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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수빈 Mar 21. 2023

가장 나다운 모습


팔땡을 처음 어린이집에 보내고

이후 유치원을 거쳐

초등학교에 보내기까지

아이가 성장하며

나 역시 성장함을 느끼는 부분이 하나 있다.


바로 엄마로서 아이의 선생님에게 잘 보여야 겠다,

선생님이 아이를 잘 봐주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부터 자유로워진것.


처음 어린이집에 보냈을 때엔

선생님을 믿지 못해 학대라도 할까 전전긍긍 이었고

학대가 아니더라도 아이에게 작은 마음의 상처라도 낼까 맘이 조마조마했더랬다.


그래서인지 선생님께 편지도 쓰고, 먹거리도 자주 사드리고, 선물을 드리기도 했는데

솔직한 마음으로는 진심으로 감사가 우러나와 드리는 선물이 아닌,

내 새끼 잘 봐주십사 하는 뇌물이었던것 같다.


그리고 현재 초등학교에 올라간 아이.


요며칠 아이는 아파서 학교에 결석을 했고

본의 아니게 선생님께 연락을 여러번 취할 수 밖에 없었다.


이전엔 내가 학부모로서 선생님과의 관계에서 을의 입장인 것처럼 느끼고 잘보이길 바랐었는데

연락을 주고 받으며 그런 느낌이 사라졌음을 느꼈다.


누가 누구보다 우위에 있는 관계가 아니라

선생님은 그 위치에서,

나는 아이의 엄마라는 위치에서

우린 동등한 위치라는 느낌이 들었고

선생님 또한 누군가의 학부모일 것이고

자신의 아이의 선생님과 학부모의 입장에서 관계를 맺는 나와 같은 입장이기도 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학부모들이 선생님께 엄두가 안나 연락도 못하겠다, 뭐라 해얄지 망설여진다, 거리감 느껴진다 는 얘기들을 자주 했었는데

'선생님도 인간인데 뭘~ '

하는 여유도 생겨버렸다.


선생님과 연락을 주고받으며 구태여 잘 보이려고 어떤 모션을 취한다거나 과장된 예의를 갖추지 않았고, 적당한 예의는 갖추지만 공적인 것 그 이상도 이하도 하지 않는 나만의 경계를 뚜렷이 지켰던것 같다.

그리고 선생님 역시 나의 언행에 맞추어 비슷한 수준의 반응을 주셨다.


선생님과 이야기하며 내가 을의 위치라거나, 선생님이라는 직업군에 대한 무비판적, 맹목적인 선망, 일종의 사대주의를 가지지 않고 정말 인간 대 인간으로서 선생님을 바라볼 수 있었던 것 같다.

그저 아이를 가르치는 직업을 가진 한명의 사람.


선생님과 나는 아주 공적이고 딱딱한 대화 몇마디를 주고 받았고, 그렇게 첫인사를 마쳤다.


그리고 오늘 학부모 총회에 갈 때에도 상대에 대한 예의를 적당히 갖춰 너무 후줄근하고 형식에 맞지 않는 옷을 입지 않고, 또 그렇다고 잔뜩 긴장하거나 힘주어 입지 않고 티에 청바지 그리고 적당한 코트 하나에 운동화를 신고 화장기 없는 얼굴로 단정히 다녀왔다.


다른 엄마들에 비해 다소 꾸밈없이 왔다지만 나는 그런 내 모습이 편안했고, 선생님이라는 존재를 이상화하거나 사회적으로 조금은 높은 지위의 사람을 대한다는 생각을 하지 않고 만나러 다녀왔기에 오히려 마음이 아주 편해 부담감, 긴장감이 없었다.


그리고 스스로 느꼈다.

어린이집에 보낼 당시와 현재의 내가 정말 많이 달라졌구나.

사람들의 부와 명예, 직업과 같은 외적 기준으로 그 사람들을 판단하지 않게 되었구나를 느꼈고, 그들도 나와 별반 다르지 않구나를 알게 되며 인간 대 인간으로 매우 편하게 선생님을 만나고 온것 같다.


그렇게 선생님이 날 어떻게 판단할지도 크게 개의치 않았다.

이런 학부모도, 저런 학부모도 있고 그 중에 나는 이러한 학부모에요. 제 모습은 이러한데 혹여나 제가 마음에 들지 않으신다면 아쉽지만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죠..ㅎ

라는 생각으로 타인이 날 어찌 판단하든 개의치 않고 나는 가장 나다운 모습으로 편안히 학부모 총회에 참석했다.


내가 크게 예의를 갖추지 않거나 어떤 큰 사건을 일으키지 않는 이상 나의 이미지가 아이의 1년을 크게 좌우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

그리고 그 이면에는 타인이 그렇게 쪼잔하게 굴지 않는 상식적인 사람일 것이라는 믿음이 깔려 있었던것 같다.



나는 요즘 본연의 나를

가장 편안한 나를

찾아 나가고 있는 것 같다.


누군가에게 맞추지 않고

그렇다고 예의없이,

혹은 형식에 크게 어긋나게

타인들에게 행동하진 않으면서

상식 안에서 가장 나다운 모습을 보일 수 있는

편안함을 되찾게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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