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단팥 Apr 26. 2022

페페

9. 욕


아빠와 성규는 벌써 고기를 구워 먹고 있었다. 수윤은 둘 사이에 피어오르는 연기를 보고는 이마를 조금 찌푸렸다. 고기를 먹지 않는 수윤을 굳이 불러야 할 이유는 단 하나, 조금이라도 물을 덜 묻히게 하기 위해서였다. 그녀는 두 남자를 쳐다보고는 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따스한 차를 우려 천천히 마시기 시작했다. 아빠와 성규가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렸다. 대통령과 정치인들과 연예인의 이야기였다. 고기를 굽는 불판에서 나는 연기와 두 사람의 입에서 쏟아져 나오는 말들이 한데 뒤엉켜, 열어놓은 창문 밖으로 흘러나갔다. 수윤은 그들의 자욱한 연기보다 차라리 자기 방 안에 피어 벽지에 새겨진 곰팡이의 무늬가 낫다고 생각했다.


“나처럼 좋은 사위가 또 어디 있느냐. 너는 복 받은 줄 알아.”     

“응.”     


아빠의 집에서 돌아오는 길에 성규가 고기로 가득 채운 배를 한껏 더 부풀리며 말했다. 그 모습은 작은 개구리를 스무 마리쯤 잡아먹은 두꺼비 같이 보였다.


“응 이라니, 수윤아, 응 이라니. 맞아,라고 해야지.”     


성규가 수윤의 대꾸를 지적했다.      


“응 이지 어떻게 맞아야. 당신은 내가 당신 말에 동의하는 걸 원하나 본데. 전혀 아니야. 우리 집에 가서 고기 먹고 설거지 한번 해봤어? 아빠가 구워주는 고기 그냥 집어 먹기만 하잖아. 설거지도 아빠가 하시지.  다 먹으면 나하고 집에 돌아와 으스대기만 하고.  자궁 없는 딸이 미안해서 너한테 잘하는 우리 아빠가 불쌍하지 네가 어떻게 좋은 사위야?"


수윤은 아주 또박또박한 발음으로 이야기했다. 마치 물속에서 4비트의 정확한 발차기를 하며 자유형으로 전진하듯. 감정의 높낮이라고는 하나도 느낄 수 없을 만큼 일정하고 차분한 톤의 목소리도 함께. 그동안 자신이 다 쌓아놓았던 감정을 쏟아내 성규에게 말했다. 50미터 풀을 열 바퀴 정도 돌았을 때의 시원함과 상쾌함이 밀려왔다. 하지만 그 감정은 분노나 화가 아니었다. 그저 평소의 남편을 보고 느껴왔던 것들의 표현일 뿐이었다. 사람들이 높게 치는 파도를 보고 ‘파도가 성을 냈다.’라는 표현을 쓰지만, 정작 파도는 자신이 가진 작은 능력을 하나 보여주는 것처럼.

수윤도 그동안 하라면 할 수 있을 만큼 많은 이야기를 성규에게 할 수 있었다. 그러나 하지 않은 것뿐이었다. 그런다고 무엇이 달라지는가? 언제나 달라지지 않는 자신과 성규에 대한 그 거리, 사이에 관한 물음표만 남을 뿐이었다. 그래서 수윤은 침묵을 택했다. 그런데 물속으로 가라앉았던 침묵이 갑자기 오늘 수면 위로 떠 올랐다. 이유는 수윤 자신도 알 수 없었다. 굳이 꼽으라면 그날따라 건조했던 바람 탓이라고 해두자.


성규가 브레이크를 거칠게 밟고 차를 세웠다. 그리고 주먹을 꽉 쥐고 아주 느리게, 그리고 온 힘을 다해 수윤의 배를 향해 파고들었다. 그 모습은 너무나 느리고도 정확했다. 수윤은 성규가 가진 그 폭력의 모양에 맞게 입을 아주 천천히, 오래도록, 크게 벌리고 소리를 지르지 않았다. 만일 소리를 지른다면, 차 안에서 큰 소리로 성규에게 비명을 지르게 된다면 그 소리는 아마도 항복의 의미가 될 것만 같았다. 그러긴 싫었다. 죽어도 싫었다. 개새끼. 여기가 물이었으면 넌 숨도 못 쉬고 죽었어. 개새끼야. 수윤은 마음속으로 그렇게 욕을 했다. 속으로 삼키는 욕은 아주 커다래 삼키기가 힘들었다. 그래도 수윤은 목구멍이 막혀 죽을 것 같은 느낌을 즐겼다. 지금 자신이 물속에 있는 그것으로 생각했다.


수윤은 그 욕을 성규의 눈을 보며 해주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단어와 언어와 분노와 아픔과 저주를 담아 아주 천천히, 잊지 못할 욕을 눈빛에 담아 보여주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페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