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단팥 Mar 14. 2022

페페

4. 냄새


“너하고 싶은 대로 해라.”     


그러나 성규는 수윤과 결혼을 한 뒤 수영을 하지 않았다. 그는 이제 수영은 재미없으니 헬스장을 다니겠다고, 수윤에게다녀보자 권유했지만, 수윤은 크게 실망했다. 함께 수영할 수 있는 남자여서 선택했는데. 그렇지 않다면 성규와 함께 살 이유가 그녀에겐 없었다. 하지만 이제 와 아빠에게 돌아갈 수도 없었다. 다시 돌아가면 아빠는 세상의 모든 물을 다 마셔버리고 죽어버릴 수도 있으니까. 수윤이 자궁 적출 수술 이후에 먹는 약을 보고 수윤의 수술 사실을 알게 된 아빠는 집에 있는 물이란 물을 다 마셔버렸다.


정수기에서 더 거르지 못하는 물이 느리게 나오기 시작하고 이젠 그 물조차 마시지도 못할 지경에 이르자, 아빠는 누워서 그동안 마셨던 물을 바닥에 다 토해버렸다. 아빠가 토해내는 물은 마치, 그동안 참고 있던 눈물 같았다. 엄마가 죽은 뒤로 흘리지 못했던 눈물, 자신이 수영선수가 되지 못해 아쉬웠던 눈물, 자궁을 들어낸 딸이 아까워서 흘리는 눈물. 수윤은 그날 아빠를 용서하기로 마음먹었고 그동안 자신이 가지고 있던 아빠에 대한 원망을 아빠가 토해버린 물 위에 다 뱉어버렸다.


성규는 그리고 표면적으로는 아빠에게 꽤 정다운 사위기도 했다. 저녁 느지막이 아빠의 집에 들러 술을 마시고 온다던가, 수윤은 먹지 않는 삼겹살을 사서 들고 가 아빠와 함께 먹기도 했다. 아빠는 그렇다고 딱히 성규를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았다. 둘이 앉아서 하는 대화는 초점도 맥락도 없었다. 밥상 앞에 티브이를 틀어놓고 아무렇게나 나오는 화면을 보며 대화를 나눴다.


정치인들 연예인들. 음주운전 사고와 절도에 대한 어지러운 화면들을 쳐다보며 두 사람은 밥풀을 튀기고 기름을 튀기며 말을 했다. 싹 다 그냥 죽여버려야 해. 네 그럼요. 물에 다 처넣어버리면 되는데요. 선과 악의 극명한 이분법을 활용하여 두 사람은 세상을 반으로 나눴다. 남자와 여자, 산과 바다, 나쁜 놈과 죽일 년. 티브이 안에 존재하는 생물들은 모두 그랬다. 나쁘거나 나쁘지 않거나. 죽여도 되거나 그냥 두거나.


두 사람이 밥을 먹을 때면 수윤은 결혼 전 살던 방으로 들어가 차를 마셨다. 비릿한 육 고기의 냄새가 빠져나가도록 창문을 열어놓고서. 수윤이 사용하던 책상 서랍에는 각가지의 차가 있었다. 히비스커스, 레몬 라임, 애플 시나몬, 블루베리 등 색이 예쁜 차와 허브 티백이 가득했다. 아빠와 함께 살던 집으로 돌아와 서랍을 열어볼 때의 기분은 언제나 좋았다. 은근히 풍겨오는 퀴퀴한 종이와 나무 냄새에 새큼한 과일 향이 묻어나는 향기였다.


책상 아래편에는 창문과 맞닿은 부분에 옅은 곰팡이가 끼어있었는데, 수윤은 손가락으로 그걸 쓱 닦아내어 코에 갖다 대며 냄새를 맡기도 했다. 습기가 만들어 내는 향기. 남들은 곰팡이를 질색했지만, 그녀는 아니었다. 축축한 것이 묻어나는 냄새는 언제나 좋았다. 마치 물에 빠진 엄마를 기억하는 것처럼.


두 남자가 고기를 다 먹고 나면 언제나 뒤처리는 아빠의 몫이었다. 설거지를 좋아하는 수윤도 고기 기름이 묻어나는 미끄덩한 설거지는 마다했다. 물과 섞이지 않는 기름의 촉감은 징그러웠다. 낮은 온도에서 하얗게 고체로 변해버리는 그 변덕스러운 질감도.


두 사람은 집으로 돌아왔고 성규는 대충 이를 닦고 자리에 누웠다. 성규가 내뿜는 숨에서 고기의 냄새와 마늘과 고추 향이 났다. 수윤은 늘 성규가 시끄럽게 코를 고는 순간이 오면 미끄러지듯 침대에서 빠져나와 욕조에 몸을 누이고 잠을 잤다. 욕실에선 습기에 녹은 사람의 체취와 변기의 지린내, 하수구 냄새가 났지만  남편이 가진 온몸의 구멍이 내뿜어대는 고기가 위장에서 썩는듯한 냄새보단 나았다.      

매거진의 이전글 페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