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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늘 Oct 18. 2024

가짜로



윤이 네 살 가을에 제일 많이 쓰는 말은 '가짜로'다. 


'엄마, 나빠. 엄마, 미워. 엄마, 안 사랑해. 흥칫뿡!' 봄에는 이렇게 말하더니 지금은 그 말들의 끝마다 '가짜로'를 붙인다. 엄마, 나빠. 가짜로. 엄마, 미워. 가짜로. 엄마, 안 사랑해. 가짜로. 아이는 이제 아는 것이다. 진심이 아닐 땐 어떻게 해야 하는지. 똑같은 놀이를 해도 그렇다. '나는 아기야'가 아니라 '나는 가짜로 갓난 아기야' 혹은 '나는 가짜로 엄마야'하고 진짜와 가짜 사이에 선을 긋는다. 


어느 날, 그러던 윤이 언니를 때리는 시늉을 했다. 눈치를 보다가 혼날 것 같으니 '가짜로'를 붙여서 상황을 넘어가려는데 아무렴. ‘아무리 가짜여도 누군가를 때리는 건 안 돼. 다칠 수 있어. 시늉도 그래. 그 행동 자체가 이미 잘못된 거야. 가짜든 아니든 그건 중요하지 않아.' 결국 엄마에게 한소리 들은 뒤 윤은 어깨와 눈썹을 축 늘어뜨리고는 '죄송합니다. 잘못했습니다. 하지 않을게요.'하며 울먹거렸다. 


도대체 공손한 사과는 어디에서 배웠는지. 울고불고 사과하기를 버티던 시간은 이미 과거가 되었다는 것에, 아이의 말뿐만 아니라 태도도 훌쩍 컸다는 것에 내심 놀라고 말았다. '응. 윤이 하지 않는다고 했으니까 잘할 수 있어. 가서 언니한테 사과하고 같이 놀자고 할까?' 아이는 끄덕끄덕 등을 돌리고, 나는 점점 멀어지는 아이의 등을 보며 '가짜로'를 깊이 생각한다. 가짜로 만들어 내는 세계는 얼마나 화려한가. 


가짜는 꿈꾸거나 상상하는 것보다 불온한 일이다. 하여 한 세기 전 어느 나라에선 누구의 입 밖으로도 꺼낼 수 없는 금기어였다. 진짜보다 진짜 같은 가짜. 무엇이든 다 이루어질 수 있는 '가짜로'는 사실 마음의 너울이다. 어디 먼 곳이 아닌 가장 가까운 곳에서 파랑이 시작된다. 몸과 영혼을 초토화시킬 지도 모르는. 그래서 사람들은 창고에, 한없이 크고 넓은 바다에, 저 어두운 무의식 너머에 그 말을 숨겼다. 


나는 그 말을 몰래 꺼내어 본다. 


홀로 발리의 해변가를 거닌다. 암스테르담의 카페에 앉는다. 지구의 오류라는 오로라 앞에 선 채 한 새벽을 맞이하고, 버려진 유조선을 타고 가 이 세상의 마지막 빙하를 먹는다. 더 이상 누군가의 애정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남의 집 밥 짓는 냄새만 맡아도 외로웠던 20대가 눈물 없이 아물고, 실패는 더 이상 실패라고 여기지 않으며, 자연과 함께 혼자서도 완전하다. 자는 거. 먹는 거, 책 읽는 거, 글 쓰는 거, 떠나는 거, 이외에 등등 다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거. 그거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살 만한 삶. 그 삶에선 여전히 자유롭다. 결혼을 안 했으니 아이도 없고, 시간을 벌었으니 단 한 문장이라도 더 썼을 테다. 작가로서든 한 인간으로서든 분명 지금보다 더 인정받고 해내지 않았을까.


거기까지 간 생각을 깨우는 건 진짜로 아픈 무릎이다. 


수가 태어나고 일 년을 내리 아팠던 오른쪽 무릎이 여전히 시큰거린다. 살아있는 통증에 현실로 돌아온다. 출산 후 골다공증이 생겨 계단을 오르거나 내려가지를 못 했었는데. 돌이켜 보면 그런 시간이 있었다. 지금 무엇이 잘못된 건가 왜 아침마다 나가는 남편의 삶은 변한 것이 없지 나는 끝도 없는 회전문을 돌며 이전과는 다른 몸으로 전에 없던 세계를 살고 있는데? 확장된 세계가 아름답지만 못내 서러웠던 시간. 소파에 해가 뜰 때까지 멍하니 앉아있다가 잘못한 일 없이 부럽고도 미운 남편을 기어코 깨웠던 새벽. 눈물바람으로 얼룩진 날들을 지나갈 수 있었던 건 그 무릎으로 소파 대신 책상 앞에 다시 앉기 시작했을 때다. 


써보는 거야, 그게 무엇이든. 최선을 다하는 거야, 주어진 시간만큼은. 받아 들이자, 내가 선택한 모든 것들을. 충분해, 있는 그대로. 사랑해, 나도 너희들도. 그렇게 새로운 시간이 모이고 또 모여서 내 삶이 아닌 삶에 가짜로 기대는 대신 지금 이곳에서 진짜 소중한 것들을 알려주었다. 


윤을 통해 나의 '가짜로'는 화려한 것이 아님을 깨닫는다. 치사하면 치사했지. 더 멀리까지 가보고는 죄책감이 피어오른다. 이상하게도 어떤 죄책감은 아이를 더욱 더 사랑해주어야겠다는 다짐으로 변하기도 한다. 역시나 불온하다. 나는 몰래 꺼냈던 '가짜로'를 외딴 들판에 버려두고 돌아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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