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리아 심리학자 빅터 프랭클은
악명 높은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생존자 중 한 사람이다.
최악의 환경과 음식, 제대로 된 의료시설조차 없는 곳에서
수많은 사람이 죽어 나갔지만,
그는 끝까지 살아남았다.
전쟁이 끝난 후 누군가 물었다.
“어떻게 해서 그 지옥 같은 곳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습니까?”
그 말에 빅터 프랭클은 이렇게 답했다.
“왜 살아야 하는지 아는 사람은 어떤 상황도 견딜 수 있습니다.”
그가 3년 동안 머문 아우슈비츠 수용소에는 오로지 죽음과 절망만이 가득했다.
어디에도 희망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끔찍한 환경에서도 그는 살아야 하겠다는 희망을 잃지 않았다.
“한 개인이 어떤 마음 자세를 갖느냐는 오로지 그의 선택에 달려 있다.
나는 절망을 선택할 수도 있었고, 희망을 선택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희망을 선택하기로 했고,
그러기 위해서는 내가 간절히 원하는 어떤 것을 정해 정신을 집중할 필요가 있었다.
나는 내 아내에 관해 생각을 집중하기로 했다.
그녀의 손을 한 번만 더 잡아보고 싶었다.
한 번만 더 아내의 눈을 바라보고 싶었다.
한 번만 더 그녀를 만나고 싶었다.
그것이 내 생명을 연장해주었다.”
ㅡ빅터 프랭클, 《죽음의 수용소에서》중에서
그와 함께 아우슈비츠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은
날마다 면도를 거르지 않은 사람들이었다.
그들에게 배급되는 음식이라고는
하루에 수프 한 그릇과 완두콩 한 알이 전부였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의 불행에 절망하기보다는
하나의 목표를 정해서 거기에 온 힘을 쏟았다.
그것이 최악의 환경에서 그들을 살아남게 한 힘이었다.
오체투지.
바닥에 엎드려 절할 때, 양 무릎과 팔꿈치, 이마 등
신체의 다섯 부분이 땅에 닿는 데서 이름 붙여진 티베트인들의 수행법이다.
그만큼 고통스럽다.
티베트인들은 누구나 평생 한 번은 오체투지 고행을 떠난다.
자만과 오만을 떨치고, 자신의 어리석음을 참회하며, 참된 자신을 찾기 위해서다.
한쪽 다리를 잃고도 그런 고행을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사람으로 태어난 것이 감사하다는 이유만으로 순례를 떠나는 사람도 있다.
우리의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쉽지 않다.
다만, 겹겹이 꿰맨 다 떨어진 누더기를 바닥에 깔고, 땀과 때에 절어 새까매진 얼굴로
오체투지하는 그들을 보면, 존경심이 드는 것만은 사실이다.
한없이 자신을 낮추면서 삶의 진실에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가는 것에 대한 부러움이자,
자만과 오만에 빠져 삶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나 자신에 관한 부끄러움이기도 하다.
높은 곳에 서야만 내가 보이는 게 아니다.
가장 절박하고 힘들 때, 즉 가장 낮은 곳에 있을 때 비로소 나와 마주할 수 있다.
높은 곳에서 보는 나는 오만하고 자만할 수 있지만,
가장 낮은 곳에 있는 나는 더는 잃을 것이 없기에 더없이 겸손하고 진실하기 때문이다.
이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 전용 콘텐츠입니다.
작가의 명시적 동의 없이 저작물을 공유, 게재 시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오직 멤버십 구독자만 볼 수 있는,
이 작가의 특별 연재 콘텐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