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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성옥 Oct 21. 2023

텃밭 농사

텃밭 농사, 자식 농사 둘다 잘해내고 싶은 엄마의 마음


텃밭에 심어놓은 식물들이 이른 비, 늦은 비를 맞으며 자란다. 200평이 조금 못되는 밭이다. 남편은 아내의 힐링생활을 위해 기꺼이 농기계 임대사업소에서 소형 트렉터를 빌려 밭을 갈았다. 고랑을 만들고 이랑을 높이 올린 후 풀이 자라지 않게 비닐 멀칭까지 친절하게 만들어 주었다.    

  

4월이 되면 텃밭이 바빠지기 시작한다. 5일장이 열리는 날을 기다려 모종을 샀다. 고추, 토마토, 가지를 먼저 심었다. 맨 앞 이랑부터 가지를 심고, 그 옆으로 아삭한 맛을 내는 오이고추를 나란히 심었다. 토마토는 아이들이 따먹기 쉽게 맨 가장자리에 심어 놓았다. 비가 온다는 예보가 있어 바쁘게 바쁘게 심어놓고 물을 주어야 하나 비를 맞춰야 하나 고민하는데 남편의 잔소리.

“저녁에 비 많이 온다는데 그냥 두지 뭘 고민이야?”

“그러다 비가 안오면 어쩌고?”

“하루 이틀 물 안줘도 안죽어요. 예민하기는.”

초저녁부터 비가 온다고 했는데 빗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밤 12시가 넘어서자 졸린 눈을 감았더 떴다 창밖을 왔다 갔다 비를 기다리는데 바람만 불고 비님은 어디쯤 오고 계시는지.

“아이고 좀 그만 자. 비 안오면 아침에 물주면 되잖아.”

“물을 주는 것보다 비를 맞아야 더 싱싱하게 큰단 말이야. 내가 일기예보를 확인하고 심은건데 왜 안오냐고 글쎄.”

“맘대로 안 되는 것이 농사야 이 사람아.”

    남편은 혼자 애끓는 마음을 이해하기는커녕 오히려 핀잔이다.


텃밭 농부의 심정을 알았다는 듯 새벽녘부터 후두둑 빗소리가 들리더니 이른 아침에는 제법 많은 비가 와 주었다. 동동거리던 내 발걸음이 가벼워지고 기분이 좋아졌다.

아이들은 아침부터 비가 온다며 투덜댄다.

“엄마, 나는 비가 제일 싫어요.”

“잉, 비가? 엄마는 비가 제일 좋아. 엄마가 심어놓은 채소들이 비를 맞고 싱싱하게 크잖아.”

“엄마만 좋지. 난 싫어. 비 맞으면 이생긴대요.”     

또 며칠 후 비 예보가 있는 날, 장날이다. 남편을 졸라 다시 5일장에 갔다. 이번에는 고구마를 심어야 한다. 영광은 꿀청 고구마가 유명하다. 고구마순을 구하기가 쉽지 않아 서둘러 시장에 갔다. 마침 모종 사장님께서 남은 것 떨이라고 하며 다섯단을 4만원에 주셨다. 호박도 몇 개 사고, 깻잎도 샀다. 오이는 몇 개만 사려 했는데 기분좋은 사장님 싸게 줄테니 한판 몽땅 사가라 하셔서 25개나 들어있는 오이모종판을 들고 왔다. 서비스로 주신 옥수수도 열 개가 넘는다.

고구마는 심기 쉽다. 고구마 심는 전용 호미가 있어 비닐 속에 45도 각도로 쑥 집어 넣으면 된다. 고구마 마디가 땅속으로 두세 마디만 들어가 있으면 뿌리를 내릴 수 있다는 선배 농부님의 강좌를 들은 터라 어렵지 않았다. 그래도 다섯단이나 되는 고구마순을 한번에 심으려니 힘에 부쳤다. 

숨을 헐떡이며 심어놓고 그 옆 이랑에는 오이를 심었다. 몇 개만 심으려던 계획이었지만 모종이 아까워서 버리지 못하고 낑낑거리며 욕심껏 심어 놓았다. 밭 가장자리에 옥수수도 심었다. 옥수수는 북을 주지 않아도 될 것 같아 꾹꾹 눌러 심기만 했다. 옆으로는 공간을 넓게 잡고 호박을 심었다. 호박은 잎이 금방 무성해지니 듬성듬성 심어놓아야 한다.

겨우겨우 심고 나니 비가 오기 시작이다.

“와. 성공이다.”

“이번에는 제법 맞췄네. 잘했어.”

남편은 혼신을 다한 아내의 어깨를 토닥여 준다. 기분이 좋다. 텃밭은 힘든 엄마의 힐링놀이터다. 여러 아이들 속에서 북적이며 살다 숨쉴 곳이 필요하면 밭으로 나간다. 식물들이 커가는 것을 보는 일, 풀을 뽑아 주는 일은 더없는 휴식이다. 

텃밭 농사, 자식 농사 둘다 잘해내고 싶은 엄마의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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