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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팥 Apr 08. 2022

페페

7.사랑의 모양


“오늘 아버님 댁에 갈 건데 당신도 수영 가지 말고 바로 와.”     


성규의 메시지였다. 수영장에 가지 말라고? 아빠를 핑계로 자신을 괴롭히려는 수작인 것 같아서 수윤은 화가 났다. 그렇지만 대충 원하는 대로 해주리라 마음을 먹었다. 퇴근 후 수윤은 수영장에 들러 3시간 수영을 하는 대신 한 시간만 하고 아빠 집으로 향했다. 수윤에겐 엄청난 희생이었다.


수윤은 가끔 성규와 수영을 하던 때를 생각했다. 서희가 떠난 자리를 성규가 조금 차지한 것은 슬펐지만, 더 버틸 힘이 없다고 생각했던 자신의 마음을 일정 부분 성규에게 주고 말았다. 성규와 함께 다니던 수영장은 양쪽 천장에서 벽으로 이어지는 부분이 유리로 되어있어 수영하면서도 바깥의 풍경을 볼 수가 있었다. 서희를 만났던 3월, 날카로운 바람이 옆구리나 목덜미에 달라 와 붙었고 성규가 새로운 회원으로 수영장에 들어왔으며 수윤과 만남이 시작되었다.


성규는 무엇이든 열정을 다하는 성격이었다. 그는 매년 새로운 계획을 세워 한 가지를 완성하는 취미를 가지고 있었는데, 수윤을 만났던 그해의 계획이 바로 수영이었다. 원래 성규는 물을 지독히도 싫어했던지라 씻는 것도 제대로 하지 않았었는데 수영을 배우기로 한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단합 대회 겸 갔던 펜션에서, 수영하지 못했던 성규는 키도 크고 잘생긴 동기가 수영까지 잘해 부러움을 한몸에 받자 자신도 이걸 해내야겠다고 다짐했다. 


165미터쯤의 작은 키에 술을 많이 먹어 볼록하게 나온 윗배. 자신이 다른 남자들보다 외모적으로 나아 보이지 않으니 운동을 비롯한 능력 면에서 다른 이들보다 더 잘나야 한다고 자신을 끊임없이 채찍질해 온 터였다. 대학 졸업 후 고시학원에 다니며 부지런히 또 열심히 공부해 9급 공무원의 타이틀까지 거머쥐고 나름 1등 신랑감의 면모까지 갖추었으니 수영까지 잘해야 한다고 다짐했다. 남들이 하는 것은 다 하고 싶었다. 누군가 제주도에 놀러 다녀와 사진을 보여주거나 SNS 프로필에 올리면 자신도 여행을 갈 계획을 세웠다. 하다못해 아내인 수윤을 데리고 경기도 인근에라도 나가서 멋진 카페에 가서 사진이라도 찍어 자신의 프로필을 장식했다. 다른 이들이 말하는 관심사는 두 귀를 쫑긋 세우고 귀에 담아 들었다가 화장실에 가서 볼일을 보는 시간이면 검색해서 그것을 알아보았다.


누구에게도 지기는 싫었다. 자신은 원래 태어날 때부터 지면서 태어났으니까. 별 볼 일 없는 문구점 아들로 태어나 필통 안에 아이들이 부러워하는 온갖 샤프와 형광펜을 담아 다녔지만, 현실은 그렇게 다채롭지 못했다. 하교 시간이 끝나는 무렵이면 아버지는 늘 소주를 마시기 시작했고 어머니는 동네 아줌마들과 함께 춤을 추러 다녔다. 그러다 술에 절어 간이 만신창이가 된 아버지에게 간 경화가 찾아왔고 어머니는 집을 나가버렸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아버지는 자신의 치료를 거부했다. 문구점 한 귀퉁이에서 여전히 지우개와 도화지를 팔며, 간간이 술을 마시며 아버지는 그렇게 서서히 죽어갔다. 오히려 치료를 받지 않은 것은 성규에겐 다행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나마 남아있는 방 한 개 딸린 문구점이 아버지가 죽은 이후 성규에게 남겨졌으니까.

아버지는 삶에 대한 의지가 별로 없는 사람이었다. 문구점을 대충 운영하며 번 돈으로 술이나 라면 등을 사다가 먹었고 가끔 성규에게 아주 적은 용돈을 줄 뿐이었다. 성규는 혼자서 학비를 벌어 1년을 다니고 1년을 휴학하며 3학년까지 겨우 버티다가, 이렇게 노력해서 살아 대학을 졸업해도 별다른 희망이 없을 거라는 빠른 판단을 해버린 뒤엔 악착같이 6개월을 밤새워 공부했다. 6개월이 지나면 배달 아르바이트를 하며 벌어놓은 돈도 다 써버릴 것이다. 중학교 때 가지고 다니던 형광펜의 노란 빛이 자신의 눈깔에도 보일 만큼 공부했다. 그리고는 합격했다.


그렇게 자신의 인생의 큰 결실이 생기고 나니까 세상이 조금 쉬워 보였다. 아, 해서 안 되는 것은 없는 거구나. 작은 몸집의, 가진 것 없는 자신도 이룰 수 있는 것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이 신기했다. 참으로 적절한 순간에 아버지는 세상을 떠났다. 문구점 방 한구석에서 아버지의 유품을 정리하며 성규는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울음 하나를 토해냈다. 이젠 정말 모든 것이 정리된 듯했다. 문구점을 정리해 직장인 자치센터 주변에 작은 아파트와 경차를 한 대 장만한 성규는 근처 수영장 대신 30분 정도 차로 이동 해야만 갈 수 있는 신도시의 수영장을 등록했다. 자신의 집은 초라할지라도, 자신이 가는 곳, 남들과 섞이는 곳은 좀 더 번드르르한 곳이어야만 했다.


6개월 정도 수영을 익히고 그 또한 특유의 열정으로 진급까지 마친 그는 가장 높은 반에서 수영 중인 수윤을 점찍었다. 살갗이 하얗고 보드라워 보이는, 무엇보다 키가 큰 여자였다. 그녀는 매끈하게 물을 타고 수영을 잘했지만 다른 이들에게 웃어 보이는 법이 없었다. 물과 한 몸인 듯 유유히 물을 즐기는 수윤의 모습에 성규는 반해버렸다. 저 여자라면 자신의 계획성 있는 삶에 함께할 수 있겠다는 희망이 보였다. 자궁이 없다는 수윤의 고백에도 성규는 괜찮은 것 같았다. 어차피 자식은 원하지도 않는데 자궁이 없어봤자 더 편하겠다 싶었다. 하지만 성규는 몰랐다. 다른 이들이 결혼하고 난 뒤 자식을 가지고 다닐 것이란 걸. 그들의 sns 소개 사진에 등장하는 아이의 얼굴과 그럴듯한 가족사진을 자신은 갖지 못한다는 걸.


열정남답게 성규는 수윤에게 지극 정성을 보였다. 수윤은 그런 성규가 조금 이상하게 느껴졌다. 그도 그럴 것이, 다른 여자들처럼 남자에게 웃어 보이거나, 곁을 주는 성격도 아닌 자신에게 먼저 다가와 이온 음료를 건넸고 마음의 문을 두드린 남자는 성규가 처음이었다. 그에게 처음 웃어 보인 날, 그는 더욱더 열정적으로 수윤을 사랑하기 시작했다. 아침, 점심, 저녁이면 좋은 글귀와 힘내라는 메시지를 보냈고 수영장을 가는 수윤을 태우러 늘 제시간에 도착했다. 한 번도 늦거나 빠트린 적이 없었다. 정확한 사랑을 보여주었고 자신에 대해 그다지 많은 말들을 하지도, 가족이나 친구에 관하여 묻지도 않았다. 수윤은 그래서 그와의 연애가 편안했다. 수영하는 자신을 쉽게 받아들여 주었기에. 실은 아빠 이외의 다른 남자와 밥을 먹어보는 것도 이야기를 깊게 나누어 본 것도 거의 처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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