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점짜리 시험지

50점이라고 적힌 시험지 부분만을 깔끔하게 찢어 쓰레기통에 버렸다.

by 김병섭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에서는 1학년부터 3학년 때까지 매주 월요일과 금요일 날에 받아쓰기 시험을 봤었다. 선생님께서는 매주 새로운 40문장이 빼곡하게 적힌 받아쓰기 지문 종이를 월요일마다 들고 오셨고 나는 그 종이를 받는 월요일이 정말 싫었다. 월요일에는 시험도 봐야 하고 그 종이를 받고 다시 또 받아쓰기 시험 준비를 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가끔은 교무실에 몰래 들어가 받아쓰기 지문종이를 다 갈기갈기 찢어버릴까 생각했다. 그만큼 나는 받아쓰기 시험, 그 시험이라는 존재가 참 싫었다.

아직도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이 받아쓰기를 봤으면 그걸로 끝이면 되는 거지 시험 점수를 항상 칠판에 선생님이 손수 엑셀로 반 아이들의 받아쓰기 점수를 작성해서 붙여 놓았다. 마침 우리반은 칭찬 사다리 제도가 있었는데 칭찬 사다리 제도는 반 아이들마다 각자 원숭이 스티커가 있고 좋은 일을 하면 원숭이 스티커가 게시판 위쪽으로 올라가고 나쁜 짓을 하면 게시판 아래쪽으로 내려가는 제도였는데 사다리 꼭대기 위로 올라간다고 해도 언제든지 내려갈 수 있었고 자리에 앉아있으면 한눈에 누구 원숭이가 제일 위에 있는지 제일 아래 있는지 알 수 있어서 나를 포함한 우리반 아이들은 그 원숭이가 사다리 꼭대기까지 올라가고 싶어서 오만가지 착한 짓이란 착한 짓은 다했다. 근데 그 중에서 비교적 간단하게 사다리에 올라갈 수 있는 게 받아쓰기 시험 1등 하기였다.


나는 원숭이가 사다리 꼭대기까지 올라가기를 바라면서 이 일이 있기 전까진 모든 받아쓰기 시험에서 100점을 받고 항상 1등이었다. 이 모든 건 굳이 원숭이 때문이 아니었다. 초등학생이었던 어린 나의 경쟁심리와 자존심을 지키고 싶은 마음이 사다리 원숭이와 함께 시너지 효과를 일으켰었다. 나는 항상 주말을 이용해서 받아쓰기 시험을 준비했었는데 그날따라 엄마가 깎아준 사과가 맛있었고, 그날따라 사과로 토끼를 만들고 싶어서, 작은 과도로 사과 토끼를 깎아보겠다고 조물딱거렸다. 사과를 아작아작 먹으면서 예능프로를 보느라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도 몰랐다. 그러다가 항상 자던 시간인 10시를 훌쩍 넘기고 12시로 달려가는 시곗바늘을 보면서 무언가 까먹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제서야 부랴부랴 시험 공부를 해야 한다며 받아쓰기 지문 종이를 책가방에서 꺼냈다. 그런데 그 당시에 우리 엄마는 무엇보다 잠을 중요시했었다. 어린 아이들은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야 한다는 신념이 있었다. 그래서 엄마에게 아침나절 동안에는 뭐 하다가 이제야 공부를 하냐고 꾸중을 듣고 찜찜한 상태로 잠에 들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서 공부를 할 거라고 엄마에게 신신당부를 하고 원래 일어나던 시간보다 30분 일찍 깨워달라고 했다. 그런데 엄마는 그걸 새카맣게 잊은 건지 평소보다 더 늦게 나를 깨워줬고 나는 학교에 지각할까 봐 서둘러 학교로 뛰어갔다.


반에 들어가니 아이들은 한창 시험 준비에 열중이었다. 지각한 나는 조용히 자리로 가서 가방을 열었다. 그리고 그제야 아침에 받아쓰기 종이를 집에 두고 온 것이 생각이 났다. 곧 선생님은 들어오셨고 시험은 시작되었다. 그렇게 공부 한번 해 보지도 못한 채 본 시험은 당연히 못 봤다. 내 생애 최초로 50점 짜리 받아쓰기 시험지를 내 손에 받아들었다.


채점을 해준 내 짝꿍이 내 시험지에 50점을 일부러 크게 적은 것 같았다. 빨간 색연필로 써진 50이라는 숫자를 보고 비웃는 것만 같았다. 얼굴이 뜨거워지고 심장이 엄청나게 뛰었다. 하지만 애써 태연한 척 했다. 그날 하루는 시험을 못 봐서 기분이 너무 안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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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부모님들은 내가 못해도 그냥 아무 말씀을 하지 않으신다. 그저 바르게 커 주기만을 바라시는 부모님이다. 그런데 어릴 때의 나는 매번 100점만 받아오는 똑똑한 딸래미 타이틀을 가지고 싶었는지 나는 내 받아쓰기 노트에서 50점이라고 적힌 시험지 부분만을 깔끔하게 찢어 쓰레기통에 버렸다. 왜 그랬는지 지금도 모르겠다. 바보 같았다. 엄마는 쓰레기통을 비울 때 분리수거를 한다. 시험을 보고서 이제 50점짜리 시험에 대한 생각이 점차 잊혀져 갈 때 쯤이었다. 엄마는 쓰레기통을 정리했고, 나도 내 기억 속에서 50점 시험지를 정리했었다. 나는 학교에 다녀온 뒤 한츰 깔끔해진 집을 보고 신나 하던 중이었다. 그 때 엄마가 나를 불렀다.

깔끔하게 잘려진 종이 한 장을 내밀면서 말이다. 그렇다. 그 종이다. 50점짜리 시험지. 엄마는 50점짜리 시험지를 나에게 내밀면서 물었다. 왜 이것을 버렸느냐, 한 번이라도 너의 시험성적에 대해서 뭐라 한 적이 있느냐, 등의 말들이었다. 나는 엄마에게 내 50점짜리 시험지를 들켰다는 사실이 부끄러웠고 바보같이 쓰레기통에 버린 나에게도 화가 났다. 엄마는 시험성적이 문제가 아니라 내가 거짓말로 숨기려고 했다는 사실이 문제라고 집어주었다. 그렇게 2시간 넘도록 설교를 들었다. 설교를 듣는 내내 오만가지 생각들이 스쳐 지나갔다. 학교 다녀 오는 길에 버려버릴 걸 하고 후회를 하며, 울면서 잠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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