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고 답하며 이해하고 용서하고 화해하며 다시 시작
1. 남편 이야기
눈이 커서 조금 슬퍼 보이는 남자.
느린 성격에 오래 버티는 것은 잘하는 남자.
천천히 오랫동안 먹는 것 좋아하는 남자.
자식 일이라면 무엇도 다 괜찮다는 남자.
여섯 살 연상 마누라를 쫄쫄 따라다니며 머슴노릇 하는 남자.
그리고,
아이들에 대한 측은지심이 있는 남자.
소를 닮은 남자. 77년생 김양근.
묻고 답하며 이해하고 용서하고 화해하며
다시 시작.
-질문자 : 연상 마누라 전성옥, 대답자 : 연하남편 김양근
문 : 여보, 당신의 이야기를 해보고 싶어요.
답 : 역사를 써 볼까?
문 : 과거행 기차를 타고 한번 여행을 떠나 보게요.
답 : 음... 나는 과거가 슬픔이 너무 많아 되새김질 하는게 힘든데.
문 : 과거는 오늘을 있게 하는 소중한 역사예요. 그리고 과거를 잘 이해하고 용서하면 우리의 미래를 활짝 열수 있어요.
답 : 한번 가보세. 가봐.
문 : 당신의 열다섯 소년을 만날 거예요.
답 : 열다섯이면 중학교 2학년 내 인생에 슬픔이 가장 응집된 시기인데...
문 : 엄마가 떠나시던 때죠?
답 : 그렇지. 병원에서 사형선고를 받고 집으로 모셔왔는데 하늘이 무너진다는 것이 무엇인지 느껴지는 시간이었지. 아빠가 열 살에 돌아가셨고 이제는 엄마 마져 떠나려하니 열다섯 나는 어땠겠어. 아무것도 할수 없었어. 차갑게 식은 엄마의 두손을 붙잡고 기도하고 또 기도했지. “하나님, 제발 우리엄마를 낫게 해 주세요.” 눈물로 눈물로 밤을 새우며 보이지도 않고 믿지도 않았던 하나님을 찾아 애원했지. 그날 밤 힘들게 눈을 뜬 엄마가 나에게 말했어.
“양근아, 엄마가 똑바로 누우면 죽은 거다.”
문 : 부모를 모두 하늘나라로 보낸 당신은 동생들과 어떻게 살았어요?
답 : 어떻게 살겠어. 중학교 2학년 내가. 동생들만 주르르 셋이었잖아. 나는 팔순 할머니와 하반신 장애인 큰아버지집으로 들어가고 열세살 혜진이는 넷째 큰 아버지 집으로, 열한살 수진이는 셋째 큰아버지, 막내인 일곱살 경진이는 둘째 큰 아버지네로 뿔뿔이 흩어져 살게 되었지. 그때는 정말 말할 수 없이 고통스러웠지.
문 : 동생들과 함께 살수 없어서 힘들었겠네요. 당신이 유독 동생들에 집착 아닌 집착을 하게 된 것이 이 일 때문이구만.
답 : 그럴지도 모르지. 그렇게 1년을 흩어져 살았는데 막내동생이 제일 불쌍했지. 어린 나이에 얼마나 눈치보고 살았겠어. 눈치 보면 눈치 본다고 구박하고 또 구박당하면 더 주눅 들어 눈치보고... 세상이 온통 희뿌연 안개속이야.
문 : 성격이 활발했던 당신이 기가 죽고 의기소침해질 수 밖에 없었던 시기네요.
답 : 나는 원래 낙천적인 사람이었지. 친구 좋아하고 노는 것 좋아하고 운동도 잘하고.... 그런 모든 것들이 안개속으로 사라진 느낌이랄까. 앞이 보이지 않았으니 어떻게 살아야 할지도 몰랐어. 그저 하루하루 버틸 수 밖에. 소원이 있었다면 동생들과 같이 살고 싶다였지. 큰아들이라는 짐이였을까. 동생들이 불쌍해 속으로 많이 울었어.
문 : 얼마나 살았어요? 1년쯤 되었나요?
답 : 그렇게 1년을 살았는데 주위에서 돕는 사람들이 있었어. 한수원 직원들이 우리 남매 이야기를 들었나봐. 가족들이 흩어져 살면 안된다고 후원금을 모아 함께 살게 해 주셨지. 그때부터 동생들과 한 집에서 같이 살수 있었어. 김00목사님 댁에서 말이야. 그분들도 자식이 있었는데 우리 네 남매를 맡아 키워주시기로 했지. 그 목사님 아들이 지금 00형이잖아. 내 유일한 형님이지. 지금도 그 시절이 그리워. 정말 행복했던 시간이었는데.
문 : 행복했던 시간도 그리 오래는 아니었잖아요.
답 : 맞아. 인생이 그런건가 좋은 날이다 싶으면 또 비바람이 불어와. 진짜 가족같이 살았고 동생들도 좋아했는데 채 2년도 못 살고 또다시 흩어져야 했지.
문 : 정처없는 나그네 인생이죠. 우리 모두는. 그 후에 복지시설로 들어가게 되었죠?
답 : 한수원 직원 후원회에서 만든 [사랑의 집]이라는 시설에 들어갔지. 나는 정말 그런 시설에 들어가고 싶지 않았어. 하지만 동생들 때문에 들어가야겠다고 마음 먹었지. 그때 바로 아래 동생 혜진이가 한참 사춘기를 겪고 있었고 오빠로써 사춘기 여동생을 관리할 수가 없었어. 어긋나갈까봐 걱정이 되었는데 오빠 말을 통 듣지 않았거든.
문 :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어땠어요?
답 : 좋은 분들이었지. 목사님 부부의 헌신으로 세운 시설이었는데 독거노인들, 장애인들, 부모없는 아이들을 모아 함께 공동체를 이루며 새로운 가족이 되어 살았지. 나를 키워주시던 목사님의 생각이 참 좋았어. 작자무즉 정신(작은 것을 소중히 여기라. 자원하는 자가 되라. 무명유실한 자가 되라. 즉각 순종하라).
문 : 그분의 정신이 지금 당신의 현재를 이루는 근간이 된 것 같아요.
답 : 고등학교 때부터 그런 말을 듣고 살았으니 가치관으로 형성되었겠지. 그분의 삶도 마찬가지였어. 처음으로 가족이라는 말을 타인에게서 들었던 것 같아. 나처럼 부모를 잃고 흩어진 아이들을 모아 한가족이라고 말해주고 진짜 가족처럼 대해주셨거든. 그때부터 내 마음을 흔드는 생각이 가족이라는 낱말이야.
문 : 가족을 이루고 싶은 마음이 목사님의 생각과 맞아 떨어진 것이지요.
답 : 나처럼 부모가 없는 고아들은 가족이라는 말에 마음을 다 내려놓지. 가족이 있다는 것은 태산을 얻는 것보다 더 소중한 것이잖아.
문 : 그래요. 혈연이든 지연이든 한가족이 되어 공동체로 살면서 서로의 언덕이 되어주는 삶은 참 아름다운 모습이지요.
답 : 오래가지 못했어. 목사님 부부는 몇 년 후에 중국으로 선교가신다고 떠나셨거든. 배신감에 오랫동안 상처가 되었지. 마음 문을 닫아버렸어. 모든 좋은 사람들에게조차도. 마음을 닫아놓고 사니 편하더라고. 상처받을 일도 없고.
2. 소문 무성한 연상연하 커플
문 : 당신을 처음 만났을 때가 생각나요. 얼굴에 서린 근심, 그리고 무표정. 스물네살 청춘이 애늙은이 느낌이었거든.
답 : 답답했겠지. 줄줄이 동생들은 시설에서 살고 나 혼자 대학생활에 직장생활에 거기다 새생명 마을(아동청소년 양육시설)아이들 걱정까지 있었으니.
문 : 그때 만난 당신의 반쪽은 어떤 느낌이었을까?
답 : 서른 노처녀에게 느낌은 무슨... 독특한 여자구나 했지.
문 : ......
답 : 누나 같고 엄마 같았어. 작고 삐짝 마른 체형인데 왜 그런 느낌이 들었지?
문 : 동변상련 아니었을까? 같은 아픔 같은 소망을 품은. 거기다 시골에서 먹히는 미모?
답 : 처녀 중에도 노처녀가 당당하고 자존심도 쎄가지고 시설 아이들을 교육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였지. 거친 남자 아이들을 눈물 쏙 빼게 야단치고 바로 잡아가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지. 남들은 시설 아이들이라고 불쌍히 여기고 친절하게만 대하는데 뭔가 좀 다르다 생각했지.
문 : 그게 멋졌구나. 믿을만 했나봐. 내가.
답 : 엄마에 대한 그리움이 사무쳐 있는 나에게 모성본능을 자극하는 섹시함(?)이 매력이었지. 거기에 강직한 양육방식이 맘에 들었어. 부모도 없이 부초같은 인생에 떠돌이 삶인데 누군가 강하게 나를 잡아줄 것 같은 편안함. 좀 기대어 쉴수 있을 것 같았지.
문 : 나이는 숫자에 불과한가?
답 : 아니. 나이가 문제였지. 그때만 해도 연상연하 그것도 여섯 살이나 많은 노처녀(?)를 만난다는 것이 쉬웠겠어?
문 : 그래도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잖아. 우리가 증명한 거 아니야?
답 : 맞아. 나에게 당신의 나이는 중요하지 않았어. 동생들을 따뜻하게 대해주는 사람, 같은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 함께 하고 싶은 생각이 더 중요했지.
문 : 내가 당신에게 꿈을 물었잖아?
답 : 깜짝 놀랐지. 한번도 생각해 보지 못했던 꿈. 그거 먹는거냐고?
문 : 당신 답에 내가 더 놀랐지. 꿈이 뭐냐고 묻는데 대뜸 “내 꿈은 막내 경진이 시집보내는 거야”라고 말했잖아.
답 : 경진이는 아픈 손가락이야. 세 살에 아빠를 잃어 아빠에 대한 기억도 없는데 여덟살에 또 엄마가 돌아가셨으니 부모에 대한 기억이 없는 거잖아. 늘 측은했어. 울보 못난이에 착해 빠져서 남들에게 휘둘리기 일쑤였지.
문 : 당신 꿈은 따로 있었잖아. 나는 당신 꿈에 반했는데?
답 : 어른들이 정해준 꿈이었지. 시설에서는 내가 제일 큰 형이고 오빠였기 때문에 나에 대한 기대가 많았어. “양근이가 크면 이 아이들을 키워야 한다. 목사가 되어야 한다.” 이런 말들을 항상 듣고 살았으니까. 그런 말들이 싫었어. 내 자신도 제대로 서지 못하고 있는데 그런 말들이 들리지 않았지.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내가 그런 말을 하고 다니더라고. “얘들 키워야죠. 200명 키울 거예요.”
문 : 가랑비에 옷 젖듯이 스며들었구만.
답 : 아이들에게 진심을 다해 교육하는 당신 모습이 내 마음을 움직인거야. 가랑비에 옷 젖듯이 사랑에 젖어든거지.
3. 나랑 결혼해 줄래?
문 : 우린 멋진 연애를 했잖아?
답 : 무슨 연애? 당신은 누나고 나는 동생이고. 맨날 숙제만 내줬잖아.
문 : 숙제는 왜 했어?
답 : 숙제를 해와야 만나주니까 그랬지. 책이라고는 고등학교때 처음 읽은 [나의 라임오렌지나무]가 전부였는데 대학 교재보다 더 두꺼운 책을 주고 독후감 써오라 하니 참...
문 : 무슨 책을 주었더라? 내가.
답 : 황대권의 [야생초 편지], [나무를 심은 사람], 안도현의 [연어] 정말 많이도 읽었네. 내 생애 가장 많은 책을 읽은 시간이었다. 진짜.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는 정말 힘들었어.
문 : 그 덕에 글솜씨가 늘었잖아.
답 : 시설 회지에 내 글이 매회 실렸지. 사람들이 김양근 글 잘 쓴다고 칭찬도 해주고 좀 괜찮았어. 프로포즈도 시를 써서 해 주었잖아. 돈 안들이고 마누라 얻었네.
우리 하늘 가서도 같이 살자
우리 하늘 가서도 같이 살자
너무 많은 것 주시는 하나님께
우리에게 좋은 것들 조금만 주시라 하고
변함없이 사랑하는 맘 가지고
같이 살게 해달라고 하자
사람들이 그곳에 있어도 좋고 없어도 좋고
커피 끓일 시간이 그곳에 있어도 좋고 없어도 좋고
그저 당신 좋아하는 비가 달빛처럼 쏟아지고
달빛은 비처럼 내려서
당신 앞에 새하얀 눈으로 쌓였으면 좋겠다
눈밭에서 꽃도 나고 사과도 났으면...
당신의 살내음을 느낄 수만 있다면
꽃향기가 그곳에 있어도 좋고 없어도 좋고
그저 당신 좋아하는 달콤한 낮잠을
따뜻한 눈밭에서 같이 자고 싶다.
문 : 와! 지금 봐도 멋진 프로포즈구만.
답 : 야생마 같은 나를 길들여 가정을 꾸리게 해 주었으니 우리 누나 정말 고마운 분이네.
문 : 게다가 당신의 첫 번째 꿈을 이루기 위해 막내 여동생을 품고 살았잖아.
답 : 신혼 초부터 시누이랑 사느라 힘들었을텐데 나는 그것도 잘 몰랐지. 누구랑 같이 사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몰랐어. 철이 없었지 내가.
문 : 연상 마누라가 감당해야 할 몫인게지.
답 : 평생 고마워 하고 살잖아. 좀 봐줘요.
연상 마누라
애인처럼
친구처럼
엄마처럼
그렇게 내 곁에 있고 싶다던
당신은 연상 마누라
내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고
어떤 상황에서도 보드랍던 당신은
어디로 가 버렸소
내 지갑에 항상
오만원을 채워주고
연속 다섯 번 이상 전화를 안받아도
이해해 주고
발을 안 씻고 자도
보드랍던 당신은
어디로 가 버렸소
내 지갑은 지가 지갑인줄도 잊어버렸고
내 전화기 속엔 온통 당신 번호 뿐이고
매일 샤워를 해야만 하는 나는
일만 하는 머슴같아요
“당신! 나 아니었으면 장가도 못갔어.”
“나니까 당신 꼴보고 살지.”
“나 같은 여자 없다. 당신 여복 있어.”
늘 해대는 당신의 말씀
나 완전 당신 말씀에 최면이 걸린 것 같아.
이 최면에 영원히 안깨도 좋으니
이번달 용돈 좀 주세요. 네?!
4. 둥지를 트는 일을 해내기 위해
문 : 결혼생활이 쉽지는 않았지?
답 : 중학교 때부터 이리저리 옮겨다니며 거처가 없이 불안정했던 내가 어린 나이(28세는 어렸다)에 갑자기 가정을 꾸렸으니 힘들었지.
문 : 경제적인 어려움이 결혼생활을 더 힘들게 했잖아.
답 : 맞벌이를 해도 형편은 그대로였지. 그나마 처형이 살림집으로 내준 빌라에 빌붙어 살아서 집 걱정은 덜했지만 눈치가 보이는 건 어쩔수 없었어. 가장으로써 당당하지 못해 자존심도 상하고 그래서 싸움도 많이 했지.
문 : 첫째아이, 둘째까지 태어나자 정신이 번쩍 들었다고 했잖아?
답 : 태찬이가 태어났을 때는 사실 아무생각이 없었어. 그때가지만 해도 결혼생활이 익숙하지 않았지. 자유분방하게 하고 싶을 때 하고 하기 싫으면 내팽개치는 무질서한 생활이었잖아. 어릴 때 부모를 잃고 가정이고 가족이고 모두 흩어져 맘대로 살았던 삶이잖아. 그런데 갑자기 가정을 이루고 아이가 생기다보니 무거운 책임감에 눌려 도망치고만 싶었지. 그러다 덜컥 둘째가 태어나자 정신이 번쩍 들었어. ‘오메, 어쩌다 애 둘 딸린 유부남이 되었구나.’
문 : 야생마 길들이기에 성공했네. 연상 마누라가.
답 : 몇 년은 그런대로 행복했지. 아이들 크는 것도 재미있고. 게다가 우리 얘들이 좀 예쁜가, 아빨 닮아 햇살처럼 빛났잖아. 사랑을 많이 받고 컸지. 우리 얘들은. 아빠인데도 나는 아이들이 부러웠어. 엄마도 있고 아빠도 있잖아. 참 어린애 같은 생각이지. 그때도 나는 엄마 아빠에 대한 그리움을 품고 있었나봐. 그래도 내 인생에 가정이 있고 아이들이 있고 잔소리 하는 마누라도 있고 행복하다고 느낄때가 많았지. 이대로 계속 살고 싶었어. 열심히 살다 보니 경제적으로도 여유가 생겨 참 좋았는데.
문 : 시련은 꼭 행복한 시간을 가로질러 오더라. 딸 태희가 갑자기 아팠잖아.
답 : 중환자실에 있는 딸을 보면서 또다시 기도했지. 열다섯살 때 엄마를 살려달라고 찾았던 하나님께 진심으로 부탁했어. “하나님, 딸을 살려주세요. 살려만 주시면 예전에 서원했던 그 일을 하겠습니다. 아이 200명 키우겠다고 한 약속을 지키겠습니다.”
문 : 다행히 아이는 건강해 졌잖아. 대신 우리는 큰 결심을 해야 했고.
답 : 약속을 지켜야 하는데 고민이 되었지. 서울살이가 이제 좀 안정이 되었는데 또 둥지를 옮겨야 한다고 생각하니 싫었어. 아직은 젊고 하고 싶은 것도 많았는데.
문 : 어려운 결심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당신 마음 속에 움튼 꿈 아니었을까?
답 : 아이가 아픈 것이 꼭 내 잘못인 것 같았어. 내가 힘들 때 나를 도와주셨던 많은 분들에게 “저도 크면 아이들을 키우는 사람이 될께요. 도와주신 만큼 남을 돕고 살겠습니다” 이런 말을 입버릇처럼 하고 다녔잖아. 그런데 좀 살만하니까 나 혼자 노력해서 잘살게 된 것인냥 꿈을 외면했던 것이 죄책감으로 다가왔어.
문 : 쉬운 결정은 아니었어도 결심하고 나니 마음은 오히려 더 편안해졌지?
답 :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두려움이 더 많았어. 고향을 떠나온지 10년이 넘었잖아.
문 : 꿈을 품고 귀향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야지. 딸이 되새김 해준 셈이잖아.
답 : 시 속에 마음을 담아놨지.
영광 애(愛)
- 김양근
오뉴월 연두색 모
땅 맛보며 웃는다
논두렁 개구리 울음 방구방구 찼다
넘실넘실 고구마 순 골 따라 흐르고
약 오른 고추 툭툭 터져 나온다
거뭇수염 강냉이 지가 어른 나드니
바람치는 깻잎 소리없이 나무란다
박꽃 지는 자리
희망 부풀고
접시꽃 벙거질 때
내 고향 영광
덩이덩이 차오른다
들로 산으로
뛰노는 내 새끼들
웃어라 까불어라
콩 여물대끼 여물어라
고~ 소리 들으며 행복에 늙어질 터이니,
과연 영광 촌놈으로 죽어도 영광이구나.
5. 꿈을 펼치기 위해 잠시 접어야 했던 시간
문 : 시골살이가 만만치 않았지?
답 : 고향이라고는 하지만 10년을 넘게 떠나 있었고 다시 왔을 때는 이방인이야. 텃새가 없을 수 없지. 지역사회에 함께 살아가려면 내려놔야 하는 것들이 많아. 다행히 좋은 분들의 도움을 받아 조금 수월하게 정착할 수 있었던 것 같아.
문 : 목장일을 시작했을 때는 자존심도 상하고 자존감도 바닥이었잖아?
답 : 소처럼 일만 했지. 새벽부터 밤까지 쉴 틈도 없이. 아이들을 키우겠다고 내려왔는데 남의 축사에서 소 젖짜는 일만 하고 있는 내 모습에 화가 날 때가 많았어. 워낙 낙천적인 성격이라 견디기는 했지만 말야.
문 : 천하태평이던 당신이 부지런한 사람으로 소문이 났잖아?
답 : 어쩌다 그렇게 되버렸지. 새벽에 나갔다가 밤 늦게 들어오니 동네 사람들이 수군대기 시작한 거지. “양근이 부지런한 사람이야. 새벽부터 밤까지 일만 해. 젊은 사람이 대단하네.” 이런 소리를 듣게 되니 어쩌겠어. 소문을 사실로 만들어야 하잖아. 더 열심히 일했지 뭐.
문 : 그 와중에 우리 가정에 새로운 가족이 생겼잖아.
답 : 보물이 찾아온 거지.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가슴이 뛴다. 00이와 00는 내 생애 두 번째 선물이야. 묻지 마. 첫 번째는 당연 우리 마님이니까. 아이를 처음 만난 순간 “와! 보물이다. 내가 보물을 찾았어.” 진짜로 일이 하나도 힘들지 않았어. 열심히 살면서도 항상 희뿌연 안개 속을 걸어가는 느낌이었는데 햇살처럼 빛나는 아이들 때문에 신이 났던 거지. 속에서 꿈틀대던 질문에 답을 발견하는 기분 좋은 피곤함 같은 거.
문 : 당신은 활기찬 사람이 되어가고 있더라.
답 : 농사일에 축사 일에 하루하루가 정신없는데도 재미있었어. 우리 아이들 키울 때보다 더 좋았지. 제대로 어른이 된 기분. 이런 감정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뿌듯한 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사는 게 다시 행복해 졌지.
문 : 딸이 되새겨준 당신의 꿈이 튀어나온 게 아닐까? 아이들 200명 키우겠다는.
답 : 태희 때문에 시골로 내려올 결심을 했으니 참 고마운 딸이구만. 가정생활을 성실하게 만든 아이도 딸이고 잠자던 꿈을 끌어다 준 것도 딸이네.
문 : 소도 키우고 닭도 키우고 이제는 아이들까지 키우게 되었으니 부자 아닌가?
답 : 사람 참 간사하지? 생활이 안정되면 꼭 욕심이 생긴단 말야. 남의 집에서 일하는 거 그만하고 내 사업을 하고 싶은 생각이 들기 시작했어. 한쪽 마음은 아이들에게 있는데 또 한쪽 마음은 돈을 좇고 있는 거야. 돈 걱정 없이 살아보고 싶어졌지. 내 이름으로 축사도 사고 싶고 논도 사고 밭도 사고 이대로면 그냥 부자가 될 것 같았거든.
문 : 시련이 시작될 징조였잖아?
답 : 인생이 내 맘대로 되지 않아. 갑작스런 실직으로 평안했던 가정이 다시 회오리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말았지. 그동안 쌓아왔던 김양근의 좋은 이미지가 구설수에 오르게 되고. 지역사회는 참 어려워. 좋은 이미지를 쌓는 것은 오랜 시간이 걸리는데 사소한 실수 하나에 공든 탑이 와르르 무너지기도 하거든. 자의반 타의반의 실직생활은 아이들에게도 힘든 시간이었어.
문 : 한참 공부해야 하는 아이들이 문제였지.
답 : 학원조차 다닐수 없을 만큼 경제적 타격이 있었지. 당신에게도 참 미안했던 시간이야.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살아왔는데 마음먹은 만큼 잘 안될 때는 힘들어. 무심히 잘 견디는 성격인데도.
문 : 다시 원점이다 생각하고 뒤를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잖아.
답 :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하는 시간이었지. 생각없이 사는 거 좋아했는데 어쩔수 없이 생각해야 했어. 누구나 힘들면 엄마가 생각나는 걸까? 엄마가 간절히 그리웠어.
문 : 엄마 아빠 산소를 파묘해서 합장하게 되었잖아. 그 시기에.
답 : 갑자기 생각이 났어. 생각없는 내가 생각을 한거지. 시간이 많아서 그랬을까? 엄마 아빠 산소에 갔는데 두분을 한곳에 모셔야겠다는 생각. 두분의 묘가 서로 떨어져 있어서 항상 마음에 걸렸는데 그 문제를 해결하고 싶었나봐.
문 : 어려운 일이었는데 순조롭게 잘 마무리 되었지.
답 : 응어리가 풀어지는 것 같았어. 기분이 엄청 좋았지. 동생들에게도 당당한 장남노릇을 한 것 같았거든. 그때 써 놓은 [어머니] 시가 생각나네.
어머니
김양근
마른씨앗
토닥여
땅에 묻은지
벌써 서른 해
여적
기다려도
꽃 소식 없네
기척이 없네
가뭄에
잡풀마져
타버린 것이
구름 되고
이슬 되었나
세월이 찾아와
무릎을 베고
누운 밤
나를 어르던 눈빛 그리워
슬퍼지려 할 때에
아들 녀석 눈 속에서
보았네
참!
예쁘게 피었구나.
6. 소닭소닭
문 : 새옹지마 인생일까? 소와의 인연이 다시 시작되었잖아.
답 : 복이 참 많은 사람이야 나는. 어려운 순간순간 도움을 받게 되거든. 소를 키우는 친구의 도움으로 다시 일을 하게 되었지. 이번엔 목장일이 아니라 한우 헬퍼로 일을 하게 되었어. 예전 일보다 조금 쉬웠고 시간적 여유도 있었지. 물론 경제적으로는 자유롭지 못했지만.
문 : 집에서 키운 청계(닭)가 한 몫을 해 주었잖아?
답 : 닭과의 인연도 재미있지. 태희가 워낙 동물을 좋아해서 몇 마리 키우게 된 것이 가정 경제를 돕기까지 진출했으니. 청계가 파란 알을 낳잖아. 거기에 일반 사료 먹이지 않고 발효 사료를 직접 만들어 먹이고 미생물 만드는 것도 배웠잖아. 닭장엔 냄새도 안나고 건강에도 좋은 알을 생산할 수 있었지. 작고 시시한 일이라 치부할지 모르지만 그땐 절박했기에 최선을 다했지. 내 인생 중 가장 치열하게 살았던 시간인 것 같은데.
문 : 청란을 팔아 모은 돈이 얼마였지?
답 : 닭으로 월수입 백만원만 벌 수 있으면 좋겠다고 했는데 1년 2년 하다보니 목표점에 도달했잖아. 청계 한알에 500원정도 받았으니 한달에 백만원을 벌려면 몇 개를 팔아야 했던 거야? 포장에 배달에 택배에 당신 정말 고생했구만.
문 : 우리는 소닭 커플로 재도전 할 수 있었지.
답 : 남의 축사를 임대해서 소 두 마리로 시작했을 때 힘을 실어주신 분이 계셔. 잊지 않고 기억할거야. 정말 마음이 따뜻한 분이야. 송아지 값이 최고점을 찍을 때 인데도 제일 좋은 송아지 한 마리를 선뜻 주셨잖아. 밑천 삼아 키워보라고. 가슴이 먹먹할 만큼 감동이었고 힘이 되었지. 지금도 그 소를 보면서 다짐해. ‘열심히 키워서 좋은 일에 사용해야지.’
문 : 소로 돈을 많이 벌어서 쓰고 싶은데가 있다고 했잖아?
답 : 비빌 언덕이 되어 줄거야. 아이들에게. 벌판에 서 있지 않게 해주고 싶어. 지지대가 되어주고 밑거름이 되게 해 주어야지. 우리처럼 아무것도 없이 시작하면 가는 길이 너무 힘겹잖아. 조금 수월하게 갈 수 있도록 해 주어야지. 부모된 책임이라고 생각해.
소
김 양 근
- 소 여물을 주며 -
되새겨야 해
천천히
어제 먹었던 거친 풀과
마른 콩깍지
이름 모를 풀까지도
다시 씹어야해
잘게잘게 부서져
소화 될 때까지
반복해야 해.
답답할 때도 있지
눈물이 고이기도 해
그렇다고 되돌릴 순 없잖아
산처럼
서서
누워서
천천히 곱씹어야해
목에 넘긴 까칠한 것들
살이 되어 붙도록
힘이 되어 차도록
견뎌내야지
내일은
밀린 논갈이
밭갈이 해야지
벼락같이 뻗어 서야지.
7. 아이들을 키우자
문 : 기회는 부지런한 자에게 오는 것 같아.
답 : 포기하지 않는 자에게 오지. 나는 성격이 소를 닮았잖아. 느리고 태평하고 좋은게 좋은거라고 매사에 낙관적이야. 큰 일도 대수롭지 않게 넘기고 좋은 일이 있어도 크게 기뻐하지도 않고 물에 술탄 듯 술에 물탄 듯 흘러가는 대로 몸을 맡기며 살잖아. 그런데 포기하지 못하는 한 가지가 있었어. 내 몸의 세포가 듣고 기억하고 있는 이야기. “양근아, 너는 아이들을 키워야지.” “네. 아이들 200명은 키워야죠.”
문 : 당신 삶의 뼈대 같은 것이잖아.
답 : 부모를 잃고 고아가 되었을 때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어린 아이였잖아. 그런 나에게 도움을 주신 분들이 없었다면 지금의 내가 어떻게 있겠어? 물질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혼자서 해낸게 아니잖아. 받은 만큼 보답하며 살아야지. 나는 기억하고 있잖아. 아이들을 키우는 일을 해야겠다고 결심했지. 제일 가치있는 일이라는 것을 경험했으니까.
문 : 그룹홈을 시작할 때 도움 주신 분들이 많았잖아?
답 : 살만한 세상이야. 여전히. 고마우신 분들을 적으면 책한권이 넘을 것 같아.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인데도 물심양면 도와주시는 분들이 계셔.
문 : 시설에 같이 자란 동생들도 응원해 주었잖아?
답 : 그것도 동병상련의 마음이지. 형님이 그룹홈을 한다고 하니 정말 기뻐해 주었어. 남기(시설에서 같이 자란 동생)는 자신이 운영하는 택배 카페를 공식홍보 카페로 운영하며 회원들에게 본인도 고아인 것을 고백하고 후원자를 모집해 주었잖아. 한푼 두푼 모아주는 마음이 고마워. 생각하면 할수록 멋진 녀석이야. 동생들이 지켜보고 있으니 더욱 긴장을 놓을 수 없지.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다짐하게 하는 놈들이야.
문 : 대가족을 거느리니 얼마나 행복해? 꿈은 이루어졌네?
답 : 아이들이 다 모인 식탁에서 함께 밥을 먹을때가 제일 행복해. 나 먹는거 좋아하잖아. 맛있는 음식 아이들 입으로 들어가는 모습만 봐도 뿌듯해. 아, 꿈을 이뤘네. 내가.
문 : 아이들이 다 크면 어떻게 할거야? 시집 장가 보내야지?
답 : 집을 지어줄 거야. 뿌리를 내리게 해 주어야지. 진짜 가족이잖아. 마음의 상처가 남지 않게 해 주고 싶어. 아이들 곁을 떠나지 않을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