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내일 조져질 걸 알면서도 맥주를 먹는 내가 좋아
어울리지도 않는 장발을 고수한다. 여름엔 안 어울리는 하와이안 셔츠를 사 입고 겨울엔 더 안 어울리는 화려한 스카프를 두른다. 시끄러운 건 딱 질색이지만 노래방에 가면 로큰롤 스피릿을 몸에 받아들이고, 매운 걸 먹으면 앓아눕지만 정기적으로 떡볶이를 시켜 먹는다.
그리고 맥주. 한 잔만 마셔도 얼굴이 싯뻘개지는 주제에 틈만 나면 맥주를 사 마신다. 야근하고 돌아오는 길에 한 잔, 새벽에 코인세탁소에 빨래 돌려놓고서 한 잔, 주말에 밀린 넷플릭스를 보면서 또 한 잔. 어울리지 않는 줄 알면서도 저질러버리는 재미를 참는 게, 내겐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퇴근 후 호프집에 종종 같이 가는 동료와 나눈 대화. “우린 자극에 절여졌어. 충동적으로 뭔가를 하면 도파민이 나오잖아. 하지만 그 도파민 덕분에 삶이 여전히 삶인 거지. 난 내일 아침에 조져질 걸 알면서도 맥주를 먹는 내가 좋아.” 그러면 나는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뭐 그런 거죠?”라고 답할까 하다가 아무래도 내게 어울리는 말은 아닌 것 같아서 관둔다. 대신에 하는 말은 역시나 “출근하기 개 싫네요.” 그리곤 다음 날에 출근을 한다.
소소한 일탈을 즐기지만, 그로 인해 일상이 망가지지 않도록 조심하는 삶. 적당히 충동의 노예이면서 또 어느 정도는 삶의 주인이기도 한 노동자. 밤 산책을 나간다. 차도와 인도를 가르는 실선을 따라 걷는 놀이를 한다. 밤이 깊었는데도 길 건너 호프집은 떠들썩하다.
-일러스트레이티드 에세이 <때려치지 않는 사소한 이유>는 매주 월, 수, 금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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