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만 무료

좋은 글을 쓴다는 것

― 좋은 글은 기술이 아니라 시간이다

by 마테호른


브런치와 블로그에 글을 쓰면서 자주 이런 생각을 한다.
나는 지금 잘 쓰려고 하는 걸까, 아니면 좋은 글을 쓰려고 하는 걸까.


잘 그린 그림과 좋은 그림이 다르듯, 잘 쓴 글과 좋은 글도 다르다는 걸 요즘 들어 조금씩 깨닫는다.

아이들이 그리는 노랗고 연두빛 나는 원색 그림은 보기에는 예쁘다.

맑고 선명하고, 꾸밈이 없다. 하지만 그 안에는 아직 시간이 쌓여 있지 않다.

깊은 밤의 색도, 지나온 계절의 흔적도, 오래된 그리움도 없다.


좋은 그림은 한 번에 완성되지 않는다.

한 가지 색 위에 또 다른 색이 덧입혀지고, 덧칠되고, 지워졌다가 다시 그려진다.

그렇게 여러 번의 흔적이 겹쳐지면서 비로소 하나의 그림이 완성된다.

가까이에서 보면 선은 완벽하지 않고, 색은 균일하지 않다.

그러나 멀리서 바라보면 그 불완전함이 오히려 살아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좋은 글도 그렇지 않을까.


잘 쓴 글은 문장과 구조가 매끄럽고 자연스럽다. 읽는 데 불편함이 없고, 논리도 또렷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좋은 글은 아니다.


좋은 글에는 시간이 들어 있다. 첫사랑과의 만남에 들뜬 날, 이유 없이 무너졌던 밤,

말하지 못하고 삼켰던 문장도 함께 스며 있다.

그래서 좋은 글은 때로는 매끄럽지 않고, 조금은 느리고, 어딘가 모르게 텅 빈 것처럼(허전해) 보인다.


글을 쓰다 보면 자꾸 기술을 배우고 싶어진다.

더 설득력 있게 쓰는 법, 더 많은 사람이 공감하는 제목을 붙이는 법 등....

물론 그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는 이런 질문이 더 크게 다가온다.


“이 글에 내 시간이 담겨 있는가?”
“이 문장에 내 삶이 묻어 있는가?”


좋은 글은 결국, 쓴 사람이 드러나는 글이라고 생각한다.

감추려고 해도, 꾸미려고 해도, 그 사람의 온도와 삶의 흔적이 자연스럽게 배어 나온다.

그래서 어떤 글은 완벽하지 않아도 오래 남고, 어떤 글은 잘 정리되어 있어도 금세 잊힌다.


아이의 그림이 예쁘듯, 처음 쓰는 글은 맑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경험이 쌓이고, 여러 번의 기쁨과 상실을 지나고 나서야 색이 깊어진다.

한 문장 안에 여러 계절이 들어가고, 한 단락 속에 여러 번의 숨 고르기가 들어간다.

그때 비로소 글은 설명을 넘어, 마음을 건드리기 시작한다.


그래서 나는 요즘 글을 쓴다는 것이 단순히 생각을 정리하는 일이 아니라는 걸 배운다.

글을 쓴다는 것은 나를 덧칠하는 일이고, 지웠던 감정을 다시 꺼내는 일이며,

지나온 시간을 조용히 인정하는 일이다.

때로는 상처 위에 붓을 올리는 일이고, 때로는 오래 묵은 기쁨을 다시 꺼내어 빛에 비춰보는 일이다.


생각건대 좋은 글이란, 많이 읽힌 글이 아니라 오래 남는 글일 것이다.

누군가의 하루에 잠시 머물다 사라지지 않고, 그 사람 마음속 어딘가에 작은 색 하나를 남기는 글.

화려하지 않아도, 선명하지 않아도, 여러 겹의 시간이 스며 있는 글.


좋은 글을 쓰고 한다.

잘 쓴 글은 기술로 가까워질 수 있다.

하지만 좋은 글은 결국 내가 살아낸 시간만큼만 담을 수 있을 것이다.


글을 쓴다는 것은 어쩌면,
지금 이 순간도 나중에는 한 겹의 색이 될 것임을 믿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이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 전용 콘텐츠입니다.
작가의 명시적 동의 없이 저작물을 공유, 게재 시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brunch membership
마테호른작가님의 멤버십을 시작해 보세요!

작가 지망생들이 자신의 꿈을 실현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출간의 설렘과 가능성을 믿는 이들에게 든든한 동반자가 되고 싶어 하며, 언젠가는 '마테호른'에 오르는 것이 꿈이다.

796 구독자

오직 멤버십 구독자만 볼 수 있는,
이 작가의 특별 연재 콘텐츠

  • 최근 30일간 15개의 멤버십 콘텐츠 발행
  • 총 216개의 혜택 콘텐츠
최신 발행글 더보기
작가의 이전글단단하다고 믿었던 것들이 흔들릴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