늘 누가 안 왔는지 얘기해 주는 수. '우리 반은 모두 몇 명인데 누가 안 왔어요'로 시작했던 대화는 '그래서 안 온 친구들 빼면 모두 몇 명이야?'라고 묻는 엄마의 질문으로 인해 이제 '우리 반은 모두 몇 명인데 누가 안 와서 오늘은 몇 명이었어요'로 이어진다.
거기에 생일이 며칠 남았나 세어보고 숫자를 말해보는 과정이 더해졌다. (아빠의 방법은 실패. 수는 달력 모든 날짜에 X를 한꺼번에 다 그려두었다) 처음엔 어렵다며 대답을 못 하던 아이는 시간이 흐르면서 달라졌다. 날짜가 점점 줄어서 그런가. 생일이 가까워져서 그런가. 의외의 학습 효과란 바로 이런 건가. 여하튼 곧잘 뺄셈을 잘하게 되었고, 생일이 되었을 땐 바라던 대로 아빠에게 편지와 꽃다발을 받았다는 이야기.
수도 아빠 생일 때 편지를 써주기로 한 약속을 지켰다.
그렇지만 '내 생일은 느리게만 오고 아빠 생일은 빨리 와서' 날짜는 안 세어줬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