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을 좋아한다. 차가운 공기에 얼굴이 베인 것처럼 얼얼해질 때도 있지만 그 특유의 포근함을 느끼곤 한다. 두툼한 이불에 폭닥한 니트를 떠올리면 겨울은 꼭 추운 계절만은 아닌 것 같다. 나는 이번에 겨울을 날 준비를 했다. 새로운 계절을 맞이할 태세를 갖춘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추운 겨울도 춥지 않게 보내기 위해서
요즘 사무실에선 내 패딩이 화제다. 지난달 파주 아울렛에서 120만 원이라는 큰돈을 들여 하나 장만한 것이 금세 소문나버렸다. 보는 사람마다 “패딩 샀다며?”라고 한 마디씩 던지고 갔다. 처음엔 사람들이 나한테 관심 가져주는 게 좋았지만 어쩐지 돈을 펑펑 쓰는 이미지가 굳혀지는 것 같아서 새 옷 자랑하던 걸 그만두었다. 새로 산 패딩은 뒤집어서 입을 수도 있고 모자를 뗐다가 붙일 수도 있다. 네 가지 버전으로 입을 수 있으니 그렇게 방탕한 소비는 아니었다고 스스로 되뇌었다. 털이 달린 신발도 사고 싶어서 사이트를 들락날락하다가 결국엔 코스트코에 가서 신어보았다. 생각보다 그렇게 예쁘진 않아서 사고 싶다는 마음이 사그라들었다. 근사한 외투를 걸치고 있다고 생각하면 한파도 두렵지 않다. 날씨가 더 추워져서 매일매일 새로 산 옷을 입고 다니고 싶다.
여자 둘이 가구 옮기기
내 방엔 작은 창이 하나 나 있다. 이사 들어올 때 이중창 공사를 해놓았지만 겨울에는 외풍이 들어와 방 한 벽면이 싸늘해진다. 문제는 그 창이 난 벽면에 침대를 붙여놓았다는 것이다. 들어오는 바람은 구스 다운 이불로도 피할 수가 없어서 체온으로 이불속을 덥히기 전까진 몸을 겨울 잔가지처럼 덜덜 떨어야 했다. 한 날은 어찌 된 일인지 누렇게 바랜 벽지가 유난히 눈에 띄었다. 거실 소파에 엎드려 집안에 도배를 새로 싹 했으면 좋겠다고 하다가 결국엔 인터넷 사이트에서 견적을 뽑았다. 가구가 있는 채로 도배를 하면 34평 기준 130만 원이 든다고 했다. 엄마는 날이 따뜻해지면 다시 생각해 보자며 도배를 미뤘다. 나는 아쉬워서 방안을 살펴보다가 책상과 침대의 위치를 바꾸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하면 더러워진 벽지도 조금은 가릴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밤이라 당장에 작업을 시작할 순 없었다. 가구를 옮겨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다음날 나는 아침 9시부터 일어나 소란을 피웠다. 혼자서는 가구를 옮길 수 없겠다는 생각에 엄마를 깨웠다. 엄마는 아침부터 이게 웬 날벼락인가 싶은 표정이었다. 우리는 침대를 한쪽에 밀어 넣고 책장에 있는 책을 침대 위로 다 뺐다. 책장은 그나마 가벼운 편이었는데 책상 위에 올려둔 강화유리가 혼자 들 수 없을 만큼 무거웠다. 엄마와 나는 낑낑대며 그 거대하고 무거운 걸 옮겼다. 책상을 창문이 난 벽으로 붙이고 나서 내가 책을 정리하는 동안 엄마는 좀 쉬겠다고 했다. 책을 하나하나 확인하면서 분류하는 나를 보며 엄마는 혀를 찼다. 내게 나와보라고 하고선 손에 잡히는 대로 책을 꽂아 넣었다. 침대를 옮기는 건 수월했다. 가구 배치를 새로 하고 나니 여유 공간이 조금 줄어들긴 했지만 훨씬 아늑한 느낌이었다. 큰맘 먹고 장만한 구스 다운 이불도 더 이상 차가워지지 않았다. 그렇게 한바탕 하고선 거실에 뻗어 누우니 11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천장에 못을 박고 암막 블라인드를 설치했다. 나사가 헛돌아서 1시간을 넘게 낑낑댔다. 월동 준비를 하면서 인생의 퀘스트 하나를 깬 기분이 들었다. 나는 이제 커튼도 달고 가구도 옮길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이번 겨울엔 좋은 일만 가득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