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자존심을 살려라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편안히 늦은 아침을 먹고 있는데 전화가 왔다. 이 시간에 울리는 전화는 희소식은 아니다. 엄마의 직감은 적중이다. 이번에는 학부모의 전화다. 학부모의 전화는 더 무섭다.
“00 엄마! 제가 아침부터 전화를 할까 말까 망설이다 전화합니다.”
격양된 학부모의 억양 높은 소리가 아침을 메운다. 아이의 목에 멍자국과 상처 자국이 있어 무슨 일이냐 물으니 00가 통학차에서 목을 조르고 때렸다고 한다.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써 이해할 줄 안다며 품어대는 칼칼한 목소리. 수화기를 타고 들어오는 분노를 듣고 있자니 맛있게 넘어가던 밥알이 다시 나올 것만 같았다.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성질 급한 엄마 목청을 높였다.
“예! 어머니! 그래서 어떻다는 건가요? 일방적으로 한쪽 말만 듣고 지금 저에게 사과하라는 건가요?”
엄마는 억울하고 분했다. 이런 종류의 전화를 종종 받았고 그럴 때마다 그들이 말하는 결손가정의 못된(?)자식 가진 죄인 엄마는 늘 ‘죄송합니다 미안합니다 이해해 주세요’ 최대한 예의를 갖춰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구해왔다. 그러다 보니 엄마들 사이에 소문이 났을까? 그집 얘들은 못됐고 다른 아이들을 괴롭힌다고. 다짜고짜 판정하고 화풀이 하듯 전화질에 성질을 부리는 것 같아 울화통이 터질 지경이었다.
의외의 태도에 발끈했을까? 밀리면 안된다는 생각이었을까? 그 엄마. 처음보다 더 세게 화를 낸다.
이 엄마 질수 없지. 상대보다 더 큰 소리로 퍼부었다. 핸드폰을 쥔 손이 덜덜 떨렸다. 옆에서 보다 못한 남편은 그만하라는 시늉을 하며 말렸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 되고 말았다. 전화로 안되니 만나서 따지자고 했다. 상대도 격양된 목소리가 그대로 묻어나오며 알았다고 언제 만날지 약속하자며 끝까지 소리를 지르며 전화를 끊었다.
잠시 숨을 고른 후 생각했다. 도대체 이 녀석은 무슨 잘못을 하고 다니길래 엄마가 이런 수모를 당해야 하는가.
어쨌든 우군을 모아야 한다. 이기려면 내 편이 되어줄 사람을 찾아야 한다. 제일 먼저 통학차 선생님께 전화를 했다.
사정을 이야기 했지만 우군은 되어주지 못했다.
“어머니, 사실은 00가 장난이 심하긴 해요. 통학차에서 있었던 일은 잘 모르지만 아이들 사이에서도 좀 그래요.”
어라, 안되겠다 싶어 아이가 다니는 센터에 전화를 했다.
“어머니, 00가 문제가 있긴 해요. 센터에서도 아이들이 00를 무서워해요. 너무 거칠고 욕도 많이 하고 소리도 지르고...”
마지막으로 도움을 청할 사람은 담임 선생님.
“선생님, 저 00엄마에요. 우리 아이가 요즘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해서 전화 드렸어요.”
조금 누그러진 겸손한 태도로 전화를 했으나 완패다.
“어머니, 00가 학급에서도 아이들 사이에서 문제가 있어요. 아이들이 00와 노는 것이 무섭다는 이야기를 해요. 그리고 그런 일들은 잘못 다루면 문제가 될 소지가 있습니다.”
이쯤이면 엄마는 꼬리를 내려야 한다. 더 이상 감정적 대응은 좋은 결과를 낳지 못한다는 결론이 났다.
전화를 해야 하는데 용기가 나지 않았다. 어떻게 상황을 마무리해야 할지 답이 나오지 않아 쩔쩔매며 점심을 넘겼다.
일단 꼬리를 내리자. 다시 감정에 호소해야 했다. 정말 부끄럽고 자존심 상했지만 어쩔수 없다. 전화를 할까 하다 문자를 보냈다.
상대 엄마의 카톡을 찾았다.
“어머니, 죄송합니다. 아침에는 저도 모르게 마음이 상해서 그랬네요. 우리 아이가 잘못했는데 어머니에게 화풀이 하듯 해서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라는 말에는 너무 많은 감정이 있지만 일단은 마무리가 되었다. 같이 아이를 키우는 엄마의 입장이니 괜찮다는 답변을 받았다.
가지 많은 나무다. 바람 잘 날 없다. 그래도 그 가지 바람에 흔들려도 부러지지만 않으면 된다. 흔들리면서 뿌리를 더 깊이 내릴 것이다. 어떤 시인은 말했다. 흔들리지 않으며 피는 꽃이 없다고. 우리 아이들도 매일 흔들리며 큰다. 흔들리며 크되 꺾이지만 않으면 된다고 마음을 정했다. 그래도 아픈 마음은 며칠을 끙끙거리며 보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