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호 속 목화를 발견할 수 있다면...

by 때때로

창덕궁 인정전이 2년 만에 개방을 했다. 친한 언니가 알려준 덕분에 함께 가기로 했다.(~3/29까지)

오랜만에 출퇴근 시간에 전철을 탔더니 무척 혼잡했다. 차 시간을 맞추기 위해 밀집한 사람들을 피해 계단으로 올라갔다. 전철에 오르자 갑자기 다리가 후들후들 거린다. 무릎 아래부터 다리가 진동하기 시작하더니, 멈출 수가 없다. 어제 달리기도 했고 산책도 한시간 이상 꾸준히 하고 있는데, 다리 힘이 그렇게 부족할 리가 없다.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그때 이후인가...


2월 초에 정말 만나고 싶었던 작가님의 북토크에 갔다. 하고 싶은 질문이 있었는데 막상 질문하자 너무 긴장해서 모든 것이 엉켜버렸다. 내가 묻고 싶은 질문은 이것이었다.


"작가님은 그렇게 힘든 환경 속에서도, 어떻게 잘 성장할 수 있었나요? 청소년 시기를 어떻게 보내셨나요?"


그러나 실제로 내가 한 질문들은 이상한 단어 선택들로 엉망이 되어버렸다. 그래도 작가는 현명한 대답을 해주었다. 환경은 선택할 수 없지만 내가 무엇을 기억할지는 선택할 수 있다며, 책이 자신보다 낫다고 했다.


북토크를 끝내고 돌아가는 길 내내 나를 자책했다. 왜 질문을 한건지, 왜 두서없이 이야기를 한 건지, 단어 선택은 왜 그렇게 했는지. 그런데 어쩔 수 없었다. 질문한다고 손 들었던 그 순간부터 내 머리는 너무 하얗게 변했고, 심장은 뚫고 나올 것처럼 같았으니까.


이후 떨림 증상은 심해져 일상적인 상황에서도 불쑥 불쑥 나타났다. 익숙한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이야기하다 내 생각을 전달하려고 하면 목소리가 잠기고 떨리고 호흡이 가빠졌다.


그런 증상이 갑자기 다리 떨림으로 나타나는 건가 걱정이 됐다. 전철로 서서 이동하는 내내 다리가 떨려서 무언가를 잡고 기대지 않고는 주저앉을 것 같아 선반대를 꼬옥 붙들었다.

그리고 계속 생각했다.

'이거 아무것도 아니야!'

'자꾸 생각하니까 더 떨리는 것 같아 딴생각하자!'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사이, 창덕궁에 도착했다.

(다행히 걷는 동안에는 다리가 떨리지 않았다. )


인정전(仁政殿)은 ‘어진 정치’를 펼치겠다는 의지가 담긴 장소로 왕의 즉위식을 비롯하여 결혼식, 세자책봉식 그리고 문무백관의 하례식 등 공식적인 국가 행사 때가 열리는 곳이다.

왕의 마음이 되어 정전으로 들어가 본다.

인정전의 내부는 전등과 노란 커튼, 유리창, 나무 바닥 등 서양 문물의 영향을 받았다.

잠시 왕이 앉았을 용상을 보며, 왕의 시선으로 바깥을 바라보았다. 많은 신하들과 백성, 해결해야 할 산적한 문제들과 왕위에 대한 위협들이 느껴졌다.

태평성대를 바라는 마음에 봉황을 천장 곳곳에 두었지만, 무너지는 나라를 보며 얼마나 힘들었을까.

왕좌의 무게를 어떻게 견뎠을까...

나는 사소한 일에도 속절없이 흔들리는데 말이다.

인정전 곳곳을 바라보다, 창호에 눈길이 갔다.

정전 안에서만 볼 수 있는 그 무늬는 따스한 빛을 통과시켜 목화 같다.

왕이 잠시 한 눈을 팔고 목화의 따스함과 아름다움을 느꼈으면 좋겠다는 엉뚱한 생각이 든다.



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