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에 관한 짧은 이야기

거기선 아무개가 되어 취해야 한다

by strangecowcow

여름엔 해변이 그립듯, 겨울엔 재즈 바가 그립다. 해가 짧아지면 어둑한 초저녁과 꼭 같은 배경색을 깔아 둔 재즈 바에 가자. 음악 덕분에 구태여 말을 내뱉을 필요가 없는 재즈 바에서 시간을 흘려보내자. 밤이 길다는 사실에 안도하며. 재즈 바에선 아무개가 되어 취해야 한다.


그때도 재즈 바에 갔었다. 좋아하는 애는 털이 북슬북슬한 외투를 아무개들의 외투 옆에 나란히 걸어뒀다. 나는 양이 적고 비싼 술에 베팅을 했다. 음악을 들으며 냅킨 위에 모나미 볼펜으로 필담을 나눴다. 재즈 하는 사람들 중에서 고수를 골라내는 방법이 뭔 줄 아니. 얼굴이 앳될수록 고수란다. 왜. 이유는 몰라.


이유를 몰라도 어떤 것들은 그냥 진실이다. 말이 안 되는 이 말을 이해하게 된 시간을 떠올리게 하는 계절은 매년 찾아온다. 시간은 조금씩 달라지지만, 오는 것만큼은 틀림없다.


그러면 나는 재즈 바에 가 아무개가 된다. 누군가 필담을 나누는 사각사각 소리가 들리진 않는지 귀를 기울인다.

재즈바 2.jpg



-일러스트레이티드 에세이 <때려치지 않는 사소한 이유>는 매주 월, 수, 금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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