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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누런콩 Aug 22. 2023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인다는 것

카밀라 팡의 『자신의 존재에 대해 사과하지 말 것』을 읽고

카밀라 팡의 『자신의 존재에 대해 사과하지 말 것』이라는 책을 읽었다. 이 책은 다음 달부터 듣게 될 비평 수업의 교재로 선정된 책이다. 한 번 들었던 수업을 또 듣기로 했다. 수업의 내용도 좋았지만 매주 선생님이 추천해 준 책을 읽는 재미도 쏠쏠했기 때문이다. 요즘엔 웬만하면 책을 빌려서 읽으려 한다. 한 번 읽고 묵혀두기엔 종이가 아깝다는 생각이다. 사실 이 책은 첫 번째 주에 읽을 책으로 선정된 책이 아니다. 꽤 재밌어 보이는 책이 많았음에도 이 책부터 고른 건 ‘자신의 존재에 대해 사과하지 말 것’이라는 제목이 눈길을 끌었기 때문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이 책을 10페이지도 안 읽고 빌려온 도서관에 반납해 버렸다. 대신에 인터넷 서점에서 새것으로 바꿔치기했다.    

  

카밀라 팡은 자폐스펙트럼장애와 ADHD를 가진 과학자다. 그녀에겐 타인의 감정에 공감하는 일이 그 무엇보다 어려운 일이다. 험준한 세상과 낯선 냄새를 풍기는 타인들 속에서 살아남는 일은 그녀에게 녹록지 않다. 카밀라는 실패하고 부딪히며 세상을 살아가는 나름의 방식을 터득한다. 그녀가 제일 잘하고 익숙해하는 과학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다. 그녀는 빛이 굴절하는 원리로 고통이나 두려움과 마주하는 법을 배운다. 단백질을 통해 다양한 인간 군상이 있음을 받아들이며 수에 관한 관념으로 서로의 개성을 인정해야 함과 추구해야 함을 이해한다. 자폐스펙트럼장애나 ADHD를 가지지 않은 이들이 어쩌면 당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세상의 이치도 카밀라에겐 애써서 품을 들여 배워야 하는 일이 된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카밀라는 남들과 다른 그녀만의 독특한 시선으로 인간과 세상을 알아간다.      


출판사는 『자신의 존재에 대해 사과하지 말 것』을 과학책이라고 소개한다. 실제로도 이 책은 과학 분야 도서로 분류되어 있다. 다양한 이론을 설명한다는 측면에서 보면 ‘과학책’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내가 읽은 이 책은 과학자의 에세이에 가까웠다. 에세이를 읽고 나면 그 책을 쓴 작가와 친해진 기분이 든다. 저자와 나는 일면식도 없지만 나 혼자 일방적인 내적 친밀감을 느끼곤 하는데 이 책을 읽고 나서도 그랬다. 카밀라 팡이 내 오래된 친구인 것처럼 느껴졌다. 그래서인지 나와는 조금 다른 내 친구가 쓴 것만 같은 이 책이 더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책에다가 이런 표현을 갖다 붙인다는 건 좀 이상한 일이겠지만 『자신의 존재에 대해 사과하지 말 것』은 사랑스러운 책이다. ‘좌충우돌 밀리 팡의 생존 일기’ 같다. 300페이지가 넘는 책을 이틀 만에 후루룩 다 읽을 수 있었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이기까지 얼마나 많은 품을 들여야 했을까. 남들이 웃는 이유로 웃지 못하고 분노하는 이유로 분노하지 못하는 나에게서 이질감을 느껴야 한다는 건 얼마나 서글픈 일이었을까. 우리는 누구나 고유한 각자만의 개성을 가지고 있지만 때때로 자신이 남들과는 다른 존재임을 드러내고 싶어 하지 않는다. 떠밀리듯 같은 취향과 감정을 가지고 싶어 한다. 특히나 한국 사회에선 더 그렇다. 남들과 조금이라도 다르면 별나다거나 독특하다는 취급을 받는다. “튀지 않게 행동해”라는 말을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나는 그 말이 지독히도 싫었다. 하지만 남들과 다르지 않게 행동해야 한다는 것이 내면화되어서 자꾸만 사과하지 않아도 될 일에 사과한다. ‘튀는 나’에 대해 양해를 구한다. 그래서인지 자신의 존재에 대해 ‘사과하지 말 것’이라고 내세운 이 책의 제목이 유독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인생을 살아가는 데 카밀라 팡의 깨알 같은 팁을 새겨들어도 좋겠다. 가령 “의사 결정을 내릴 때 더 과학적으로 하고 싶다면, 패턴을 감지하고 결론을 끌어내기를 바라기 전에 무질서를 수용(32쪽)”한다든가 “우리에게는 평균에서 벗어나 누구도 하지 않았던 생각을 하고 아무도 가지 않았던 곳을 탐험하는 사람들이 필요하다(170쪽)”는 사실을 받아들이든가 하는 것들 말이다. 밀리 팡이 책을 맺는 마지막 단락이 인상 깊었다. “무슨 일이든 잘 풀리기 전에 한 번은 잘못될 것이다. 상황이 좋아지기 전에 더 나빠질 수도 있다. 괜찮다. 사실 그 과정이 필요하다. 실패하는 실험을 즐기라. 혼자서 해내는 과정을 누리라. 그리고 자신이라는 존재에 대해 사과하지 말 것. 나는 절대로 그런 적이 없고, 지금도 그럴 생각은 없다. (316쪽)”     


재밌게 읽었다. 나는 아주 만족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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