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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병섭 Nov 09. 2019

친구 사귀는 것은 참 어려워. 노키즈존

김은희-빛가람중-blog.naver.com/fordream1985

1.

열 일곱 살 나는 호감 가는 학생이 아니었다. 그 나이대 여자아이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많은 것들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이를 테면, 여자다운 외모나 겸손한 성향, 애교, 유머 이런 것들 말이다. 

일단 나는 키가 작고 통통했다. 유행이 지난 커다란 안경을 쓰고 있었다. 머리는 머리띠를 해서 올백으로 넘겼는데 그것 내가 심한 곱슬머리였기 때문이다. 교복은 어딘가 핏이 어중간한 모습이었다. 

성격면에서 나는 눈치가 없고 겸손하지 않았다. 반에서 공부를 잘하는 축이었던 나는 수업 시간에 모든 선생님들의 질문에 답을 하려고 애썼다. 반 친구가 전부 16명 뿐인 시골에서 자란 나에게는 당연한 일이었다. 어른이 된 지금 생각하면 얼마나 그것은 어리석은 행동이었는지. 여자아이들 사이에서 재수없다고 소문나는 건 쉬운 일이었다.

그래서 입학한 지 한 달 만에 반에서 왕따를 당하였다. 우스운 것은 1달동안 나는 내가 왕따라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우리 고등학교는 기숙사가 있었다. 점심 시간에 밥을 먹을 때는 기숙사 방 친구들과 모여 먹었다. 그리고 기숙사 방 친구들도 그다지 요령 좋은 친구들은 아니었다. 다들 나처럼 시골에서 올라온-그래봤자 중소도시로 왔을 뿐이지만- 착하고 눈치없고 공부만 하는 아이들이었다.

4월 말이었나. 반에서 한 친구가 나에게 청소시간에 망설이는 표정으로

“00야, 너 반 카페 들어가봤어? 너에 대한 글이 있던데?”

라고 말했다. 나는 화들짝 놀라 그런 게 있었냐고, 들어가보겠다고 했다. 

그리고 카페에서 “00는 잘난 척 한다.”는 글을 알게 되었다.

나는 미안하다는 글을 게시판에 올렸다. 행동거지를 조금 조심하려고 했다.

정확히는 반에서 세력의 중심이었던 반장과 그 친구들에게 잘 보이려고 노력했다. 외모를 칭찬하면서 아부를 했었다. 

1년 지나고 나서 기숙사 방 친구들 중 1명으로부터 이런 소리를 들었다. 같은 반 친구가 기숙사 방 친구에게 1*호실 아이들은 다 좀 이상하다고, 너도 기숙사 애들이랑 같이 점심 먹지 말라고 했단다. 

나는 반에서 특이한 평가를 받는 아이들과 친해지는 성향이 있었고 아마 그런 나와 어울렸던 또다른 단짝은 반 친구들에게 만류하는 이야기를 들었단다. 지금 생각하면 “특이하다”라고 평가받는 여자아이들 중 1명은 제주도에서 올라온 굉장히 똑똑한 아이였고 또다른 아이는 잠을 많이 자고 역시 똑똑한 아이였다. 또다른 아이는 몸이 몹시 약하고 교정을 하고 있어 표정이 부자연스러운 아이였다. 생각해보니 나는 공부를 잘하고 외모는 평범하고, 성격은 사교성이 부족하지만-나에게는 몹시 착하고 매력적으로 보이는 아이들과 어울렸다. 성적으로 친구를 사귄 것은 아니다. 본능적으로 ‘달라 보이는’ 친구들에게 끌린 듯하다.

돌이켜보니 10대 친구관계란 얼마나 불안정했는가. 항상 나는 ‘베프’를 찾아 헤맸는데 나에게 ‘베프’는 중학생 때 친구들은 아니었던 듯하다. 고등학생 때 3년동안 같은 기숙사를 쓴 친구들이 ‘베프’에 가까웠다. 대학생이 되어서도 둘씩 친한 여자애들 사이에서 두루두루 어울리며 외롭지만 외롭지 않은 척하였다. 결국 ‘베프’자리는 연애를 시작한 남친에게 갔다. 

그리고 선생님이 되어서 국어선생님들 모임과, 같이 근무한 00중 선생님들 모임에서 가장 내가 자연스럽고 편안하다는 사실을 알았다. 직장과 관심사가 같다는 것은 큰 공감대를 불러일으킨다. 그리고 내가 가장 자신있는 분야인 ‘학교’와 ‘독서’가 이야깃거리가 된다. (학교가 자신있는 이야깃거리라는 건 왠지 슬프다.)

물론 중학교 친구들 중에서는 2명과 연락한다. 공통 분모는 ‘육아’. 어느새 고등학교 친구들도 ‘육아’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그리고 고등학교 친구들은 만나면 꼭 고등학교 추억 이야기를 한다. 

대학교 친구들은 가장 끈끈한 시절을 보냈는데 지금은 결혼과 육아로 느슨해진 관계가 되었다. 대학교 친구들은 나에게 ‘인간 관계의 요령’ 같은 것을 알려주었다. 굉장히 직설적인 나의 말투를 고쳐주었다. 그리고 나의 개성을 인정해 주었다. 대학교 친구들과 베프가 되지 못한 것은 아마도 내 관심사가 친구들과 살짝 달랐기 때문이다. 나는 스무 살 여자아이들과 달리 정치와 역사에 깊은 관심이 있었다. 그런 나를 품어준 것은 친구들의 너그러움이었다. 하지만 통한다는 느낌은 많지는 않았다. 결국 스무살의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을 찾아 글쓰기 동아리에 들어갔고 거기에서 소속감을 느꼈다.

서른 다섯의 나는 이제 손 내밀 줄 아는 사람이 되었다. 어느새 직장에서도 선후배 사이를 잇는 가교 역할을 하게 되었다. 사회적 자아의 탈을 쓰고 있으며 사람 좋다는 평을 받는다. 

그러나 나는 안다. 내가 항상 ‘나’에 대해서만 큰 관심이 있다는 것을. ‘베프’를 만들기에는 나는 아주 자아중심적인 인간 유형이다. 나는 나의 성장, 나의 성취에 관심을 쏟는다. 가끔은 인간 관계에서 얼마나 냉정해지는지 나를 보며 놀라기도 한다. 

중학교에서 아이들을 바라보며 생각한다. 정글같은 친구 관계에서 아이들이 힘들어 하는 것이 안타깝다. 스무 살만 되어도 혼자 다니는 게 덜 힘들텐데. 15살의 아이들은 급식실에서 혼자 밥 먹는 게 엄청 힘들다. 그래서 밥을 먹지 않는다. 꽤 많다. 그걸 지켜보는 나도 참 괴롭다. 선생님들과 밥을 먹는 것은 학교 전체에 소문이 난다고 한다. 

베프는 나중에 만날 수 있다고, 지금 네가 만나지 못한 것뿐이라고 되지 않는 위로를 덧붙여주었다. 사실 진짜 하고 싶은 말은 혼자서도 괜찮을 수 있다는 말이다. 다음 상담에는 그 말을 해줘야겠다. 혼자서도 괜찮으려면 ‘자아’를 튼튼하게 만들어야 하고 그러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도 말해야겠다.     



2.

오늘 약속이 양림동에 핫한 카페에 있었다. 다정이를 데리고 외출하니까 미리 준비를 하였고 실제로 약속 장소에 20분 먼저 도착하였다. 광주에서 인기 좋은 '힙한' 동네 양림동은 골목마다 차가 가득 주차되어 있었다. 나는 조금 떨어진 장례식장에 차를 대고 유모차에 다정이를 태웠다. 빗방울이 한두방울 떨어져 이런 날씨에 외출을 강행한 나 자신의 판단이 살짝 후회되었다. 그래도 아기 엄마에게 외출은 소중하니까.

홍차 카페로 유명한 카페는 문이 자동문이 아니었고 고정도 잘 되지 않았다. 

유모차를 밖에 세우고 다정이를 안고 들어가 물었다.

"혹시 아기 의자가 있나요?"

"아니요."

사장님 표정이 어둡게 변하였다.

"여기 노키즈존인가요?"

"노키즈존은 아닌데..."

그 다음말은 이어지지 않았다. 표정이 여기 있으면 곤란하다는 뜻이었다. 차라리 말을 해줬으면 더 나았을까? 

조용한 음악과 넓은 공간, 소근소근 이야기하는 4,5팀의 손님들. 

그 순간 나는 몹시 수치감을 느꼈다. 아기를 데리고 인테리어가 고급스럽고 찻잔이 비싼 홍차카페를 온 내가 잘못을 저지른 것처럼 느껴졌다. 

다음에는 다정이가 아직 내 품에서 벗어나지도 않았고 한 발짝 내딛지도 않았는데 그렇게 대응한 사장이 미워졌다.

약속장소에서 만나기로 한 일행과 카톡을 하였다. 그리고 남편과 전화를 하는데- 혹시 다정이를 데리러 와줄거냐고 물어보려 했었다- 갑자기 서러움이 북받쳐 눈물이 쏟아져 나왔다.

나는 급하게 다정이를 유모차에 태우고 주차장으로 돌아왔다. 

얼마나 운전을 재빠르게 했는지 모르겠다.

노키즈존은 아닌데 노키즈존처럼 대응하는 사장님이라니, 정말 상처받았다.

왜 나는 제안을 못했을까?

일단 앉아 있다가 선생님들 오면 다른 카페로 옮긴다고 말해도 되는데 왜 도망쳤을까?

나 자신이 바보처럼 느껴졌다.

아기와 있으면 나는 방어적으로 수동적으로 변한다.     

다정이가 그런 대우를 받다니, 생각할수록 화가 난다.

모든 사람은 유아기를 지나 자란다. 왜 특정 시기의 아이들은 공간 출입을 금하는가?     

오찬호 작가는 "하나도 괜찮지 않습니다"에서 노키즈존을 비판하며 특정부류를 차별 배제하면 안된다고 하였다. 사실은 노키즈존이 아니라 노맘존이라는 해석도 있었다. 대부분 아기 엄마들이 아기를 데리고 외출하기 때문이다. 결국은 아기 엄마들을 겨냥한 차별이다. 

사람들은 왜 그 너머는 생각해 주지 않을까? 아기 엄마들이 아기를 데리고 외출할 수 밖에 없는 속사정을. 

아기 아빠들이 우르르 유모차를 끌고 외출하는 날을 꿈꾸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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