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현수 Jan 28. 2024

1그렇게 나는 또 이별을 하고

결국에 마지막까지 나를 사랑할 사람은 나 자신

1년 간의 일본 어학연수를 끝내고 고향집에 도착했다.


셀 수 없이 많았던 'Hi', 그리고 셀 수 없이 많았던 'Goodbye'를 겪었던 1년이었다.


"1년 동안 어땠어?" 라는 너무나 단순한 질문 앞에서 난 복잡하고 씁쓸한 눈을 하고서 "너무 좋았지"라고 밖에 답할 수 없을 것이다. 단순하게 좋았다라는 얕은 답변밖에 할 수 없는 이유는, 그 밑에 깔려있는 해저와 같이 깊고도 깊었던 우울과 아쉬움을 견뎌내며 돌아온 내가 그나마 괜찮아보일려고 하는 노력이기 때문이다.


지난 1년 동안 내 삶을 구원하기도 했고, 무너뜨리기도 했던, 믿을 수 없을 만큼 사랑스럽지만 그만큼 철저히 나를 붕괴시킬 수 있었던 권력이 있었던 독재자, 그와 이별을 하고 돌아왔기 때문이다.




약 2년 전에도 내가 겪었던 이별에 대해서 블로그에 글을 쓴 적이 있다. 그 당시엔 너무 괴로워서, 너무 힘든데 내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도 없었으며 애초에 그 힘든 이야기를 타인에게 모두 설명한다는 것부터가 너무 고통스러워서 토해내듯이 쓴 글이었는데 그 글이 가진 치유의 힘은 정말 대단했다. 그 자리에 앉아 다시 일어날 때까지 그 글을 다 쓰지 않으면 난 결코 그 이별에게서 자유롭지 못할 것 같아 정말 치열하게 썼던 글이었다.. 정말 치유 받고 싶어서 쓴 글이었다.


이 방법은 사실 내가 개인적으로 정말 좋아하는 가수인 Jessi J가 'Who you are'이라는 노래를 부르기 전에 관객들에게 했던 말이 생각나 실행에 옮겼던 방법이었다.




https://youtu.be/3_D7nLeUphU?si=SIs9Sd-HMxlpPiMC



바로 위 영상인데, 혹시 본인이 많이 힘들거나 방황하고 있다면 영상을 보는 것을 강력추천한다. 힘들고 지칠 때마다 아무 생각 없이 찾게 되는, 나의 치유의 원동력 자체인 영상이다.


이 영상에서 Jessi J는 인생에서 가장 어두웠던 시기를 이야기하며, 그 당시 고통스럽게 써내려 갔던 가사가 그 후 17년 동안 본인을 구원해줬다고 말한다.


2년 전 이별에 대한 글을 썼을 때도 꽤 어두웠던 시기었던 것 같은데, 사람은 정말 감사하게도 망각의 동물이라 지금은 그 글을 읽고 미묘하게 미소를 짓게 된다. 20살이 고등학생들을 보는 느낌이랄까. 그 느낌은 마치 불행과 행복사이의 모자이크로 묘사되는 한 편의 그림을 보며 느끼게 되는 복잡한 감상이다.


어쨋튼 Jessi J가 그랬던 것처럼 나또한 그 글로 인해 진정으로 큰 힘을 얻었고 구원받았다고 느낀다. 그리고 2년이 지난 지금, 난 또 한 번 인생의 어두운 그늘안에서 조용히 나의 방식과 언어로 울고 있다. 하지만 나는 안다, 이 순간은 결코 영원하지 않을 것이며 살다보면 안 좋은 일이 어쩔 수 없이 일어나기도 하지만 살다보면 좋은 일도 반드시 생긴다는 것을. 그 믿음을 믿으며, 내가 느끼는 감정을 부정하거나 비난하지 않고 그 슬픔과 우울 그대로 듬뿍 느끼며 이 시간을 보내려 한다.


이 폭풍의 감정을 잠재우기 위해 차라리 그애에 대한 이야기를 마음껏 해버려서 이 관계의 맞침표를 찍으려 한다. 더 이상 나에게 다가오는 감정과 생각을 무시하며 더 괴로워지는 과거로 돌아가지 않으리라. 옛날 지겹도록 유행했던 말처럼,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겠노라'


- 국제연애는 국내연애보다 확실히 힘들 요소가 많다.



그 애는 외국인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유러피안이었다. 그리고 그 때 나는 몰랐다. 같은 국제연애라도 아시안이 아시안끼리 사귀는 것과 아시안이 유러피안을 사귀는 것은 그 난이도 차이가 정말 크다는 것을. 서로의 문화차이, 생각차이로 생각보다 많이 힘들 수도 있음을 몰랐다.


하지만 그 때 난 햇빛을 받으면 더 반짝거리던 그 애의 신비로운 금색 머리, 웃으면 사랑스럽게 드러나는 양쪽 볼에 있는 보조개 그리고 자세히 바라보면 중앙에 올리브색으로 물들여 있는 갈색 눈동자.. 그 어떤 점 하나도 나의 흥미와 관심을 끌지 않는 점이 없었던 그 애를, 난 처음 봤을 때부터 좋아했던 것 같다. 나와 정말 크게 '다르다'는 점이 이렇게 유혹적이고 매력적일 수 있다는 것을 그 애를 통해 깨달았다. 주변에 외국인 밖에 없는 어학교라는 환경에서도 그 애만큼 날 유혹하는 매력적인 '외국인'은 없었다.


그러나 난 그 애를 결코 외국인이었기에 처음부터 빠지진 않았다. 유명한 은구를 인용하자면 그 애를 보자마자 깨달았던 것이다. '아, 난 이 애로 인해 울게 되겠구나..'라고 말이다. 큰 이유 없이, 너무나 쉽게 난 그 애를 사랑하게 됐다.


처음은 친구였기에 자연스럽게 같이 많은 것들을 했다. 사실 1년 동안 일본에서 다닌 모든 종류의 여행(당일치기던 2박 3일이던)은 거의 대부분 그 애와 다녔다. 같이 시간을 많이 보내다보니 마음은 더욱더 깊어졌고 넘칠락 말락 하는 마음을 출렁이게 넘쳐버리도록 냅두고 싶을 때 쯤, 우린 연애를 시작했다.




(※주의: 뒤에서부터는 국제연애에 대한 철저한 내 의견을 서술하고 있다. 인생에 딱 한 번 뿐인 국제연애의 경험을 토대로 쓴 글이니 반대의견이 만연할 수도 있다. 그러니 100% 개인적인 생각에 지나치지 않음을 미리 말해둔다.)




앞에서 아시안이 유러피안을 사귀는 게 꽤 어렵다는 말을 했는데, 제일 먼저 이 사랑에 빠진 커플들을 힘들게 하는 점은 결국 '언어장벽'이다. 둘 다 아무리 영어를 잘 한다 한들, 결코 서로의 모국어만큼은 영어를 할 수 없다는 점은 괴롭지만 사실이다. 다행히 웬만한 유럽 언어들은 라틴어라는 공유 뿌리가 있기에 유러피안인 그 애에게는 영어가 큰 문제가 되진 않았고 나 또한 영어 회화를 워낙 좋아해서 꾸준히 연습하고 실습했던 경험이 있기에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으나, 이 또한 일상영어에서 제한되는 이야기이고 정말 치열한 대화, 불가피한 말싸움이 개입되는 '연애'에 있어서는 이게 생각보다 꽤 큰 장벽이었다. 한국인과 연애한다면 더 자세히, 더 공격적으로 할 대화도 외국어로 소통해야한다는 점부터 너무 힘이 빠져 소통을 포기했던 순간이, 부끄럽지만 꽤 있었다. 사실 이 점이 이번 연애에 대해 가장 후회하는 점인데, 아무리 힘빠지고 힘들더라도 소통의 중요성을 잊지 말고 최선을 다해 대화하고 싸우고 내 의견을 많이, 그리고 확실히 말했어야 했다.


미래에 국제연애를 하게 된다면 이 실패(?)사례를 통해 배워 어떻게든 소통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될 것이다. 만약 내 글을 읽는 사람 중에 국제연애를 할 것 같거나, 하는 중인 사람이 있다면 이 점을 꼭 유의하길 바란다. 부실한 소통은 반드시, 언젠가 관계의 부작용을 일으킨다. 외국어로 표현하는 게 부담스럽고 힘들더라도, 그 사람을 사랑하고 그 사람과의 미래를 사랑한다면 놀림거리가 될 정도의 부끄러운 문법 실수, 어휘 실수를 하더라도 소통의 끈을 절대로 놓지지 말고 열정적으로 '대화'해야한다.




다음 아시안이 유러피안과 연애하는 데 어려운 점 중 하나는(사실 국제연애를 하는 모든 커플에게 적용되는 점이지만) 상대의 나라의 연애관/결혼관과 내 나라의 연애관/결혼관이 매우 다를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미 알고 있듯이 유럽은 동거, 미혼 출산 육아가 굉장히 흔한 곳이다. 그리고 내가 느끼기에 이렇게 결혼을 기피하고 동거, 미혼 출산과 육아가 많은 이유는 유럽에서는 '결혼'이라는 개념이 아시아보다 훨씬 무거워서 그런 거라고 생각한다.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다. 왜냐면 아시안인 우리의 눈에는 서양 사람들은 아주 쉽게 이혼하고 다시 결혼하는, 비교적 아시아보단 가볍게 결혼하고 이혼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히려 내가 느꼈을 때는 그들에게(유러피안) 결혼은, 이 사람과 평생을 함께하겠다고 신과 영원한 서약을 하는 '종교적인 행위' 그리고 '진실된 서약'에 가까운 것 같다.


그리고 한국인들의 눈엔 미책임해 보이는 태도로 보이지만, 유러피안들은 사랑은 철저히 감성적이고 불안전한 것이라는 생각을 더 강하게 갖고 있는 것 같았다. 연애를 하고 있다 하더라도, 결혼을 했음에도 사랑하는 사람이 생길 수도 있다는 것을 사람이니까, 당연하며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을 경우에는 그 연애/결혼은 유지할 이유가 없다고 느끼는 것 같았다.


그리고 유러피안인 내 전 연인은 당연히 위 의견에 동의하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결혼에 회의적인 태도는 그 애의 이야기를 들으면 이해가 되기도 했다. 그 애에 말을 따르면, 주변 가족과 친구의 부부들을 보면 반 정도가 이혼했다고 한다. 그렇다고 한다면, 나라도 그런 환경에서 2n년 동안 살아왔다면 당연히 결혼에 대해 회의적일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잉꼬부부는 아니더라도 일반적인 부부관계를 이어가고 있는 부부가 주변에 흔하지 않다면 말이다.


하지만, 이런 상대의 나라사람들이 만연하게 갖고 있는 연애관/결혼관이 내가 허용할 수 있는 범위에 있는지, 그리고 약간 벗어난다면 그 '벗어남'을 이해하고 받아드리고 그걸 넘어서 반대로 상대가 그렇게 될 수도 있음을(예를 든다면 상대랑 만약 결혼했을 때 언젠가 갑자기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다고 떠나가는 경우) 인지할 수 있느냐? 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나 같은 경우에는 상대적으로 '쿨 해보이는' 상대방의 나라의 연애관에 맞춰 '쿨 해보일려고'노력하다가 끝에가서는 무너져 내린 케이스이다. 쿨 해보이고, 상대방을 불편하게 만들지 않기 위해, 그 상대방이 좋아할 만한 마인드를 가진 사람이 되기 위해 연기를 해왔던 나는 그 대가를 철저히 치뤘다. 살면서 특히 친구나 연애같은 인간관계에 있어서는 세상 그 누구도 아닌 내가 되는 것만큼 중요한 게 없다고 생각한다. 내가 아닌 나로 살려하니 아프고 괴로운 것이다. 내가 아닌 나로 상대와 관계를 이어가려한 것이니 그 관계가 행복할 수가 없는 것이다. 나는 사람은 세상의 윤리와 도덕의 범위 내에서는 철저히 '나'로서 살아야 한다고 믿는 사람이다. 내가 나로 살지 않는다면 언젠가는 아프게 된다. 그게 관계의 아픔이든, 내 삶 자체에서 드러나는 아픔이든, 필수적으로 그 아픔은 널 무너뜨릴 것이다.






Red Flag 무시하지 않기



언젠가 연애를 시작할 미래의 나에게 말해두고 싶은 말이다.

사실 그 애와 연애를 하면서 많이 힘들었다. 첫 국제연애라는 점부터 큰 장애물이었는데, 그 애는 내가 그 애를 사랑하고 있을 느끼게 하고 나를 황홀하게 하는 사람이었음은 틀림없었지만 나를 행복하게 만들었던 순간보다 나를 불행하게 만들었던 순간이 많았다.


https://www.youtube.com/watch?v=Uf3pmspu7CM

위 영상에서 말하는 '당신이 좋은 사람과 연애를 하고 있지 않다는 근거' 중 한 두 개를 빼고 모두 충족하는 사람이었다.


            그 사람을 믿기가 힘들다 You can’t count on them.          


            삶에 대한 가치관이 다르다 You have different values.          


            듣고는 있으나, 경청하지 않는다 They can hear, but not listen          


            당신의 직감이 말한다 Your Intution          


            주변 사람들은 알고 있다 Your close ones can tell          


이별을 하고 나서 이 영상을 다시보니 나 정말 모든 Red Flag를 무시하며 여태 여기까지 버텨왔구나 싶다. 하지만 그 모든 Red Flag를 알면서도, 너무나 사랑했기에, 그 사람과 영원히 있고 싶다는 철부지 같은 생각으로 인해 무시하면서 고통스러워하다가 결국엔 롱디를 원하지 않는다는 이유로(사실 롱디까지 시도할 정도로 사랑하지 않는다는 이야기이지만) 차일 때까지 버텼던 것이다.




"Love is the half battle"




사랑에 빠지는 것은 쉽다. 하지만 나에게 맞는 사람, 나에게 좋은 사람에게 사랑에 빠져야 행복한 '연애'로 이어진다. 깊게 사랑한다는 점만이 연애의 존속 요인이라 생각했던 나는, 이번 연애를 통해 사랑한다는 이유만으로 나에게 맞지 않는 사람, 나에게 Toxic한 사람을 빨리 떨쳐내지 못하고 고생했던 시간을 연장하는 점은 사랑하는 나 자신에게 결코 할 짓이 못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나 결국은 <끼리끼리>




배우자 흉보지 말라, 결국 너 자신을 흉보는 일이다. 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사람은 끼리끼리라는 말이 과학이라는 말이 있듯이, 사람들은 자신과 닮은 사람에게 끌리고 어울리게 된다. 그리고 나 또한 인정하기 힘들지만 이제는 안다, 나는 그애와 닮았던 점이 있었기에 매력을 느꼈고 어울려 다녔다는 것을.


또 지금 생각해보면 그 애는 내가 가지고 있는 단점과 약점 거의 모두를 가지고 있던 사람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 단점과 약점에 익숙했던 나는(내가 평생 가지고 있던 단점과 약점이었기에) 자연스럽게 그 애와 심리적으로 가깝게 느꼈고 궁극적으로 사랑하게 됐다. 내가 아무리 그 애를 욕하고 비난해도, 결국엔 그 애를 선택하고 사랑하고 시간을 보내려고 선택한 사람은 '나'이다.










-- 2부에 이어서




작가의 이전글 사랑하는 친구에게 쓴 편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