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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예선 썬 May 11. 2022

낯설게 ‘되기’, 최승희

이진아, 『네이션과 무용 -최승희의 민족 표상과 젠더 수행』 읽기(1)

낯선 동네, 익숙한 나의 몸

몇 주 전 일터와 가까운 자그마한 방으로 독립을 했다. 태어나서부터 얼마 전까지 한 집에서 가족들과 살다 독립했으니 지금도 설레는 마음이 크다. ‘본가’ 내 방에 있던 것들을 대부분 가져 왔는데, 새로운 공간에 놓인 아트포스터며 책장에 진열된 책, 행거에 걸린 옷까지 모든 것이 새롭게 보인다. 익숙한 것들도 낯설게 바라보면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기 마련이다. 

그러던 어느 날. 낯설게 되는 것, 낯섦 속에 놓이는 것이 얼마나 서럽고도 불편한 일인지 느꼈다. 갑자기 몸이 안 좋아져 조퇴를 하고 빨리 병원에 가야 했다. 어릴 때부터 잔병치레가 잦았던 지라 본가 근처에는 꼬마 때부터 다닌 병원이 많다. 하지만 새로 살게 된 동네에는 병원이 어디 있는지, 어느 병원이 좋은지 알 수가 없어 아픈 몸으로 터덜터덜 걸어 겨우 병원에 도착했다.

‘골골백년’이랬나, 어지간히 아파봤기에 아픈 나의 몸은 익숙했고 증상으로 진단을 충분히 추측할 수 있다. 낯선 동네의 병원에서 익숙한 것은 내 몸 하나였다. 처음 만난 의사에게 증상을 하나하나 설명하려는데 그는 내 말을 끊고 간단히 진단했다. 내 증상과 지병-‘반려병’-을 더 말했지만 관련 병원에 가서 검사를 해보라는 답만 들었다. ‘아니, 필요한 검사도 해봤고 이미 약도 먹고 있는데 평소와 증상이 다르니 의사에게 말한 건데 왜 이렇게 내 말을 안 들어주지?’

불만을 표할 힘도 없어 낯선 병원, 낯선 약국에서 나와 아직은 낯선 나의 집으로 향했다. 옷도 갈아입지 못한 채 겨우 이불을 덮고 누워 생각했다. ‘의사 입장에서도 나는 낯선 환자였겠구나. 월요일 오후 3시에 자신의 병원에 처음 내원한 환자. 내 병력을 전혀 모르니 증상을 묻고 그에 응당한 처방을 1차적으로 할 수밖에 없었겠구나……’. 

그러다 책상에 놓인 책이 눈에 들어왔다. 이진아 교수가 쓴 『네이션과 무용 -최승희의 민족 표상과 젠더 수행』. 보랏빛 표지 속 보디 슈트를 입고 뛰어오르는 최승희의 실루엣이 힘차 보인다. 독립한 지 고작 몇 주 만에 이렇게 설움을 느끼는데 생애 내내 여러 곳을 다녔던 최승희는 어땠을까.   



비운의 무희 대 월경(越境)의 아이콘 

최승희가 누구인가. 한국 무용계의 전설인 동시에 『친일인명사전』에도 이름이 올라가 있는 그. 유튜브에 ‘최승희’를 검색하면 통일부에서 올린 영상 <남북을 잇는 전설의 무희, 최승희>를 볼 수 있다. 영상은 최승희를 ‘우리 역사상 가장 암울했던 시대(중략) 전 세계를 오가며 코리아의 이름을 드높인 전설의 무희’라고 소개한다. 일제강점기 당시 조선과 일본, 전 세계에서의 활동 그리고 해방 후 월북하여 이어간 활동을 소개하며 지금은 ‘남에서도 북에서도 어느 곳에서도 찾을 수 없는 비운의 무희’라고 한다. 그의 월북에 대해서도 문학평론가인 남편 안막을 따라 간 것이라 설명한다. 반면 이진아는 다분히 민족적인 관점에서 최승희를 설명하는 기존 서술의 문제점을 지적한다.    


대체적으로 기존의 최승희 연구에서는 조선무용을 매개체로 하여 최승희가 재현했던 민족/젠더를 둘러싼 기표와 정체성에 대해 자명하고 본질화된 것으로서 전제하고 있는 편이다. 이러한 논리 구조 안에서는 친일/월북 같은 그녀의 행적이 완전하게 부정되어야 할 대상이 되거나 아니면 ‘시대를 잘못 타고난 비운의 무희’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바로 이 부분이 최승희가 월경의 아이콘 혹은 주체 구성의 메커니즘을 통해 다시 논의되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이다1). 


『네이션과 무용 -최승희의 민족 표상과 젠더 수행』은 1930년대부터 60년대까지 최승희의 무용에 대해 자기민족지의 관점에서 접근하여 민족/젠더 수행성을 통해 고찰하고자 처음 시도하는 연구서다. 최승희라는 인물에게 오랫동안 투영된 민족주의 관점과 거리를 두고 조선에서 일본으로, 미국으로, 중국으로, 해방된 조선에서 북으로 월경한 여성 예술인을 깊이 있게 파고든다.    



미끄러지는 민족, ‘네이션’

짧지 않은 시간에 최승희가 월경한 것/곳은 무엇일까. 일제강점기 식민지 조국이 아닌 ‘내지’ 일본에서 활동하고 전선 위문공연을 다닌 무용가. 일본 무희로 세계 순유를 다니면서도 국적을 나타내는 민족명에 ‘Japanese’가 아닌 ‘Korean’이라고 적은 무용가. 평생 민족적인 무용, 즉 ‘조선무용’을 탐구하고 추고 가르치고자 한 무용가.

이진아의 최승희 연구를 따라갈수록 질문도 따라온다. 국가란 무엇이며 민족이란 무엇인가. 한반도라는 땅의 역사만 거슬러 올라가보아도 수 개의 국가가 나타나고 사라졌다. 하지만 우리는 이 모든 시간을 관통하며 한민족으로서의 ‘통일감’을 느낀다. 아니, 그렇게 느끼도록 배운 것 같다. 민족은 근대에 정립된 개념이다. ‘일정한 지역에서 오랜 세월 동안 공동생활을 하면서 언어와 문화상의 공통성에 기초하여 역사적으로 형성된 사회 집단’2)인 민족은 그 자체로 절대적이지 않고 상대적인 관계 속에서 성립되는 개념이다. 이진아는 고정 값이 아닌 상대적인 개념으로서 민족과 국가, ‘네이션(nation)’을 말한다.    


네이션이라는 대상 자체는 선험적이거나 고정된 것이기보다 유동적이고 역사적인 구성체로서 존재해 왔던 것이다. 나아가 이는 다양한 문화 장치를 통해 상상되고 재현되면서 일상적인 차원에서 개인의 정체성 형성까지 중요한 영향을 주었다고 할 수 있다.3)    


최승희 역시 네이션을 월경하며 상대적인 위치에 서서 존재하고 평가받았다. 그 속에서 식민지의 무용수로서, 일본, 동양의 무용수로서의 모습을 요구받기도 했다. 동시에 어떠한 여성의 모습을 보여주길 바라는지 사회의 요구도 그의 무용도 달라졌다. 이진아의 연구를 계속 따라가며 최승희의 민족 표상과 젠더 수행을 살펴보기로 한다.



1)이진아, 『네이션과 무용 -최승희의 민족 표상과 젠더 수행』, 16쪽.

2)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3)이진아, 『네이션과 무용 -최승희의 민족 표상과 젠더 수행』, 155쪽.


* 이 글은 『함께가는 예술인』 125호에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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