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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간인 박씨 Dec 07. 2019

시골살이가 꿈입니다.


시골로 간다는 철없는 딸의 말에 엄마는 "왜?"라고 물었다.

"도시가 답답해."

"그래, 30년 가까이 도시에 살았으면 네가 좋은 곳에서도 살아봐야지"



의원면직 우선이었을까, 시골에 대한 열망이 우선이었을까?

나에게는 알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와 맥락이 같다.


그나마 근소하게 먼저 꿈꾸고 있던 것은 시골살이랄까. 학부시절 발리고 토한다는 '발'표와 '토'론 수업에서 "꿈"을 주제로 이야기 나눠본 적이 있다. 나는 마당에는 닭장을 세우고 큰 개를 한 마리 뛰어놀게 하는 시골살이가 꿈이라고 발표했고, 옆 자리에 앉았던 후배는 진심이냐고 의아해했다.


도시에서만 나고 자랐고, 또 시골에 연고도 없기 때문에 일종의 오리엔탈리즘처럼 무지한 로망일지도 모른다.
느림의 미학과 인간에 대한 정이 농촌에는 남아있으리라는 순진한 기대. 유럽 배낭여행은 다녀왔어도 정작 제대로 된 시골엔 가본 적도 없이 이 순진한 기대에서 시작된 꿈을 오랫동안 간직하고 있었다.


'귀촌귀농'이라는 말을 많이 쓰지만 여기서 '귀'(歸)는 돌아갈 귀인데, 시골로 돌아가는 게 아니라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찾아 이도향촌 하는 사람들은 뭐라고 불러야 할까? 꽤 진지하게 고민했는데, 시골살이 외에 나의 꿈을 정확하게 명명할 단어를 찾지 못했다.


시골살이를 꿈꾸게 된 이유는 간단했다.

나에게는 도시가 줄곧 버거웠기 때문이다. 버스를 타고 각진 회색 건물들 사이 대로로 출퇴근을 하거나 초록빛이 하나 없이 고층 아파트들도 꽉 막힌 시야를 문득 의식하게 될 때, 온 식구가 퇴근하고 지쳐 제대로 된 식사를 챙기지 못할 때

도시가 주는 빡빡함에 진저리 쳐진다.


도시에서 도시로 이동을 위해 광역버스들은 쉴세 없이 버스정류장에서 사람을 실어 나르고, 200m가 넘는 여러 갈래 줄에 피로에 쩌든 회사원들이 퀭한 눈으로 지나가는 이들을 경계하며 쳐다본다. 아침 7시에 버스를 오르면, 9시에 회사 도착하는 이 기이한 생활. 그런데 또 다들 그렇게 살고 있으니 이 생활이 이상할 것 없다는 안도감 한 스푼. 내가 느낀 도시는 사람을 쉬게 해주지 않는다. 부지런한 사람들이 도시를 일군 탓인지, 혹은 도시가 사람들을 그렇게 만든는지는 모르겠지만 잠시라도 스스로를 쉬게 하는 순간 이 곳에서 점점 도태되고 있다는 생각에 사로잡히게 된다. 직장, 이직을 위한 공부, 자기 관리라는 미명 아래 혹사되는 몸, 인간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수많은 모임과  사람 대 사람으로서의 진지한 고민이나 사색 없이 계속되는 가벼운 대화들.



공직에서 의원면직을 한 뒤 공백기는 이런 식을 더 선명하게 재건할 수 있었던 기회였던 것 같다. 순진한 기대감 하나만으로 무턱대고 시골로 갈 수도 없는 노릇인데 공무원 생활을 하며 준비하기는 다소 버거웠던 상황이었고, 또 될 수 있으면 도시에서의 생활에 후회를 남기지 않기 위해 다른 일도 해보고 싶었었고 말이다.


그렇지만 면직 후 최소한 2년을 더 준비하고 내려가려던 계획은, 새로운 직장으로 이직을 한 지 6개월 만에 불현시골살이 준비가 완료되며 크게 변경되어 버렸다.


그러니까 당장 29살을 목전에 두고 간다. 시골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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