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윤은 사랑이란 감정의 모양이 조금 세모난 것이라면 한 귀퉁이는 성규가 차지해도 좋을 그것으로 생각했다. 나머지 한쪽은 아빠, 그리고 나머지 한쪽은 물에 내어주면 되니까. 하지만 수윤의 착각은 거기에서부터 시작된 것이었다. 자신의 심장에 정작 자신을 위한 자리를 없앤 그 순간부터. 성규에게 너무 쉽게 한 귀퉁이를 내어주었고 아빠의 자리도 너무 깊이 박혀있었다. 물에 내어준 자리에 수윤 자신이 있었을까? 그것도 수윤은 알 수가 없었다. 언제부터 자신이 물을 좋아했는지도 기억하지 못했으니까. 아빠가 자신을 데리고 갔던 그 수영장에서였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 엄마의 뱃속이었는지, 3월의 봄 연못에서 서희와의 추억 때문이었는지 수윤은 잘 구분하지 못했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그 모든 그것 중에 자신이 분명하게 기억하는 것 하나는, 물은 자신을 내치는 법이 없었다는 것이다. 언제나 자신이 한발 들어가는 만큼 물은 자신에게 들어와 채워졌다. 사람에게서 느끼는 관계의 피로함, 아빠와의 관계에서 느끼는 연민, 아픔, 공포, 수치심 같은 감정들이 물에는 녹아있지 않았다. 성규와의 관계에서 느끼는 사랑도 그랬다. 물은 차가울 땐 차가웠으며 뜨거울 땐 뜨거웠다. 바깥의 온도에 따라 서서히 데워지고 서서히 식는 것도 물이 가진 진실된 특성이었다.
성규는 불처럼 뜨겁게 다가왔고 자신의 의지와 목적대로 수윤을 대했고 수윤이 자신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자 멀찌감치 떨어져 자신의 선택을 후회했다. 수윤에게 실망했고 수윤에게 욕을 해댔다. 수윤은 그런 성규가 너무나 급작스럽고 당황스러웠다. 자신이 언제 성규에게 사랑을 바란 적이 있었던가? 자신이 언제 성규에게 남들과 같은 인생을 함께 꿈꾸자 한 적이 있었던가? 사랑이란 모양의 한 귀퉁이를 내어 준 결과가 다시 뾰족한 상처가 되어 돌아왔을 때 수윤은 물에서 허우적거리던 수영선수 시절을 생각했다. 아이였고, 할 줄 아는 것이 별로 없던 그 시절과 지금의 상황은 묘하게 닮아있었다. 나이를 먹어 성인이 되었지만, 자신을 냉대하는 남자에게 자신이 돌려줄 수 있는 것은 역시 없었다.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자신이 했던 선택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이었다.
성규와 결혼하기로 마음먹었던 것, 그와 욕조 속 핑크빛 인생은 아니었어도 나름 성실하고 착한 남자라고 자신이 착각했던 순진한 자신을 탓했다. 할 수만 있다면 물속으로 들어가 영원히 나오지 않고 싶었다. 그러나 자신을 수치심에 데려다준 아빠 때문에 그럴 수가 없었다. 살아오는 내내 아빠를 원망하고 미워했지만, 또 사랑할 수밖에 없었다.
아빠를 향한 마음은 늘 알 수 없었다. 내가 좀 더 수월한 딸이었다면, 여자였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수윤은 몇 번 정도 자신을 원망하기도 했다. 도서관이나 수영장에서 보이는 다른 여자들처럼. 예쁜 옷을 차려입고 향기가 좋은 보디로션을 바르고서. 아니면 매일 저녁 따스한 국을 끓여 남편에게 대접하거나 혹시 그와의 관계가 좋지 않다고 하더라도 넓은 마음으로 먼저 이해하고 다가가는. 내가 만일 좋은 글귀의 수필에서 본 것처럼 평범하게 살아가고 자기 자신을 채찍질하며 마음을 다잡아 살아가는 그런 사람이라면 산다는 것이 수월하게 느껴졌을까.
세월이 그 상처를 희미하게 만들어 자신의 아픔과 수치심에서 조금은 벗어났다고 안도할 때 즈음, 서희의 갑작스러운 죽음이 찾아왔고 모든 것을 포기하고 물에 담긴 돌덩이가 되어 가라앉고 싶다고 생각할 때, 성규가 자신을 물에서 건져냈다. 조금은 고맙기도 해서 수윤은 성규가 만들어 놓은 어항 같은 인생에서 금붕어가 되어 살아보리라는 다짐을 했었지만, 쉽지 않은 일이었다. 수윤도 몰랐다. 자신이 누구에게도 가둬지지 않을 물고기라는 것을.
그래서 수윤은 점점 더 물과 만나는 시간을 늘려갔다. 누구의 목소리도 들리지 않을 수영장과 욕실이 가장 편했다. 물이라는 세계에 갇혀 사는 자신의 모습을 사람들은 답답해했다. 목욕시간이 두 시간은 기본이고 수영도 하루에 두 번씩 네 시간을 한다는 것을 누구도 이해하지 못했다. 물 때문에 생긴 손가락의 지독한 습진과 온몸의 건조증과 탈모. 물과 닿는 순간을 선택한 자신이 겪어야 하는 것들은 종종 가혹한 것들이었다. 아빠는 그런 수윤에게 늘 말했다.
“그냥 사는 거지, 물속에 뭘 그렇게 몸을 담그고 빠져나오질 못하냐 너는. 참으로 답답하다.”
문득 떠오르는 아빠의 말을 상기하며 자신의 손가락을 내려다보는 수윤에게, 도서관에 자주 오는 열람 객 한 명이 질겁하며 말을 꺼냈다.
“손가락에 물집 잡힌 게 특이하네요. 어디 아파요? 무슨 병이 있나…. 앞으로 이 열람실에선 책 빌리고 싶지가 않네. 그쪽이 만졌던 책 만지면 내 손도 저렇게 될 거 같아요. 병이 있으면 이런 데서 일하지를 말아야지.”
그러나 수윤은 굴하지 않고 그녀가 말했던 것과 같은 형태를 지닌 문장으로 같은 어투를 이용해 최대한 비슷한 말투를 사용해 대답했다.
“아줌마도 배 나왔잖아요.”
“뭐라고? 이년이 뭐래 지금?”
“아줌마도 배 나왔는데 밖에 돌아다니고 다 하잖아요. 내 손가락이 어때서 지적해요?”
“야 이년아 너 뭐라고 그랬니, 어디서 지금, 이게!”
여자는 소리를 지르고 책을 다 던지는 난동을 삼십 분간 피우다가 출동한 경찰들이 끌어내서야 밖으로 나갔다. 밖에 나가서도 여자는 분에 풀리지 않는지 도서관 앞에 주저앉아 한 시간쯤 통곡하다가 목소리도 안 나오고 춥기도 하고, 더 남들이 봐주지도 않자 주섬주섬 자신의 짐을 챙겨 일어나 집으로 갔다. 관장이 수윤을 불러 혼을 냈고 경위서를 쓰게 했지만, 수윤은 도통 자신이 뭘 잘못했는지를 몰라 난감했다. 자신의 손가락에 모욕감을 주었던 그 여자에게 자신도 보이는 대로 똑같이 말해주었을 뿐인데.
“잘했네. 나였으면 머리부터 잡아버렸을 텐데 넌 참 침착하다 야.”
은정 언니가 며칠 뒤 도서관으로 와 함께 이온 음료를 들이켜며 배가 아프도록 웃었다.
“웃지 마. 나는 엄청 심각했는데. 그 여자 막 소리 지르는데 머리가 다 아프더라고. 아무 소리도 안 나는 물속으로 들어가고 싶었어.”
수윤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렇지, 다 시끄러운 소리만 들릴 땐 나도 그래. 퐁당! 입수!”
수윤은 그래도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이 한 명은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수윤에게 누군가를 이해하는 삶은 어려웠다. 타인에게 이해를 구하는 것도, 자신의 마음에 대한 이해를 바라는 것도. 그럴 때면 수윤은 물속으로 들어갔다. 포근히 안아주는 마음을 바랄 때. 어디에도 던지지 못하는 자신의 마음을 내 던지고 싶을 때. 만일 아빠가 자신을 산으로 데리고 갔다면, 서희가 연못이 아닌 운동장으로 끌고 가 끝없는 달리기를 원했다면 물이 아닌 건조한 바람을 좋아했을까? 누군가의 취향이라는 것이, 사람에게 강렬한 메시지를 주는 무언가가 타인이 이끄는 방향과 경험을 통한 것이라면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늘 사랑하면서도 미웠던 아빠가 자신에게 그 경험을 물이라는 것을 통해 준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을까. 그래도 물을 만나 수치심의 오랜 상처가 남아있는 걸 보면 그것도 좋은 것이라고 장담할 순 없었다. 어쩌면 삶은 그렇게 잔인하게도 두 가지의 모습을 수윤에게 늘 남겨주는 것인지도 몰랐다. 사랑의 얼굴은 돌아보면 미움의 얼굴을 하고 있었고 아빠의 얼굴을 달리 보면 상처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아니, 수윤을 둘러싼 주변 모든 것이 그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