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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팥 Mar 28. 2022

페페

6. 습진


초경을 시작하고 수영을 그만두었던 수윤이 다시 수영을 시작했던 것은 스무 살 무렵이었다. 3월 강의실의 서먹한 기운 속에서 옆자리에 앉아있던 서희가 먼저 수윤에게 말을 시켜왔었다. ‘어? 손에 습진이 있네?’ 하는 서희의 말에 두 손을 허벅지 아래로 숨겼던 수윤이었다. 그런데 서희가 갑자기 자신의 두 손을 내어 수윤에게 보여주었다. 수윤보다 더 지독한 습진인 것 같았다. 마디마디 살갗이 벗겨지지 않은 손가락이 없었고 몇 군데는 진물이 아직도 흘러 엄청 아플 것만 같이 보였다. 수윤이 서희의 손을 내려다보며 고작 스무 살 정도밖에 되지 않는 여자아이 둘이 습진으로 말을 트게 된 것에 대한 신기함과, 자신의 결점 혹은 상처를 그대로 나에게 내보여주는 것에 대한 당황스러움의 감정이 교차하고 있을 무렵, 서희는 웃으며 말을 건넸다.     


“난 설거지를 많이 하거든. 그래서 이래.”     


수윤은 그런 서희의 대답에 조금은 창피함을 느꼈다. 그도 그럴 것이, 자신이 습진이 생긴 이유는 목욕이나 세수 등의, 자신의 몸을 씻는 그 활동에만 집중했던 탓이지 서희의 설거지라는 행위로 인해 짐작되는 것들, 집안일을 도맡아야 하는 것에 대한 가정사 같은 것과는 전혀 상관이 없었기 때문이다. 수윤은 결혼 이후에 설거지하는 그 활동을 신성하게 여기며 집중했을 뿐이며 결혼 전에는 집안일은 모두 아빠의 독차지였다. 그렇게 서로의 상처를 공유하던 날, 수윤은 서희와 함께 학교 벤치에서 맥주를 마시다 '함께 연못에서 수영해 볼래?'라는 서희의 엉뚱한 권유에 3월의 밤 연못에서 둘은 함께 수영했다. 10년 만의 수영이었다. 집 안 욕조를 제외한 다른 물을 살갗으로 흡수시킨 것은 참 오랜만의 일이었다.


3월의 밤 연못은 겨울의 물처럼 아주 차게 느껴졌다. 곧 움직이는 몸 안에서 따스한 열기가 올라왔다. 깊이 1m 이상이라는 팻말은 거짓말이었다. 처참하게 못생긴 이사장의 동상 아래까지 이어지는 곳의 물만 조금 깊을 뿐이었다. 두 사람은 그래도 꿋꿋하게 수영을 해서 그곳까지 이르렀다. 얕은 곳을 헤엄치는 도중에는 무릎에 뾰족한 돌이 닿아, 나중에 보고 둘은 기겁을 했다. 온통 긁힌 자국과 피멍이었다. 서희와 수윤은 함께 젖은 몸을 이끌고 찜질방으로 들어갔다. 둘은 서둘러 옷을 갈아입고 찜질방 열쇠를 받은 둘은 뜨거운 온탕 안으로 들어가 몸을 녹였다.

“넌 수영을 언제 배웠어?”     

“나? 배운 적 없는데. 아까 봤잖아. 그거 게 헤엄이야. 허푸 허푸.”     

“그랬구나. 수영할 줄 아는데 일부러 그러는 줄 알았어. 난 어려서 수영선수했었어.”     

“와, 멋지다. 수영선수라니!”     

“멋지긴. 아빠가 시켜서 잠시 했던 거야. 근데 아주 잠깐만 하고 그만뒀어.”     

“왜?”     

“생리해서.”     

“생리하면 수영 못해?”     

“아니. 다른 애들은 다 했는데 난 쫓겨났어. 생리한다고. 나도 모르게 바닥에 수영장 피를 흘렸거든.”     

“그래서, 수영 그만둬서 힘들었어?”     

“아니. 더 좋았어. 대신에 매일 욕조에서 나 혼자 수영하거든. 그래서 습진이 생긴 거야. 매일 물을 너무 많이 만져서. 근데 넌 손이 왜 그렇게 됐어?”     

난 아침에 여섯 시에 일어나서 밥하고, 설거지하고 동생들 학교 보내. 그리고 빨래도 하고 청소도 하고 저녁밥 해놓고 학교에 와.”     

“너도 엄마가 안 계셔? 참고로 나도 아빠랑 둘이 살 거든.”     

“아니. 엄마 있어. 친엄마야. 대신 아빠는 새아빤데 동생들한텐 친아빠지. 우리 엄마가 나 1학년 때 재혼했어. 그리고 동생들 낳았고.”     

“근데, 왜 네가 집안일을 다해?”     

“엄마 아빠가 밤에 일하고 아침에 들어와서 주무시거든. 근데 우리 엄마는 일 안 할 때도 나한테 다 시켰어. 원래 그런 여자야. 나 데리고 시집가서 눈치 보였으니까 자기한테 잘하라고 맨날 그러는데, 내 생각엔 나를 하녀로 쓰기 위해 데리고 들어간 거 같아.”     

“친아빠는?”     

“없어. 한 번도 그 새끼 얘기 들어본 적은. 기억도 안 나고. 나 얼른 대학교 졸업해서 취직하면 독립할 거야.”  

“그래. 그럼 좋겠다.”     


수윤이 먼저 온탕 아래로 내려가 잠수를 했다. 서희가 함께 물 안으로 들어왔다. 둘은 볼에 가득 바람을 집어넣고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서희가 먼저 눈을 가운데로 몰아 수윤을 웃겼다. 웃음을 참지 못한 수윤이 먼저 물 위로 올라와 캑캑거렸다. 아까 연못 위에 떠 있던 달빛이 뿌연 온탕 안에도 들어와 두 사람의 젖은 머리카락을 부슬부슬 빛나게 했다. 목욕이 끝나고 누워있는 수윤에게 서희가 이온 음료를 건넸다.      


“식혜 같은 거 난 싫어해서 이거 사 왔어.”     

“어. 나도 정말 싫어하는데. 우린 닮은 점이 많네.”     


은정 언니가 사다 주었던 도서관 서랍의 이온 음료를 꺼낼 때마다 수윤은 서희를 생각했다. 4년간 대학을 함께 다녔고 같은 도서관에 근무하고 매일 새벽 같은 수영장을 다니며 서로의 등을 밀어줬다.

다섯 개의 이온 음료 중 한 개만 먹고 네 개를 남겨두는 이유는 혹시라도 서희가 자신의 몸 주변에 돌아다니고 있는 수증기로 남아있다면 이 이온 음료를 보고 좋아하지 않을까 해였다. 아무도 없는 집에서 불에 타버린 서희는 분명 수증기가 되었을 것만 같았다. 경찰과 서희의 가족들은 서희가 자살한 것이라고 했지만, 그렇게 자신의 생에 의지가 있던 아이가, 이제 막 월급을 모으기 시작했다고 꿈에 부풀었던 서희가 자신의 집에 불을 지르고 자살을 했을 리가 없었다. 하지만 경찰의 수사 결과는 단순 방화로 인한 자살 사건이었다.


서희가 지냈던 방은 불에 탈 것이 없이 그을린 자국 외엔 거의 그대로의 모습을 하고 있었지만, 서희가 누워있던 이불과 서희의 몸만 불에 조금 탔다. 서희의 죽음은 화상이 아닌 이불과 옷가지가 타며 난 연기로 인한 질식사였다. 딸의 사망 보험금 3억을 갖게 된 가난했던 서희의 가족은 행복한 새 출발을 했다.

수윤은 매일 기도를 했다. 수증기가 되어 어디에든 머물러 있으라고 수윤은 서희에게 부탁했다. 자신이 혼자 목욕을 할 때면 그렇게라도 곁에 머물러 있어 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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