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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얼숲 Aug 06. 2024

스타벅스 알바생이  잡스보다 뛰어날지 몰라

잡글 07

잡글이다.

그 애는 길어지는 나의 말에 "진국이 또 필리버스터 하네..."라고 카톡에 말한다. 한때는 나도 과묵한 스타일이고 싶었다. 10년도 전에는 적은 말수를 가져 은근한 신비주의가 내게 있길 바란 적도 있다. 지금처럼 PC와 젠더에 덜 감각적이었던 때엔 그게 소위 '남자다운' 건 줄 알았다(이 말을 하면 또 언피시인가?). 물론 통 안 된다. 태생이 하고 싶은 말이 많다. 며칠 전 한 언론사 인적성 검사에 '본인은 논쟁하기를 좋아하는가?'에 '매우 그렇다'를 체크하고야 말았다. 말하자면 긴데... 논쟁이 말싸움은 아니다.


새해면 엄마가 가족의 사주를 보고 온다. 어릴 때는 사주를 믿진 않았다. 굳이 알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인생은 내가 개척하는 건데! 감히 사주 따위가...' 그때부터 지금까지 공통된 나의 사주는 20대의 고생과 40대의 성공이었다. 시간이 흘러버렸다. '왠지 사주라는 녀석을 믿어봐도 좋을 것 같아'라는 생각이 마구 스친다. 고생과 성공이라고 하니, 스티브잡스가 생각난다. 고2 때 아주 푹 빠진 적이 있다. 역경을 딛고 세상을 바꾼 창의적인 혁신가. 멋져 보였다. 나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근데 이제야 알게 된 건 세상을 바꾸긴커녕, 액상과당 가득한 아이스 돌체라떼 하나 먹고픈 충동 하나 제대로 통제가 안 된다는 거다.


윤석열 나이로 아직 서른은 멀었다. 27년 하고 몇 개월. 대부분 뭐가 잘 안 되고, 계획이 틀어지고, 생각보다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혁오의 신곡 가사 마냥 슬픔은 떼로 몰려온다. 그래도 27년 하고 몇 개월 살면서 나름 터득한 방법이 있다. 운동이다. 난 한 번도 그럴싸한 근육을 가져본 적은 없다. 그래도 기분이 좋다. 달리기와 함께 뛰는 심박수가 이상하게 자랑스럽고 깔짝거린 바벨과 덤벨 덕에 한 2초는 거울 볼 맛이 난다. 운동 좀 한다는 친구 놈들이 '윗가슴이 꺼졌잖아', '데드 자세가 그게 뭐야' 등의 핀잔을 하기도 한다. '아... 뭘 그렇게 따져?'라고 생각한다. 사실... 몸을 보면 그 녀석들 말이 다 맞다. 그리고 대부분은 내가 먼저 물어본다. 물론 내가 바라는 걸 이상으로 말해줘서 힘들 뿐이다.


혹시나 누가 이걸 본다면, 그리고 최근의 기분이 우울하다면 해소 방법 하나 추천할까 한다. 드라이브 스루를 가라. 맥도날드보단 스타벅스가 좋다. 기름이 잔뜩 낀 주방을 크록스로 해쳐 다니는 맥도날드 알바생들은 너무 바쁘다. 심신이 안정되는 초록색을 두른 스타벅스 알바생들은 남녀 할 것 없이 친절을 건넨다. 친절은 좀 무섭다. 안 좋던 기분도 좋게 만든다. 좋은 걸 안 좋게 만드는 건 쉬운데, 그 반대는 힘들다. 이 힘든 걸 쉽게 해내는 걸 보면 스타벅스 알바생이 스티브잡스보다 더 뛰어난 혁신가일지도 모른다. 물론, 어떤 반응도 시큰둥한 사람이라면... 자신만의 도파민을 찾길 바란다. 예를 들면 해외 드라마라든지...


과거를 붙잡는 건 쉽다. 미래를 쫓아가는 건 힘들다. 어느 시대를 가든 그전 시대의 영광을 추종한다.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를 보면 알 수 있다. 시대나 개인이나 엇비슷하지 않을까. 나의 반짝였던 과거를 잡는 건 언제나 쉽다. 이런 말을 대학원에 가서 한다면, 안경 낀 신문사 편집장 출신의 한 선생님은 '니네가 반짝인 적이나 있어?'라며 두 눈 크게 뜨고 말할지도 모른다. 정작 본인도 자신의 리즈 시절을 스마트폰 갤러리에 꼭꼭 숨겨 놓으신다. 2차쯤 가면 홀쭉하고 이른바 샤프한(?) 90년대의 자신을 슬그머니 꺼내 보인다. 누구나 반짝이는 과거가 있다. 한번 더 그때와 같은 재현을 만들기 위해 오늘을 풀매수 해본다. 서킷 브레이커가 올 때까지..


아까 그 안경 낀 선생님이 언젠가 "글을 무척이나 쓰고 싶을 때가 있다"라고 한 적이 있다. 오늘 하고 싶은 말이 있었다. 거기엔 힘든 언시에 괜한 투덜거림도 있고, 요즘 보는 책의 좋은 문장을 소개하고 싶기도 했으며 오늘의 운동이 참 좋았다는 것도 있다. 무엇보다 지치더라도 또 한 번 마무리 지어보자는, 나를 포함해 이 글을 끝까지 읽을 사람들에게 한 움큼의 응원을 전하고 싶었다. 필리버스터를 이렇게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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